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장에는 제 또래도 있었겠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숙을 뽐내는 분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얼른 나이 먹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당시 碩 오빠 나이도 이겼네요. K-pop 시장은 갈수록 커지고 그때보다 돈도 있고 시간도 많은데 이제는 영상 몇 개 보고 마는 걸 보면 팬이 체질은 아닌 거 같아요. 무조건적인 사랑보다 유난히 이끌린 누군가를 응원하려는 마음이었나 봐요. 저도 꿈이란 걸 크게 갖고 있었으니, 여러 사람 앞에서 선보이는 열정을 보며 그 분위기에 동화되고 싶었던 거겠지요. 댄서에서 아이돌을 거쳐, 배우가 된 과정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고난이었을 듯해요. 저도 오늘의 고생(苦生)을 이겨내고 나아가려고요. 조급해하지 않을 테니 碩 오빠도 더는 다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K2의 <그녀의 연인에게>라는 노래엔 "설레임이 가득한 그대 하루만큼 나의 하룬 길고 외로워"라는 서글픈 문장이 나온다. 너는 그녀가 있어 설렘이 가득하지만 나는 그녀가 없기에 외롭다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만큼'이 자꾸 밟힌다. 새 연인이 느낄 설렘의 양을 그는 겪어봤다. 잃은 건 그녀라는 존재만이 아니라 설렘이라는 감정이기도 하다. 어느 정도일지 추측 가능하니 더 괴롭다. 설렘이 없어진 자리에 추상적인 외로움이 들어찼다기보단 떠나보낸 설렘만큼 깊은 외로움을 견뎌야 하는 처지이다. 초등 6학년 때 <슈퍼스타 K5>를 시청하며 이 곡을 알았다. 가장 응원하던 참가자 박시환 씨의 애절함 덕에 사랑도 안 해 본 주제에 깨달은 셈이다. 박시환 씨는 준우승을 쟁취하며 가수의 꿈을 이뤘다. 예선에서 불렀던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가 근래 들어 알고리즘의 은혜를 받아 다시금 화제 되고 있기도 하다. (추천!)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미성년자 시절꾸준히 보았다. <슈퍼스타 K5>가 기폭제였고,<프로듀스 101> 시즌 1 다음, <소년 24>가 바통을 받았다. 우리 반에서 이 프로그램을 보는 건 나뿐이었다. 오죽하면 가장 화제여야 할 파이널 미션곡조차 노래방에 등록되어 있지 않아 명곡을 한평생 집에서밖에 못 부른다. 고루 좋지만 유닛 레드(* '유닛+색깔'이 팀명이었다….)의 <Starlight>는 동네방네, 전국팔도, 한마당 지구에 다 알리고 싶을 만큼 취향이다. "지금처럼 네가 행복할 수 있다면 이 순간이 사라지지 않도록 해줄게"와 함께 "은하수의 별을 다 세고 또 그만큼 별이 지는 그때까지 곁에 있을게"라는 다짐이라니. 여기서도 '만큼'이 나온다. 은하수의 별을 다 세려는 것도 기막힌데 별이 하나둘은 무슨 무수히 질 때까지 함께 한다는 건 평생을 넘은 영원의 약속 아닌가.
<소년 24> 참가자들은 다인원 그룹으로 데뷔하였다. 가장 응원하던 연습생도 멤버였다. 문제는 텔레비전 앞도 아니고 방송국도 아닌, 남대문역 인근에 가야 무대를 볼 수 있었다. 대기업의 시도는 가상하나 열정 넘치던 청년들을 작달막한 공연장에 가두어야 했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 생애 첫 티켓팅은 무척 쉬웠다. 공연은 거의 매일 있으니 티켓팅도 줄기차게 할 수 있었는데 지방살이 중딩에겐 좋은 좌석보다 상경(上京)에 드는 시간과 비용이 암담한 산이었다. 그래도 최고로 응원하던 멤버의 생일 기념 공연만은 자리를 채우고 싶었다. 수업 끝나자마자 버스 타고 지하철 헤매며 남대문으로 향했다. 낮 공연과 저녁 공연으로 나뉘어 있으니 저녁 공연을 보면 됐다. 교복도 못 갈아입은 건 창피했지만 교복만큼 나이를 실감시켜 주는 게 없어서 '오빠'들은 연장자로서 덕담해 줬다. 야간 고속버스를 16살에 처음 탈 줄이야, 울 엄마양육 환경이 프리하긴 했나 보다.
