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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신영 Jan 01. 2021

날씨 단상

눈 내리는 날

                                                                                                                                                           

부산에 눈이 많이 왔다는 뉴스가 전해지고 부산 중심에 있는 백양산의 눈 덮인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아효. 큰 일 났네. 부산엔 눈이 오면 운전이 힘들어 사고 많이 나는데..."


딸이 부산의 눈 소식에 한 마디 한다.


 "안 그래도 걸어서 회사에 3시에 출근했다는 사람도 있네."


  당연한 얘기다. 원래 온화한 날씨고 겨울에도 아파트면 집안에서는 반팔을 입고 지낼 정도로 부산은 따듯하다.

눈이 오면 차가 올 스톱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눈이 없는 도시다 보니 눈에 대처하는 힘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부산 날씨는 겨울에도 영하의 기온으로 내려가는 일이 드물지만 눈이 내리는 날이 희박하다고 할 정도로 눈이 오지 않아 스노타이어도 필요 없고 타이어에 감는 체인도 필요가 없다.


20여 년 전에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오전반 수영을 마치고 밖에 나오니 함박눈이 내리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지하 슈퍼에서 장을 보고 지하철을 타고 우리 동네 교대역에 내려 바깥으로 나오니 도로에는 온갖 자동차들이 멈춰 있었다

 이튿날 수영장 사우나에 앉은 친구와 형님들은 어제의 폭설로 인해 자동차도 버리고 걸어서 집에 갔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부산엔 특히 지형이 산이 많아 고지대로 올라가는 곳이 많은데 버스도 중앙의 평지만 오갈 뿐 택시도 마을버스도 꼼짝을 못 해서 일 마치고 다들 한밤중이 되어서야 귀가를 했다는 얘기로 꽃을 피웠다. 나야 지하철과 도보를 이용하니 별 불편 없이 갔지만 조금이라도 경사진 곳에 집이 있는 사람들은 고생을 많이 했단다. 눈이 그렇게 많이 온 것이 몇 년 만이라더라?


오랜만에 눈을 보는 아이들은 신이 나서 온천천 부지에 내려가 눈사람을 만들고 동네 아이들과 눈싸움을 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그만큼 눈이 귀한 도시에서 사는 아이들의 발그레한 얼굴로 이리저리 뛰어노는 것을 보고 있으니 처음 부산에 시집을 와 겨울을 지내면서, 얼마나 눈을 그리워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잿빛 하늘을 올려다봤었던지 모른다. 눈이 오지 않아 겨우내 우울감을 털어내지 못했던 힘든 나날이었음을 떠 올린다. 그 이후로 이처럼 큰 눈은 오지 않았던 것이다. 내렸어도 뭉치기엔 부족한 눈이 손가락으로 셀 정도였으니 아이들이 얼마나 신이 날까?


그리고 10년 전쯤에 부산에 다시 큰 눈이 한 번  왔었는데 그때는 서울에서 있었을 때였는데 직장에 출근하면서 넘어지고, 엉덩방아 찧으며 다니느라 한의원에 가 침 맞는 일이 일상 다반사였다. 20년 넘게 부산에 살 다오니 적응이 안되어 눈길에 넘어지고, 비가 내린 뒤에 영하의 날씨로 살짝 얼은 경사진 길을 조심히 걷다가도 그대로 미끄러졌다. 아픈 것은 둘째치고 창피하기만 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서울은 한겨울에 하늘이 잿빛이면 눈이 내렸다. 눈이 자주 왔었다. 엊그제에도 아침에 창밖은 온통 잿빛이었다. ' 꼭 눈이 올 것 같네' 했는데 눈이 내렸다, 금방 녹았지만 저 아래 지역에는 대설 주의보가 내렸다.  지금에야 대기 오염으로 옛날보다는 눈이 적게 내리는 것 같다. 겨울이면 응당 눈이 내렸고 함박눈이 내리면 포근한 느낌이고 싸락눈이 내리면 왠지 스산한 기분이 들었으며 비가 섞인 진눈깨비가 내리면 마음부터 찌푸려졌었다.


 전국 어디에나 겨울이면 당연히 눈이 내리는 것으로 알던 철 모르던 새색시는 매일 겨울 하늘을 올려다보며 왜 눈이 안 오지? 회색빛 공기에 잿빛 하늘이면 눈이 내려야 하는데? 야속하게도 눈은 오지 않았다.


