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전 부산을 떠나면서 부산 땅을 밟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마음은 언제 그랬냐는 듯 부산을 내 집 드나들듯 자주 찾는다. 중앙로는 별반 달라지지 않아 너무나도 익숙한 거리의 풍경들이 편안함을 준다. 초량, 부산진을 지나 자주 들려 옷감과 의류와 액세서리 부자재를 사들이던 진시장이 보인다. 너무나도 편하게 다니던 곳,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샅샅이 알기에 동선을 그려 시간을 단축시켜 시장 보기도 잘했던 곳이다.
예전처럼 해운대 벡스코 앞 픽업 장소로 바로 갈 때와 달리 일반 버스로 이동하다 보니 즐겨 다녔던 곳을 지나치게 되고 생각이 많아진다. 이번 모임은 책방온실이 있는 광안동에서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근처에 사는 경숙언니가 정류장으로 마중을 나오셨다.
향숙 씨와 정아 씨가 언니의 아파트에 주차를 하고 모두 모인 우리는 또 멋진 집에서 점심식사부터 하기로 한다. 식사 후에는 브런치 이은호작가님과 따님이 운영하는 책방온실에서 커피와 디저트를 먹기로 했기에 우리는 사뭇 들뜨는 것 같다. 작가님과 댓글 답글로 소통하면서 한번 찾아뵙겠다고 했는데 글벗들도 함께 해주기로 해서 고맙다.
책방온실은 경숙언니의 아파트 맞은편 골목에 위치해 있었다.
화분이 놓인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작가님과 따님의 손길로 아담하게 가꾸어진 카페가 우리를 맞았다.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 가니 마른 체격의 호리호리한 분이 작가님임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반갑게 맞아 주시는 작가님은 글벗들과 잠시 인사를 나누고 커피가 고파 커피와 차, 케이크부터 주문한다.
따님이 카페를 하게 된 사연, 앞으로의 나아갈 카페의 방향을 간략하게 말씀해 주셨다.
당차게 헤쳐 나가는 따님을 믿고 지원해 주는 아빠의 모습이 보기 좋다. 지역 방송국에서도 촬영을 하고 갔다는 기분 좋은 소식도 듣고 인근 중학교의 선생님이 학생들에게도 알려 주어 학생들이 자주 찾는 책방온실의 전망 밝음이 느껴져 안심이 된다고 할까? 마음이 좋다.
앞으로 두 분이 세워 놓은 계획대로 차곡차곡 꿈을 이뤄가며 오래도록 사람들의 가슴속에 머물기를 희망한다.
진열대엔 아기자기한 문구류가 호기심을 자극하고 특이한 디자인의 초록, 노랑 납작 연필이 신기해서 만져도 본다. 벽의 서가엔 작가님과 따님이 선정한 도서들이 꽂혀 있다.
오픈전에 말씀하신 대로 작가님이 베이킹한 파운드와 귀여운 마들렌이 우리들의 커피 안주로 등장했다.
달달한 케이크는 진한 커피와 잘 어울렸고 품질 좋은 차 종류도 맛있어서 좋았다. 글벗들은 하율이에게 선물한다며 연필등을 고르게 해서 내 가방은 책과 선물로 불룩해졌다.
단편소설집도 출간하신 작가님은 책도 선물해 주셨는데 집에 돌아와 다 읽어 버렸다. 그만큼 작가님의 소설이 흡입력이 있어서일 것이다. 누구나 가졌을법한 어린 시절의 이야기, 황순원의 소나기를 떠올리게 한 '종이학'은 잔잔한 아련함으로 다가온다. 청소년을 거치고 청년, 사회인으로 성장하면서 사회의 현실과 부딪는 직장인의 고뇌도 우리 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들이다. 다양한 주인공들이 삶을 살아나가는 힘은 결국 사랑으로 집결됨을 느낀다.
작가의 말에 "내 소설은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다. 사랑이 없으면 이 세상을 살아갈 힘을 낼 수가 없다. 그래서 어린 시절 유치한 사랑으로부터 청춘시절의 풋사랑 그리고 조금은 묵직한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라고 하셨는데 맞는 말씀이다. 사랑은 모든 걸 가능케 하는 힘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작가님이 차분하게 따님이 진행하는 책방온실의 미래를 엮어갈 이야기에 힘을 실어 말씀하시는 모습에서 진정한 사랑이 온실의 포근함과 함께 책과 하는 여행이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