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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신영 Feb 25. 2021

다정多情 도 병病

내 생애 수술은 처음이라

  어제는 정형외과에서 무릎에 연골주사를 맞고 왔습니다.


 제 무릎은 3년 전 오른발 등뼈 골절에 핀 박는 수술과 핀 제거 수술을 두 차례 받으면서 사고가 생긴 것 같습니다. 발을 다쳐 생애 처음 수술을 받고 병원생활을 했습니다. 병실엔 모두 발, 무릎, 어깨, 허리 등 뼈 관절을 다쳐서 수술, 또는 물리치료를 위해 입원한 환자들이었습니다.


큰 질병 없이 감기, 몸살쯤으로 며칠씩 열에 시달리며 아픈 적은 있어도 뼈를 다치기는 처음이어서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 뼈는 붙을 것이며 깁스를 풀고 나면 물리치료를 받으며 또 며칠 병원에 다니게 될 것입니다.


병원 생활은 다인실에 있었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의 사연과 그들의 모습을 보며 시끄러움, 조용함, 예의 바름, 막무가내 정신, 큰 목소리로 병실이 떠나갈 듯 화통한 목소리. 전화 벨소리, 간호부장의 로봇과도 같은 몸가짐, 말투, 마이크 없어도 되겠다는 무릎 수술한 어머니 말씀에 박장대소를 하며 사람들과의 어울림은 나름 재미가 있었습니다. 간호부장은 워낙 많은 사람들을 대하기 때문에 사무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하나하나 사정을 들어주다 보면 배는 산으로 갈 것 같은 병실 세계가 한눈에 들어왔거든요. 사람마다 사정은 다 있게 마련이어서 요구 조건이 많기 때문이지요

.

입원 중엔 반깁스 상태였는데 휠체어로 이동하느라 화장실에 다녀오는 것, 샤워 문제로 최고의 불편을 겪었습니다.

"우리는 복 받은 거예요..." 아이들이 곁에서 지켜보며 많은 환자들을 목격하고 나서 하는 말입니다.

장애로 평생을 사는 이들의 삶이 보이는 것이겠지요.

퇴원하는 날 통깁스를 하는데

"발이니까 롱으로 하지 말고 앵클부츠로 해주세요"

친절한 처치실 선생님은 간곡한  부탁을 들어주었고 롱 깁스를 했을 때보다 피부가 가렵지 않고, 무겁지도 않고 훨씬 편했습니다. 깁스 상태가 편하면 얼마나 편할까마는 조금이라도 불편을 최소화하고 싶은 심정이었지요.

퇴원을 하면서 목발을 짚고 걸어 봅니다. 목발 짚는 법도 배워야 했지요. 선생님께 배운 대로 하나 둘! 하나둘! 하면서 중심을 잡아 봅니다. 운동회 때 이인삼각 경기를 하던 것처럼 손발이 따로 놀면 절대 전진이 안 되는 목발 짚고 걷기입니다.

"절대 물 들어가면 안 돼요. 발가락이 부었을 는 높이 올리고 움직여 주세요. 마음에 안 드는 사람 있어도 차지 마세요. 무기니까"

무뚝뚝한 간호부장의 주의 사항에 순간 긴장이 풀리면서 마음 편히 웃을 수 있었습니다. 병실에서도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다들 연륜이 높은 어머니들이셔서 유머도 많으시고 생활의 지혜를 꿀팁처럼 마음에 새기기도 했습니다.


입원해 있는 동안은 휠체어를 이용하기 때문에 왼쪽 다리나 발에 무리가 덜 왔지만 깁스를 하고 퇴원하니 목발을 집고 다니므로 오른발엔 힘을 주지 않아야 합니다. 불편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왼쪽 발에 힘이 실리고 왼발을 의지하는 생활이 두어 달 계속된 것이지요. 한 달 여가 지난 뒤에 핀 제거 수술을 다시 했는데 두 번째 수술은 참으로 힘들더군요.

 처음에 한 핀 박는 수술은 엉겁결에  척추에 부분마취 후 수술을 받았는데 견딜만했습니다.

두 번째인 핀 뽑는 수술하기 위해 전날 입원 후 기다리는데 새벽부터 두통이 일어나서 가라앉지 않았어요.

아마도 수술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모양이에요.


수술실로 옮겨지기 직전에 살피러 들어온 간호부장에게 부탁해서 두통약 한 알 얻어 복용하고 수술실로 들어갔습니다.

 두 번째 수술이 시작되려고 마취과 원장님이 오셔서 척추에 마취 주사를 놓았습니다. 스텝들이 준비를 하면서 나누는 말소리가 거슬립니다. 원장님 오셔서 핀 제거를 깨끗하게 해냈다고 하말씀까지 다 들으며 수술을 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습니다. 부분마취를 하니 신경은 곤두서고 극도로 예민해져 온갖 소리가 다 들려오는 것입니다.


                           *엑스레이 사진에 보이는 핀.


 사진 속에 있는 저 핀을 제거했다 하여 그 즉시 바른걸음을 할 수는 없더라고요. 깁스를 하고 돌아와 한동안은 오른발에 힘을 줄 수가 없어서 또 왼쪽 다리에 의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미 왼쪽 무릎이 타격을 입은 모양이더라고요. 안 그래도 퇴행성 관절염이 올 나이가 되었으니 당연한 이치였겠지요. 저의 왼 무릎은 병이 났습니다. 계단을 오르내리지 않더라도 가끔 통증이 심하게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조심하고 치료받으며 지냈는데도 6개월마다 무릎에 주사를 맞게 된 것입니다.


생활을 하면서 늘 주의를 하며 살지만 뜻하지 않게 사고가 생길 수 있습니다.


제가 다친 것은 다정多情 도 병病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딸 가족이 아기랑 처음 휴가를 떠나려고 짐을 챙기는데 커다란 여행용 캐리어가 거실에 놓이고, 제 엄마가 필요한 물품을 옮기며 부산스레 다니는 모습에 예민한 손녀가 많이 불안했던 모양이에요.

할미와 놀면서도 평소와 다른 분위기에 생각이 많았던가 봅니다. 어른들은 당연시하는 일도 아가의 눈엔 훨씬 다른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을 감지 못했던 것입니다.


 집에 오려는  저와 헤어지기 싫다며 손을 놓지 않는 손녀를 떼어 놓고 왔던 터라 새벽에 하율이 어땠냐고 톡을 하니 많이 울었다는 것입니다. 주택으로 이사하고 이틀만이었는데 익숙하지 않은 데다 허둥지둥 나선 제가 현관 앞에 작은 턱을 생각 못하고 발을 내딛다가 접질리면서 발을 다치게 된 것입니다.

손녀가 울었다 해도 밤새도록 울은 것도 아니며 이른 아침에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인데 아기가 울었다는 한마디에 앞뒤 가릴 것도 없이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얼른 달려갈 생각만 했다는 것이 저의 큰 불찰이었지요.

 깁스한 발을 내려놓고 누워 있는 제 옆으로 율이는 작은 발을 갖다 포개어 보기도 하며 나란히 곁에 누워도 봅니다. 이 순간도 아기에겐 좋은 추억으로 남아 질라나요?

 

과유불급過猶不及입니다. 무엇이든 적당해야 함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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