그리고 야속하게도 눈은 오지 않았다. 몇 년을 눈 내리는 것을 못 보고 살았다.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고 방학이 되자 여름, 겨울 방학을 이용해 애들 서울 구경시켜줘야 한다는 핑계를 대고 애들을 데리고 서울 친정으로 갔다. 여름에는 교과서나 사극 드라마에서만 볼 수 있는 궁궐을 보여 준다며 경복궁, 덕수궁, 민속박물관에 데리고 다니며 난 친절한 가이드 노릇을 했다. 엄마 어렸을 때는 이런 곳에 와서 그림 실기대회도 했고, 가을이면 국화 전시회도 했었어하며. 동생이 수영장이 딸려 있는 리조트를 마련해주면 올케와 조카들을 데리고 가서 묵고 돌아왔고, 겨울엔 눈썰매장이 있는 곳으로 가서 눈 구경을 못한 아이들에게 실컷 눈 구경시켜주고 썰매를 태워줬다. 목동 아이스링크장, 잠실 롯데월드 스케이트장에 데리고 가서 스케이트도 즐기도록 했었다.


 아이들에게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 부모, 특히 엄마 마음에서 그렇게 하고 싶었다. 아이들은 방학이 되면 함성을 지르며 신나 했다. 또래들이 하지 못하는 색다른 경험으로 이야깃거리가 풍부해지니까 더욱 좋아했다. 명절에는 차가 막힌다, 복잡하다는 이유로 서울 친정에 가는 것을 만류하시는 시어머니의 말씀을 들으며 종손 며느리로서의 역할만 묵묵히 해냈다. 그러나 애들 방학엔 무조건 아이들 핑계를 대고 서울행을 했다. 그나마 내게 시집살이에서 한 숨을 돌릴 수 있는 기회였으므로.


 부산엔 그 시절 북구 쪽에 실내 아이스링크가 한 군데밖에 없을 정도로 겨울 스포츠라면 스포츠라 할 수 있는 스케이트 탈 곳이 없었다. 지금은 금곡엔 없어지고 동래 아이스링크 나 2000년도 이후에 신세계 센텀 백화점이 들어서면서 그 안에 아이스링크장도 생겼다. 아이들이 다 크고 나니 저희들이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갔다. 부산에서는 스키장이 없으니 스키장을 가려면 강원도에 있는 그곳까지는 장거리 여행이다. 다들 알아서 하는 나이들이니 그때부터는 상관하지 않아도 됐다.


서울과 부산의 문화적 차이는 날씨의 차이만큼이나 많은 차이가 났던 기억이다. 요즘이야 ktx,  gtx 등 2시간 30분~3시간 안에 서울역에서 부산을 갈 수 있으니 4~5시간씩 걸렸을 때와는 받아들이고 세워지는 문화들이 빨라진 것 같다.


 이 작은 나라에서도 어느 지역은 폭설로 그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는다. 뉴스에서는 도로에서 미끄러지는 버스를 시민들이 힘을 모아 붙잡아 주는 화면을 보고 있으니 걱정만 될 뿐이다. 눈은 낭만적이긴 하지만 올 때뿐이어서 눈이 쌓이면 불편함을 겪고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한다. 오죽하면 집 앞이나 상가 주변의 눈을 치워 달라는 당부를 구청에서 권고를 할까? 미국 같은 경우에는 집 앞의 눈을 치우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 하므로 쌓인 눈을 치우느라 화염방사기로 녹여 없애는 사람도 보였다. 그러나 눈이 녹아 그 물기로 빙판이 되어 사고가 더 크게 날 수 있다며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눈을 치운다는 말이 있지만 녹여 없앤다는 말은 없다는데, 이 모든 것이 더 큰 사고를 예방하기 위함인 것 같다. 나이 어리고 철없을 때나 펑펑 눈이 쏟아지면 좋아라 뛰어나가 친구 만나 놀기도 했지만 그것도 한 때, 이제는 눈으로 인해 큰 사고 없이 지나가길 발랄뿐이다. 더욱이 코로나로 힘든 지경인데 우리나라뿐 아니라 노르웨이에서는 눈사태로 인해 싱크홀이 생겨 주택이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사망자가 생기고 실종자를 찾는 헬기와 드론이 떴다. 더 이상 인명 피해가 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0년 마지막 해넘이를 넘기고 새해가 밝아 왔다.


제발 새해엔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온 세계가 한 목소리로 뭉친 코로나 19 퇴치가 어서 이루어졌으면, 이제 더 이상 지구와 인류를 파멸시키는 전염병과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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