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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방제림과 환상의 물그림자

아름다운 가을을 담아낸 담양

by 안신영

이번 가을 여행의 약속 장소는 담양이었다.
담양은 멋진 고장. 이름만 들어도 바람이 산뜻해지는 곳. 대나무로 유명하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지만, 늘 검색으로 여행 지도를 그리는 향숙 씨는 “메타스퀘어가 멋진 프로방스 스타일”이라며 이미 그림을 그려두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늦잠을 잤다.

첫차를 탈 예정이던 아침은 온데간데없었고, 뒤늦게 담양에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부산에서 올라온 글벗님들은 메타프로방스에 있다며 관방제림에서 만나자고 했다. 터미널에서 택시를 잡아 타고 관방제림으로 가서 님들을 기다렸다. 잠시 후 만난 우리들. 우선 차를 주차시켜 놓은 뒤에 배가 고플 나를 위해 관방제림 둑 아래의 정자에 김밥과 마실 것을 펼쳐 놓는다. 경숙 언니는

"이것도 먹어봐요. 신영 씨 현미죽순빵이래요. 맛있어."

배가 고팠던 나는 허지겁 죽순 모양의 빵을 먹으며 맛있다고 웃었다.

"목 메이지 않게 이것도 마시면서 먹어요. 배고플 텐데 김밥 먹어봐요." 향숙 씨가 부산서부터 준비해 온 먹음직스러운 달걀지단 김밥과 두유를 건네준다. 차 안에서 삶은 달걀 두 개 먹어서 괜찮다고 하면서도 염치 불고하고 눈물겨운 김밥을 맛있게 먹었다. 늦어서 미안해할까 봐 늦은 것에 대해 한마디도 없는 벗님들.

천천히 관방제림 둑으로 올라가면서 벗님들에게 택시기사에게 듣고 관방제림을 잠시 둘러본 소감을 전한다.

"관방제림은 고목나무 숲이래요. 팽나무 과의 푸조나무가 번호표를 달고 우뚝우뚝 서 있어요. 얼마나 오래됐는지 전부 고목이에요. 열매는 먹어도 된다고 해요." 했더니 식물에 관심이 많은 경숙언니는 어느새 열매를 따서 맛을 보시며

“이거, 한번 먹어봐요.”

나와 정아 씨에게 한 알씩 먹어보라고 주신다.

우람한 숲, 고목의 그림자, 손바닥 위 작은 열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서로를 챙기는 벗님들의 마음.

담양에서의 하루는 그렇게 천천히, 깊게 시작되었다.

관방제림은 담양의 관방제를 따라 약 2km 이어지는 풍치림이다. 숲이라는 말이 어울리지만, 단순히 울창하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면적만 해도 4만 9천㎡가 넘고, 300~400년을 버텨 온 나무들이 빼곡히 자리 잡고 있으니, 그 자체가 하나의 오래된 역사책 같다. 1991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고, 2004년에는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곳. 숲의 아름다움을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곳이라는 사실을, 실제로 걸어 보기 전엔 잘 몰랐다. 이 숲에는 약 420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다. 그중 푸조나무가 111그루, 팽나무 18그루, 벚나무 9그루, 그리고 그 외에도 음나무·개서어나무·갈참나무 등이 어울려 있다. 천연기념물 구역 안에만도 185그루의 거대한 고목이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다. 이 모든 나무가 우연히 자란 것은 아니다. 영산강 상류인 담양천의 물길을 다스리기 위해 옛 부사 성이성이 제방을 쌓고 나무를 심은 것이 시작이었다.

그 뒤 철종 때 부사 황종림이 관비(官費)로 연인원 3만여 명을 동원해 지금의 규모로 확장하며 ‘관방제’라는 이름을 남겼다.(네이버지식백과 참조)

관방제림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사람의 손이 시작했고, 시간이 완성한 숲.
걷는 내내 선선한 가을바람이 오래된 나무 사이를 지나며 들려주는 이야기 같았다.

푸조나무에 붙은 번호표를 한참 바라보다 우람한 줄기를 이리저리 쓰다듬어 본다. 수백 년을 견뎌온 나무 한 그루가 품은 이야기와 풍파가 손끝으로 번진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을 맞이하고 떠나보냈을 텐데, 지금도 변함없이 이 자리에 서서 우리를 맞아준다는 사실이 괜스레 고맙다.

물 위에 비친 풍경이 너무도 압도적이라, 우리는 어느새 물 위로 이어진 데크길에 멈춰 서 물그림자에 빠져 들었다. 제방 위에 줄지어 선 아름드리 고목도 장관이지만, 제방 아래 말없이 흐르는 강물이 더 오래 마음을 붙잡아 둔다. 중대백로인지 큰 백로 한 마리가 징검다리 위에 가만히 서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백로를 구경하고, 우리는 또 그 눈길을 따라 백로를 바라본다. 눈에 들어오는 장면들이 묵묵한 호흡 하나로 연결된 듯 고요했다.

가로수는 끝없이 이어진 메타세쿼이아. 하늘을 향해 쭉 뻗은 키다리 나무들은 가을빛을 차곡차곡 입어가며, 그 긴 몸을 천천히 물들이고 있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곳을 보여주겠다며 눈이 아프도록 검색했을 향숙 씨가 새삼 고맙다. 프로방스메타숲에 함께 가지 못해 내가 서운할까 봐, 그곳보다 여기가 훨씬 더 예쁘다며 웃는다. 블로거들이 올린 사진처럼 색감이 화려하게 ‘색’ 입혀진 풍경은 아니라고, 아직은 노랑과 붉음이 덜 물든 시기라고 말한다. 관방천의 메타스퀘어는 오히려 그 덜 익은 색감이 강물과 어우러져 더 자연스럽고 조화롭다.

물 위에 내려앉은 그림자는 환상적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만큼 아름답다. 사진보다 실제 눈으로 바라보았을 때 훨씬 더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관방제림과 메타스퀘어길에서 가을을 실컷 품은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담양의 유명한 국수거리로 향했다.

국수거리는 관방제림 둑 끝에서 관방천을 따라 국수집들이 차례로 늘어선, 소박하면서도 활기 넘치는 곳이다.

사진; 박정아. 노향숙. 안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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