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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작은 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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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수진 May 16. 2024

숲으로 몸을 돌리는 사람


동네에 낮은 산이 있다. 산이라기보다 언덕에 가까운 곳이지만 숲이 있으므로 나는 ‘작은 산’이라 부른다. 도서관이나 좋아하는 카페를 향할 때면 언제나 작은 산을 지나치게 된다. 일부러 이곳을 통과해 목적지로 향하기도 한다. 커피를 사러 오가는 길이나 책을 반납하는 길에 숲을 걷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들이 손에 한가득이다.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커피와 책, 그리고 혼자인 나.


점점 내향인이 되는 기분이다. 혼자인 시간이 가장 편하고 좋다. 그렇다고 해서 느슨한 매일을 보내는 것은 아니다. 나의 하루는 바쁘다. 일어나자마자 모닝글쓰기를 하고 아침을 준비한다. 아이 등교에 맞춰 밖으로 나가 운동을 한다. 빠르게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도서관이나 조용한 카페로 향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쓴다. 학교를 마친 아이와 만난다. 함께 산책을 하고 돌아와 저녁 준비를 한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하루가 이어진다.


혼자임에도 외롭지 않은 이유는 작은 산 덕분이다. 숲을 걷다 보면 지루할 틈이 없다. 계절을 머금은 나무며 이름 모를 꽃과 풀, 시시각각 달라지는 하늘, 숨바꼭질하듯 돌아다니는 청설모를 구경하다 보면 벌써 숲을 몇 바퀴나 돌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혼자인 줄 알았으니 사실 숲에서 나는 혼자가 아니다. 옹기종기 둘러앉아 숲에 대한 설명을 듣는 아이들, 손 잡고 걷는 연인들, 삼삼오오 모자와 선글라스를 장착하고 운동을 하는 무리들, 커피를 하나씩 들고 천천히 산책하는 회사원들. 길을 걷다 숲으로 몸을 돌린 사람들이 있다.


도서관이나 카페를 오갈 때면 숲으로 몸을 돌리는 사람들을 종종 마주친다. 어떤 날에는 홀린 듯 그들의 뒤를 따라 숲으로 향하기도 한다. 다른 차원의 세계로 들어선다. 이곳은 초록의 세계. 차분하고 고요한 세계. 낙엽 밟는 소리와 새가 지저귀는 소리 말고는 다른 소리가 필요하지 않은 세계. 무수한 질문도, 나를 뒤흔드는 고민도 무용한 세계. 두 다리로 부드러운 흙을 딛고 서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는 세계.


가벼워진 마음으로 작은 산을 빠져나오면 바쁘게 걷는 사람, 자전거를 타고 빠르게 달리는 사람, 어디론가 분주히 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모두 각자의 목적지로 향하고 있다. 나는 내가 가야 할 곳을 알고 있다.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에 있는 도서관. 익숙한 자리에서 앉아 책을 펼친다. 문장을 읽고 단어를 모으고 마음으로 곱씹으며 메모를 한다. 노트를 열어 글을 쓰고 가끔은 아무것도 읽거나 쓰지 않은 채 조용히 창 밖을 본다. 저기 어딘가 내가 맘먹으면 들어갈 수 있는 초록의 세계가 있다. 눈부시게 반짝이는 아름다운 세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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