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일단 써보기로 했다. 반복된 쓰기가 부담 없는 습관이 될 때까지...
아직은 시가 되지 못한 시처럼..
아직 수필이 되지 못한 수필처럼..
<9월 11일, 목>
자본주의 궤도
돈의 흐름과 따로 노는 나
정작 필요할 땐, 돈이 없다
중력과 궤도는 힘과 균형이건만
돈의 인력에도,
자본주의 궤도에서 자꾸만 이탈한다
<9월 12일, 금>
찜찜한 마음
찜찜한 마음은 해소하고 가는 게 좋다.
그게 마음에 오래 남으면 스트레스가 된다.
나이를 먹으니 몸 여기저기서 고장이 나고, 퇴화하는 게 느껴진다. 잇몸이 망가져 이가 빠지고 이석증으로 어지러움에 시달리는 것처럼 눈에 띄는 것도 있지만, 알게 모르게 몸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들도 종종 느껴진다. 이유가 분명하지 않은 증상들은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가끔은 신경 쓰이는 것들도 있다.
소화가 예전만 못하고, 자다가 손끝이 저릴 때도 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는 건강검진을 받지 못했다. 아니, 받지 않았다. 큰 탈이야 있겠냐는 마음도 있었고, 혹시라도 아프면 돈이 들까 걱정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다시 회사에 들어가면 검진을 받을 수 있겠지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내 마음을 알 리 없는 국가는 귀찮을 정도로 검진을 받으라는 문자를 계속 보내왔다.
최근 꾸준히 운동을 해온 덕분에 몸은 어느 때보다 가볍지만, 문자도 귀찮고 회사 복귀도 불투명하니 혹시나 큰 병을 키우기 전에 검진을 받기로 했다.
어제 미리 문진표를 작성해 둔 덕분에 검진은 빠르게 진행됐다.
먼저, 가장 간단한 혈압 측정—정상.
시력과 청력도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몸무게는 예상대로였지만, 키가 2cm나 줄었다. 나이가 들면 수분이 빠지고 등이 굽으면서 키가 줄어든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지만, 실제로 숫자로 확인하니 당황스러웠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많이 줄어들다니. 안 그래도 크지 않은 키에 2cm만큼 자존감도 줄어든 느낌이다.
위내시경을 비수면으로 받는 건 처음이다. 그동안은 수면 상태에서 대장내시경과 함께 받거나, 위장 조영촬영으로 대신했었다. 별거 아니라는 사람도 있지만, 다시는 비수면 못한다는 사람도 있어서 약간 걱정이 됐다.
식도에 마취약을 뿌리고 옆으로 누운 채, 약간 웅크린 자세로 의사를 기다렸다. 대략 2~3분이면 끝난다는 말에 안심이 되긴 했지만, 역시 처음이라 쉽게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 뒤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붙잡고 있던 간호사의 체온이 오히려 위안이 됐다.
내시경이 시작되고, 호스가 들어갔다.
“숨은 코로 들이마시세요.”
식도로 들어간 호스에 눌려 코로 숨 쉬는 게 쉽지 않았다. 혹시 문제가 생겨 시간이 길어지면 버티기 어려울 것 같았다. 목에는 불편한 이물감이 가득했고, 뱃속을 휘젓는 물체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숨은 막히고 목은 아픈 와중에, 등 뒤 간호사의 온기가 그나마 나를 버티게 했다. 여러 차례 코로 숨 쉬라는 말을 따라 하다 보니 어느덧 몇 분이 지났나 보다. 배에서 목을 지나 호스가 빠져나오며 내시경이 끝났다.
와이프도 예전에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다. 별일 아닐 거라는 위로의 말들보다, 추운 수술실에서 자신의 손을 잡아준 의사의 온기가 가장 큰 위로였다고 했다. 그 짧은 5분의 내시경을 받으며 내가 느낀 감정도, 어쩌면 그런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몇 가지 남은 검사를 마친 뒤, 의사의 진료가 이어졌다.
식도에 작은 염증이 있고, 위의 앞쪽은 괜찮지만 아래쪽에는 염증이 여러 개 보인다고 했다. 일주일치 약을 처방해 줄 테니 복용하고, 다음 주에 혈액검사 결과를 들으러 오라는 짧은 상담이 끝났다.
사실 얼마 전부터 검진이 내내 마음에 걸렸었다. 드라마를 보면 꼭 엎친데 덮친다. 상황도 여의치 않은데, 혹시라도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까 걱정도 됐다. 러닝을 열심히 했던 것도 검진에서 조금이라도 좋은 결과를 보고 싶어서였다.
혈액검사 결과는 다음 주에 나온다고 하니 불안은 일주일 더 안고 가야 하겠지만, 그래도 방학숙제가 끝난 것처럼 ‘받아야 한다’는 부담에서는 벗어나 홀가분했다.
가수 김완선 누님이 어딘가에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힘든 시기 고민만 하다가 고민을 멈춘 이유를 설명했다. 생각이 내 인생이 되는 건 아니고, 내 행동이 내 인생이 된다. 할 수 있는 걸 그냥 하는 것. 살아있는 한 결국 나의 행동만이 내 인생이 된다.
