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이 조금씩 느려진다
<9월 20일, 토>
비는 할아버지의 배려였을까
부친이 조금씩 느려진다.
시골에 가기 전 본가의 모습은 늘 비슷했다. 부친은 잠 못 이루고 새벽 두 시쯤 일어나 샤워하고 몸단장을 하며 집 안을 종횡무진 하셨다. 불이 켜진 채 부친이 집 안을 오가자, 모친도 덩달아 잠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일어나셨다. 한때는 '어차피 잠도 못 자는 거 멀뚱멀뚱 할바에야 가면서 먹을 김밥이나 싸자'는 심정으로 20줄씩 말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출발 시간과 상관없이 부모님은 잠 못 이룰 게 뻔했다. 그래서 적당히 다섯 시 정도로 타협을 봤다. 하지만 비 때문에 어두운 새벽 운전도 불편할 것 같았고, 때마침 형도 6시에 출발한다고 하기에 옳거니 싶어서 우리도 그 시간에 맞춰 출발하기로 결정했다.
본가에 도착하니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했다. 늘 도착하면 당장이라도 나갈 수 있을 정도로 준비되어 있던 분들이었는데, 여섯 시가 가까워졌는데도 부친은 아직 샤워 중이셨다. 심지어 5시 반까지 주무셔서 깨워야 했다고 한다. 내 기억에만 대략 40년, 시골 내려가는 부친의 모습에서 처음 본 광경이었다. 올봄만 해도 이렇지 않으셨는데, 더 안 좋아지신 것일까. 치매의 영향이라고 생각하니 낯설다기보다는 측은함이 더 크게 다가왔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명절날에 맞춰 시골에 내려가지는 않았다. 추석 몇 주 전에 벌초를 하러 갔고, 그 김에 어른들께 인사드리는 일정으로 다녀왔었다. 막히는 도로상황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우리처럼 명절 전에 고향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최근에는 명절 연휴를 즐기기 위해 미리 방문하는 이들까지 더해졌다. 추석 2주 전이었지만, 명절 연휴 마냥 지독하게 막혔다.
보통 두 시간 반이면 도착할 거리지만 넉넉하게 서너 시간을 예상하고 출발했다. 재미있게 이야기라도 하며 가면 좋겠지만 집안 특성상 그것도 쉽지가 않았다. 원래 두 분 다 말수가 많지 않으신데, 부친의 병 때문에 더욱 말씀이 줄어들었다. 난 지루하고 외로운 운전에 졸음과도 싸워야 했다. 지나치게 고요한가 싶으면 그나마 내비게이션이 한 번씩 적막을 깨고 말을 걸었다. 괜히 에어컨을 껐다 켜고, 온도를 낮추었다가 높이고, 시트를 위아래로 움직이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졸음을 참아냈다. 주전부리라도 챙길걸 그랬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잉고의 시간을 아이유의 노래로 버텨오다가 한 시간여를 남겨두고 사촌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원래 11시에 시골 작은집에서 보기로 했었는데, 어디쯤 왔냐는 전화였다. 본인은 5시에 출발해서 아홉 시쯤 이미 도착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니, 나도 그냥 원래대로 5시에 출발할 걸 그랬다는 후회가 또다시 뒤늦게 밀려왔다. 한 시간 더 자려다 결국 세 시간 더 운전했고, 정오가 다 되어 도착했다. 명절마다 부친이 새벽같이 출발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인데, 그걸 모르는 바도 아니면서, 역시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은 차이가 있다.
그래도 얻은 것이 있다면, 차가 막힌 덕분에 벌초는 참여하지 않아도 됐다는 것이다.
도착하자마자 점심을 먹고 어른들께 인사만 드렸다. 부친을 바라보는 여러 어른들의 눈에는 측은함이 서려있었다. 작고 단단하던 형님, 믿음직한 동생의 모습을 바라보는 모습은 이제 더 이상 없다. 나름 자수성가했다고 자부하며, 일가친척들에게 용돈을 주던 부친은 거꾸로 용돈을 받고 아이같이 기뻐하셨다. 그런 부친의 표정을 보며 난 생소한 쓰라림이 느껴졌다.
“산소에는 비가 와서 못 올라가지?”
“예 미끄러워서 못 가요”
돌아오는 차 안에서 부친은 여러 번 산소에 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셨다. 사실 비 때문만은 아니다. 이제 걷는 것이 너무 불편해 경사 높은 산소에 오르려면 장정 서너 명은 더 필요하다. 부친은 그 사실을 알고 그러시는지, 누구 한 명만 손잡아주면 거뜬히 오를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비만 아니었으면 가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었다고 나는 부친을 달랬고, 그런 부친은 할 수 없다며 다음을 기약하셨다.
갈 때만큼은 아니지만, 돌아오는 길도 다섯 시간이나 걸렸다. 평소라면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갈 때 워낙 오래 운전했기에 돌아오는 길은 제법 수월하게 느껴졌다. 사실 혼자만 왔다면 조금 더 빠르게 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른들은 나이가 들면 자주 화장실을 가야 해서 일부러 휴게소를 두세 번 거쳐오는 경로로 돌아왔다.
“늦었으니 저녁 먹고 가”
“아니에요 피곤해서 그냥 일찍 들어가 쉴게요”
피곤을 핑계로 내일은 오지 않겠다고 말하고 집으로 향했다.
매주 일요일 본가를 찾았던 것은 몸이 불편한 부모님을 자주 들여다보자는 취지였다. 오늘 부모님을 뵈었으니 내일 오지 않아도 그 취지에 크게 어긋나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와야 하는 날에 찾아뵙지 못할 때면 이상하게도 마음 한편에 죄송함이 깃든다. 그럴 때면 비가 와서, 일이 많아서, 피곤해서 같은 이유를 굳이 둘러대며 스스로를 정당화했다. 앉아서 운전만 한 내가 내일까지 피곤이 풀리지 않을 리 없다. 그저 죄송한 마음에 이유를 찾은 것일 뿐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부친도 어쩌면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더 이상 산소에 오르지 못한다는 건 이미 알고 계실 수도 있다. 하지만 할아버지를 뵙지 못했다는 죄송한 마음에 구실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갈 수도 있고, 가고도 싶었지만, 비 때문에 가지 못했다고 할아버지께 이해를 구한 건 아니었을까.
조상신이 존재한다면, 할아버지도 아버지의 상황을 알고 계실 테다.
그 비는,
할 만큼 했으니, 다치지 말고 이제 그만 오라는
어쩌면 할아버지의 조용한 배려였을지도 모르겠다.
<9월 21일, 일>
근육이 빠진다
갑자기 엊그제 받은 건강검진과 인바디 측정결과의 의미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5년 전 받았던 검진결과와 숫자를 비교해 봤다. 내과 의사가 했던 말들 때문에 잔뜩 기대했지만, 중성지방 수치가 줄어든 것 말고는 크게 차이가 없었다. 그렇게 여름 내내 땀을 뻘뻘 흘려가며 달렸고, 샤워를 두 번씩 해가며 아령을 들었건만 5년 전의 근육량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이 정도의 운동량이 나이 먹고 빠져가는 근육에도 미치지 못한다니, 운동을 얼마나 많이 해야 한단 말인가.
<9월 22일, 월>
흘러넘치는 열정
흘린 땀,
등줄기를 타고 서서히 흘러내리고
가쁜 호흡 천변 바람에 냉정을 되찾는다
몽실몽실 크고 작은 수많은 걱정
공허한 틈 사이
눈부시게 뜨거운 열정이 새어 나왔다
세상은 그 의지 담아내지 못하고
넘쳐흘러 안양천에 식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