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혼자 온건 몇 년 만이다. 언제나 아이나 남편과 함께였는데 이번에는 오롯이 혼자다. 긴 여름을 통과하며 지쳐있던 나는 선선해지면 하루쯤 혼자 시간을 보내겠노라 선언했었다. 전시와 공연도 보고 크고 넓은 서점에 오래 머무를 생각이었다. 그날이 바로 오늘이다. 제일 먼저 간 서점은 주말이라 사람으로 가득했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고 해도 아직 이곳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궁금했던 시집과 에세이 몇 권을 열어보았다. 글자를 읽는 일은 쓰는 일만큼이나 엄청난 에너지가 든다. 아이에게 쓸 귀여운 편지지 몇 개를 심혈을 기울여 골랐더니 허기가 졌다.
서점 근처 햄버거 가게에 왔다. 주문하는 사람, 먹는 사람, 정리하는 사람,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이 뒤엉켜 정신이 없었다. 패스트푸드의 장점은 빠른 회전율이다. 주문과 동시에 내 주문번호가 바로 모니터에 뜬다. 입구 가까운 곳에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문이 여닫힐 때마다 찬 바람이 들어왔다. 자리가 나면 옮길 생각으로 어정쩡하게 엉덩이를 걸치고 있었다. 갑자기 비가 오는 바람에 공기가 한층 더 차가워졌다. 여기서 햄버거를 먹다가는 체할지도 모른다. 부지런히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마침 일어나는 여자를 발견했다. 대각선으로 빠르게 이동해 자리를 잡았다. 방금까지 여기 앉아있던 사람의 온기가 느껴졌다.
포장지를 열어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따뜻하고 맛있다. 간단히 요기를 하기엔 햄버거가 최고다.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고 나 역시 주변을 의식할 필요 없는 분위기도 마음에 든다. 제일 안쪽 좌석이 비었길래 또 한 번 자리를 옮겼다. 출입문에서 가장 먼, 노란 조명이 은은하게 비치는 구석이다. 등받이가 있어 잠시 글을 쓰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키보드를 꺼내 햄버거를 우물거리며 문장 몇 개를 쓴다. 세 번이나 자리를 옮기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가 사라진다. 이곳은 마치 커다란 버스터미널이나 기차역 같다. 잠시 한 곳에 모여 있다가 각자 어디론가 떠나는 모습이.
옆자리에서 이마를 잔뜩 구기고 노트북을 들여다보던 아저씨가 일어났다. 곧이어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가 느린 걸음으로 걸어와 털썩 자리에 앉는다. 자신의 좌석과 내 좌석 사이 가운데쯤에 걸터앉아 천천히 햄버거를 먹었다. 아주 느린 속도로 감자튀김을 먹고, 콜라를 여러 번 나눠 마셨다. 할아버지는 음식을 먹으며 자신의 걸음처럼 느리게 주변을 쳐다보았다. 사람들의 얼굴과 행동과 표정을 관찰했다. 이쯤 되면 음식을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을 구경하기 위해 나와 있는 느낌이다.
혼자 있어보니 조금 외롭다. 하고픈 것들로 하루를 채우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는데 막상 혼자 있어보니 즐겁지 않았다. 되려 집이 그리웠다. 아이가 보고 싶고 남편이 궁금했다. 하루종일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무얼 하며 놀고 있는지, 밥은 잘 챙겨 먹었는지 걱정되었다. 할아버지는 어쩌면 혼자 있고 싶지 않아 이곳에 나와 있을지도 모른다. 뉴스 속 세상 말고 진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벽에 걸린 원산지 표시판과 영양정보의 글자를 하나씩 쳐다보며 시간을 보내는 할아버지나 서울까지 와서 구석에 앉아 글을 쓰는 나나 둘 다 외로운 존재들이었다.
조용히 사람들을 지켜보던 할아버지는 갑자기 일어나 지팡이를 짚고 출입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중간에 몇 번이나 걸음을 멈추고 지팡이에 손을 얹은 채 주변을 돌아보았다. 누가 봐도 이상해보이는 그는 느린 걸음을 이끌고 사라졌다. 구겨진 햄버거 포장지와 말라버린 감자튀김과 녹기 시작한 얼음들만 자리에 남았다. 가방을 정리하고 나도 밖으로 나왔다. 비는 여전히 부슬부슬 내리고 사람들은 바삐 내 옆을 스쳐 지나간다. 나도 잠시 모자를 눌러쓴 채 멈춰 섰다. 어디로 가야 하지. 나는 어디로 가고 싶은 걸까. 방향을 잃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휴대폰 진동이 울리고 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냐고. 집에는 언제쯤 돌아오냐고 묻는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알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