신세계다, 신세계!
북유럽을 여행하면서 우리 가족은 주로 열차를 타고 이동했다. 덕분에 각국의 열차 예약 사이트를 열심히 탐독하게 됐는데, 핀란드 열차인 VR 홈페이지에서 예약을 진행하던 도중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을 발견했다. 열차 칸 중에 놀이방 칸이 마련돼 있다는 것! 나는 일곱 살 아이와 세 시간 남짓 기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므로 주저하지 않고 놀이방 칸을 예약했다. 큰 기대는 없었다. 놀이방이라고 해도 뭐 한쪽 구석에 조그맣게 꾸며진 정도겠지, 그래도 그게 어디야, 같은 심정이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핀란드 열차 놀이방 칸은 시작부터 꽤나 본격적이었다. 외관에 그려진 고양이 그림부터 심상치 않더니만 2층 열차 중 2층에 자리한 플레이룸의 수준이 상당했다. 우선 신발은 당연히 벗고 들어가게 돼 있고, 미끄럼틀과 꼬마기차, 푹신하고 기다란 의자, 그림책, 장난감 등등이 오밀조밀하게 공간을 잘 활용해서 꾸며져 있다. 다른 칸으로 이동하지 못하도록 안전문도 설치돼 있었다.
이렇게 잘 꾸며져 있다 보니 부모들은 그저 바로 앞에 놓인 좌석에 편안히 앉아(놀이방이 바로 내다보이는 1열이 제일 인기)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면 끝이다. 미취학 아동들에게 저 정도 놀이시설이라면 두세 시간 정도는 커버된다. 아이들도 가만히 좌석에 앉아서 창밖만 바라보는 것보다는 놀이방에서 노는 편이 훨씬 좋다는 걸 아니까.
핀란드 열차를 탈 때 한 가지 또 재밌는 점은 어린이용 티켓이다. 열차 예매 후엔 스마트폰 앱 화면을 보여주기만 해도 탑승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 이런 종이티켓은 굳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니 이 티켓은 검표 시 순전히 아이를 위한 배려로 핀란드 열차에서 제공하는 스페셜 기념품 같은 것이다. 핀란드인은 말수가 적고 쑥스러움을 많이 타기 때문에 눈빛으로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인데, 핀란드 열차 검표원은 이 티켓을 아이에게 건네면서 엄청나게 뿌듯한 눈빛의 레이저를 마구 쏘아댔다. ‘어떠냐, 아이야. 이건 너를 위한 티켓이야. 이것이 우리 핀란드 열차라구. 나는 이걸 아이에게 나눠줄 때마다 정말 보람을 느낀단다. 소중히 간직하렴!’ 같은 말들이 눈동자에서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핀란드 열차에는 놀이방 칸 말고도 패밀리 컴파트먼트 구역이 있다. 우리 가족은 이용해보지 않았지만 방처럼 꾸며진 가족들을 위한 프라이빗한 공간으로, 아기침대나 소파, 장난감 등이 꾸며져 있다.
하지만 열차 놀이방 칸도, 패밀리 컴파트먼트도 이제 아이가 컸으니 다음 핀란드 여행 땐 이용해볼 일이 없을 것이다. 오로지 어린아이를 데리고 여행할 때만 누릴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 핀란드 열차에서의 경험들은 북유럽 여행의 행복한 기억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