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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작은 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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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수진 Jul 10. 2024

어떤 밤의 불꽃놀이



‘저녁에 여기 구경 갈까?’

정신없이 저녁을 준비하는데 남편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집 근처 공원에서 불꽃놀이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마침 선선하니 걷기 좋은 날씨였다. 저녁을 먹고 출발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가족 모두가 함께 하는 밤산책이었다. 요리하는 양손이 리드미컬하게 움직인다. 평소와 달리 지겹지 않다. 불꽃놀이를 보러 간다는 소식에 아이는 콩콩 뛰며 좋아했다. 얼굴 위로 벌써 색색의 불꽃이 피어오르는 듯 환한 웃음이 번졌다.


공원에는 돗자리를 펴고 자리 잡은 사람들이 많았다. 도시락이나 과일을 먹으며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들뜨는 기분이었다. 킥보드와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 사이로 딸도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 음악소리에 맞춰 분수가 흔들흔들 춤을 추고 지켜보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그림 같은 저녁풍경이었다. 하늘이 주황색으로 물들어갈수록 점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우리도 설레는 마음으로 계단에 자리를 잡았다. 모두 오직 단 하나의 장면을 기다리고 있었다.


불꽃 하나가 피융 소리를 내며 날아올랐다. 불꽃놀이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였다. 하늘 위로 수십 개의 불꽃이 부지런히 솟아올랐다. 커다란 원 모양이 있는가 하면 민들레 갓털이나 꽈배기 모양도 있었다. 터질 때마다 크기와 속도, 모양이 달라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어느새 어두워진 까만 하늘을 도화지 삼아 색색의 불꽃들이 눈부신 그림을 그렸다. 잠시 다른 세계로 떠나온 듯 아득했다. 마치 꿈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지금 이 순간의 아름다움을 조금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나란히 앉은 우리는 목이 빠져라 오래도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불꽃을 바라보는 동안 나의 마음속에서도 무언가가 함께 터지고 있었다. 문득 남편이 이곳에 오자고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활활 타올라서 모두 펑하고 터져버려라. 마음속에 아무것도 남지 않도록. 그 무엇도 우리를 아래로 끌어내리지 못하게. 나는 불꽃 속에 무얼 던져야 할지 깨달았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날아오르는 불꽃과 함께 던져버렸다. 아마도 남편은 회사에서 느끼는 무력감을 태워버렸을 것이다. 남편과 내 얼굴 위로 환한 불꽃이 타오르다 사라졌다. 조용히 불꽃놀이를 지켜보던 아이가 너무 예쁜 밤이라며 웃었다. 말간 얼굴 위로 희미한 달빛이 내려앉았다.


쉴 새 없이 터지는 불꽃과 함께 무거운 마음을 하나둘 비워냈다.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언젠가 끝나는 불꽃놀이처럼 괴로움도 모두 지나갈 것이다. 기쁨도 슬픔도 결국 한순간이니까. 남편의 얼굴 위로 교차되는 밝음과 어둠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앞으로도 우리는 몇 번의 불꽃놀이를 함께 보게 되겠지. 오늘과는 또 다른 불꽃들이 우리의 머리 위로 터질 것이다. 또 다른 슬픔과 고민이 우리를 덮칠 것이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오늘처럼 서로에게 기대어 오래도록 하늘을 올려다보면 되니까. 부지런히 비워내고 가벼워지면 되니까.


불꽃놀이가 끝나자 사방에 자욱한 연기만 남았다. 비로소 현실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딸은 킥보드를 타고 힘차게 밤거리를 달렸다. 온몸으로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것 같았다. 나는 남편의 허리를, 남편은 내 어깨를 감싸고 느릿느릿 아이의 뒤를 따라 걸었다. 언젠가 우리가 또 마주할 불꽃놀이가 하나의 아름다운 노래였으면 좋겠다. 즐겁고 신나는 음악이 되어 우리를 춤추게 하면 좋겠다. 셋이서 손을 맞잡고. 불꽃이 터지는 소리에 맞춰 자유롭게 노래를 불렀으면 좋겠다. 그렇게 우리 삶 곳곳에 배인 슬픔을 훌훌 털어낼 수 있기를. 각자의 삶을 씩씩하게 살아낼 수 있길 바라던 어떤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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