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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작은 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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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수진 Jun 24. 2024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없다는 걸 알지만



새로운 카페에 왔다. 2호점을 낼만큼 케이크가 맛있는 곳이라 기대를 안고 달려왔다. 1호점 맛을 알고 있던 터라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분점이 생긴 것은 반가운 일이었다. 이곳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쓸 생각에 들뜬 아침이었다. 하지만 문을 열고 깜짝 놀랐다. 그새 입소문을 탔는지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북적이는 시장 한복판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각종 소음이 웅웅 거리며 가게를 꽉 채우고 있었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한데 모이면 굉장한 에너지를 내뿜는구나. 어안이 벙벙해진 채 일단 커피와 케이크를 주문했다. 마침 1인석이 남아 있어 엉거주춤 자리를 잡았다. 이어폰으로 귀를 막아보지만 음악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 조용한 곳에서 글을 쓰다가 왁자지껄한 곳에 오니 식은땀이 난다. 커피는 이미 주문했고 돌이킬 수 없다. 오늘은 이곳에서의 소음을 즐기며 글을 쓰기로 한다.


재잘재잘 대화 나누는 소리, 웃고 떠드는 소리, 통화하는 소리. 커피 머신 돌아가는 소리에 질세라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린다. 그런 내 작은 소음은 조금도 티가 나지 않는다. 아무도 내가 내는 소리에는 관심이 없을 것이다. 나는 카페 벽에 걸린 액자처럼 이곳을 채우는 풍경 중 하나일 뿐이다. 문득 스스로가 재미없고 시시하게 느껴진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최신 트렌드며 흥미로운 이슈를 늘어놓기 바쁜데 나만 동떨어진 작은 섬 같다. 조용하고 수수한 매일을 보내는 나. 허우적거리며 무언가 쓰고 있지만 어디에도 닿지 않을 것만 같아 불안하다. 얼른 결과물을 만들어 스스로를 증명하고 싶은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테이블 너머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살가운 대화가 부럽다. 누군가와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는 일상이 까마득하다. 1인석에 덩그러니 앉아 있으니 점점 더 외로워진다. 동그랗게 어깨를 웅크린 채 멍하니 창밖을 보았다. 하늘은 새파랗고 나뭇잎은 눈부신 초록이고 내 마음은 짙고 푸른 어둠이다. 평생 이렇게 혼자 글을 쓰며 모니터와 마주 앉아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아직 내게 도착하지도 않은 미래가 슬프다. 이 외로움을 견딜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생각을 멈출 수 없을 땐 글을 써야 한다. 외로움과 속상함과 답답함을 자음과 모음에 섞어 글자로 만든다. 화면 가득 글자로 채우고 저장한 뒤 새로운 페이지를 연다. 묵묵히 쓰다 보면 오늘의 글이 남는다. 그렇게 매일의 글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 나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위로다.


나는 자주 방향을 잃는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이곳저곳을 서성인다. 마음이 조급해져 발을 동동 구를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글을 쓴다. 좀 돌아가도 좋고 쉬어가도 된다고 쓴다. 그 모든 방황과 고민도 다 괜찮다고. 포기하지만 말자고 쓴다. 한 걸음씩 천천히, 앞으로만 나아가면 된다고 다독인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 시끄러운 카페에 온 것도 나쁘지 않다. 그대로 뒤돌아 집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자리를 잡고 앉아 버텼다. 마음을 비우고 한 가지만 생각하기로 한다. 오늘 완성하고픈 한 편의 글에 대해서. 그랬더니 정말로 내 눈앞에 글자와 이야기가 남았다. 나는 좌절해도 금방 다시 일어나는 사람. 위태로워 보여도 끝까지 버티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 그게 바로 나였다.


검색해 보니 근처에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이 있다. 카페는 실패했지만 점심 메뉴는 성공이다. 매 순간 희로애락이 교차하는 것이 진짜 우리 삶의 모습이다. 고민하던 순간들 역시 지나고 나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필요한 시간이 된다. 마음에 드는 문장을 쓰는 날이 있으면 다음날에는 모든 게 부끄럽게 느껴지고, 어떤 날에는 다 그만두고 싶다가도 기어코 책상 앞에 다시 앉는 삶. 쓰는 삶과 사는 삶이 결코 다르지 않음을. 모든 걸 망쳤다고 주저앉고 싶은 하루도 시간은 흐르고, 그 하루가 지나면 또 다른 하루가 반드시 찾아온다는 사실을. 그러니까 우리 삶에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없다는 것을 생생하게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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