결국 행해야 일이 끝난다.
장고 끝에 악수 두듯 마음에 부담은 오래 둬봐야 스트레스만 될 뿐이다.
<9월 13일, 토>
쓰기와 습관
최근 들어 글쓰기가 잘 되지 않는다. 억지로 몇 줄 써보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 금세 포기하는 일이 잦아졌다. 필력이 늘지 않는다는 생각에 흥미도 점점 떨어지고, 읽고 쓰는 빈도 역시 줄어들고 있다. 생계를 위해 시도하고 있는 일들이 모두 여의치 않게 된다면, 결국 글을 써서 먹고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같은 상태로는 과연 글이 밥벌이가 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나도 잘 쓰고 싶다.
아직 더위가 완전히 가시진 않았지만, 저녁 무렵이면 가끔 선선한 바람이 분다. 토요일 내내 빈둥거리다가 끝나가는 여름 바람을 쐬고 싶어서 러닝을 나섰다. 하루 종일 침대 위에서 앉았다 누웠다를 반복했더니 다리는 뻐근하고 몸은 무거웠다. 요즘 너무 달린 탓인지 왼쪽 무릎도 불편했다. 그래도 나는 달리기가 좋다. 기록을 단축하고 싶은 욕심은 없지만, 나이 들어서도 계속 달리며 도파민을 느끼고 싶다. 그러려면 무릎에 조금 신경을 써야겠다.
요즘 러닝이 유행이라는 걸 실감한다. 예전과 달리 공원에서 달리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방송에서도 전문가들이 러닝을 권장하고, 다양한 주법을 소개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방법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내게 맞는 주법은 무릎에도 큰 무리가 없다는 ‘슬로우 조깅’이다. 보폭을 줄이고, 디딤발은 발 앞쪽으로, 종종걸음 걷듯이 달리는 방식. 익숙하지 않으니 신경 써야 할 게 많다. 머릿속으로 되뇌며 반환점을 찍고 돌아오는 길에 아까는 안 보이던 장미꽃이 눈에 들어왔다. 남들은 다 시들어 떨어져 가는데 유독 혼자만 조화처럼 빨갛게 피었다. 남들보다 늦게 피워서 인지, 혼자만 돋보인다. 분명 가면서는 보지 못했는데, 주법을 신경 쓰느라고 시야가 좁아졌었나 보다.
우리의 행동은 보통 세 가지로 나뉜다.
우선 갑작스러운 위협에 판단할 틈도 없이 움찔하거나 도망치는, 본능적 행동이 있다. 그리고 보통은 오감을 통해 감지하고 뇌의 판단으로 이루어지는, 일상적인 행동이 있다. 그런데 일상적 행동이 오래 반복되면 뇌가 크게 관여하지 않고 반 자동적으로 행동을 하게 되는데, 이게 습관적 행동이 있다.
움직임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때로는 스트레스를 유발하기도 한다. 하지만 판단에 의해 반복되는 움직임은 점차 뇌의 판단 영역을 자극하지 않는 습관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되면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판단이 줄어들고, 스트레스도 덜어지게 된다.
대부분의 스포츠에서는 이 습관적 행동이 매우 중요하다. 수많은 연습 끝에 어떤 상황에서도 신경 쓰지 않고 해낼 수 있을 만큼의 감각, 습관처럼 익숙해져야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결국 감각의 자유를 얻을 만큼의 반복이 등수를 가른다. 반복이 답이 될 수 있다.
대전에서 회사 생활을 하던 시절, 영업을 위해 골프를 배운 적이 있다. 처음 배운 건 기본자세를 잡고 골프채를 앞뒤로 움직이는 일명 ‘똑딱이’였다. 수백 번, 아니 수천 번 반복했다. 골프는 결국 앞에 놓인 공을 일정한 타점으로 쳐서 보내는 운동이다. 신경 쓰지 않아도 일정하게 공을 맞출 수 있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그래야 공을 맞추는 순간에 같은 폼을 유지하고, 방향과 강도의 전략을 세울 수 있다. 그래야 습관이 밴다.
쓰기도 마찬가지다. 습관이 될 만큼 반복적인 행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최근 글을 쓸 때마다 '기승전결이 있나', '이게 말이 되나', '더 좋은 표현은 없나' 같은 것으로 신경 쓰다가 종종 흐름을 놓쳤다. 좋을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이 내내 계속되다가 결국 맘에 들지 않는 글이 되곤 했다. 반복된 똑딱이에 결국 익숙해져서 습관이 될 때 내 스윙이 되는 거였다.
‘써지든 안 써지든 꾸준히 써야 한다’는 선배들의 말, 루틴이란 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
디딤발, 호흡, 무릎처럼 내게 맞는 달리기 방식이 더 이상 신경 쓰이지 않을 만큼 익숙해지면, 비로소 길가에 핀 예쁜 꽃을 바라볼 여유가 생긴다. 어떻게 써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만큼의 루틴.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의 반복. 그것이 결국 내 글쓰기 인생의 안정을 가져다줄 것이라 믿는다.
일기를 써봐야겠다.
시처럼.. 수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