<소년 24>는 1화 이후SNS 상에서 온갖 얼평만 당하다가 묻혔다. 어두컴컴한 세트장에 얼굴을 그늘지게 한 누런 조명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으나 어찌 됐든 제1의 흥행 요인인 관심을 아예 잃고 만 게 타격이 컸다. 한 줌만큼 모인 팬들도 얼렁뚱땅 경영 방식으로 떠나기 바빴다. 나도 전용 공연장이 언제 문을 닫았는지 잘 모른다. 찐 최종 멤버를 선발한 후 모두들 뿔뿔이 흩어진 모양이다. 그전에 탈퇴한 최애는 솔로 앨범을 냈다가 연기를 시작해 극 중 비중을늘리고 있다.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다 말고 꿈을 이루러 온 최애2는 웹드를 시작으로 미니 드라마 조연도 꿰찼다. MVP 자리(* 공연이 끝나면 투표로 MVP를 선발)를 도맡던 맏형 멤버는 군복무 이후 새로운 그룹에서 실력을 뽐내고 있다. 한 멤버는 또 다른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가 데뷔 멤버로 뽑혔으나, 약속을 무산시킨 유명 제작사의 갑질로 다시 연습생이 되었다. 결국 다른 곳에서 데뷔했으나 코로나 시기 해체하였다. 이후 택한 직업은 타투이스트인데 우연히 유튜브를 보던 중 인기 쇼츠로 마주쳐서 놀랐다. 역시 인생은 어찌 흐를지 알 수 없다.
서바이벌 안 본 지도 오래됐다. 이처럼 챙겨본 건 얼마 안 되지만 세 프로그램만은 마지막 화까지 본방사수 했다. 참가자들을 응원하려면 꾸준한 시청이 최우선 같아서였다. 서바이벌로 이뤄지는 오디션에선 압박을 견딜 제 한 몸과, 자신을 드러낼 능력이 중요하다. 그런데 관건은 제작진이 건드리는 분량과 시청자의 관심이 된다. 능력보다 운(내지는 조작)이 더 큰 영향을 미치니 더는 보기 싫어진 것도 있다. 서바이벌 방송이모 아니면 도로 나뉠지점 같아서 간절히 응원하였다. 하나 참가자들에겐 끝이 아닌 시작이었던 모양이다. 각양각색으로 현재를 일군 사람들을 보며 알았다. 중대한 기회와 부닥뜨리더라도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나아가려는 자세가 중요하단 걸! 성공의 기준은 저마다 다를 테다. 박시환 씨 외 응원했던 이들은 성명을 기재한들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으리라 본다. 보편적인 성공 척도인 유명세와 별개로 내게는 빛나 보이기만 한다. '때(시기)'는 나이에 맞춰지는 게 아님을 이들을 통해 실감해서다. '적절한 때(시기적절)'란 운 좋게 쥐어지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굴하지 않은 덕에 얻어낸 거라 본다.
'소년 24' 멤버들 나이가 2023년 기준 내 또래와 비슷하다. 가장 지지하던 95년생 멤버는 한국 나이로 22살이었다. 현재의 나보다 1살이나 어리다. 공연장 막내들은 97년생으로 20살이었다. 형 대우를 받아 어른 중 '으른'처럼 보였던 멤버는 92년생으로 25살밖에 안 됐었다. 내가 곧 맞닥뜨릴 나이이기도 하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연하를 응원한 건 2019년<프로듀스 101 X>로, 2002년생이었다. 작년에 데뷔한 그룹 '뉴진스' 맏언니가 2004년생이니, 뉴진스보다 늦은 시기에 새로 데뷔한 소년 24 맏형은 더 대단해 보인다. 아이돌 마지노선이 20초인지, 20 중반인지 의견은 분분하다. 의치한과 달리 아이돌엔 나이 경계선을 치는 게 현실적이라는 시선도 있지만 "신인은 어리고 봐야 한다"는 편견을 강화시키는 것만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꿈에 주저하는 이유가 출생연도라는 건 가혹하지 않은가.
'소년 24'를 검색했을 때 뜨는 단체 사진에는 스물아홉 명의 청년들이 있다. 2016년에는 이들을 모조리 알았으나 곧장 떠오르는 이름들은 이젠 한 손가락에 꼽는다. <슈퍼스타 K5>도 그랬고, <프로듀스 101>은 출연진이 배는 되었으니 더하다. 1분 쇼츠만으로 알아봤던 것처럼 웃고 울던 한때의 얼굴까진 잊지 못하리라.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동료들과 팬들에게 폭탄을 투척한 이들을 제외하고, 이끌렸던 모든 출연진들 앞에 더 나은 길이 펼쳐지길 바란다. 연예인을 이어가든, 새로운 직업을 택하든.
<그녀의 연인에게>에선 설렘 대신 외로움을 논하나 이끌림을 대신해 나타나는 감정은 없어 보인다. 순간의 이끌림은 각양각색의 감정은 물론 일상을 지탱할 에너지까지 주었다. 시절을 '공유'했다고 말하기엔 나 혼자 기억할 뿐이지만 내적 친밀감도 일종의 친밀감 아닌가! 참가자와 시청자 혹은 공연자와 팬으로 지낸 시간은인생에서 의미가 남다르며, 앞으로도 귀할 테다. 계속 마주하는 소식들이 그때를 상기시키면서 우선은 나아가고 봐야겠다는 의지까지 불러일으키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