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일단 한 걸음
<9월 26일, 금>
즐거움도 공부만큼 중요하다
결국 TV를 샀다. 돈 쓰는 게 부담스러웠지만, 다행히 쌓아둔 카드 포인트를 몽땅 털어 보급형 50인치를 장만했다. 아이를 위해 TV 없이 살아볼까도 고민했었다. 교육적으로 좋지 않다는 의견에도 일정 부분 동의한다. 예전 같았으면 전적으로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엔 즐거움도 교육만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될 사람은 TV 때문에 안 될 리 없고, 안 될 사람은 TV가 없다고 성공할 것 같지도 않다. 영향이 없다고 말할 수 없지만, 딸아이가 될 사람이라면 TV의 유무로 인생이 바뀔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흥미와 재미를 찾을 간접경험 기회로 삼는다면 공부하는 것 이상의 유익함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정적만 감돌던 거실에 조금씩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공부도 물론 중요하지만, 가족이 함께 앉아 TV를 보며 깔깔 웃는 시간도 또 하나의 소중한 행복이라 믿는다.
<9월 27일, 토>
한 걸음씩
책이 나오긴 했다
시에서 독립출판 지원사업을 한다는 홍보문구를 보고 많이 고민하지 않고 신청했었다. 머릿속에는 편집자가 붙어서 고급진 문구들로 수정되고, 멋진 삽화들이 포함돼서 그럴듯한 책이 만들어지고 전국 서점 가판대에 깔리는 상상을 했다. 웃기고 자빠졌다. 결국 ISBN도 없고 여기저기 빈 공간이 자리한 책이 나왔다. 시에서 시행했던 교육에 참석했던 작가들은 별도의 요청을 통해 그럴듯한 책이 나왔는데, 나는 몰라서 아무 요청을 하지 않은 탓이었다. '첫 작품이니까'라고 혼잣말을 하며, 내 이름 달고 책이 나왔다는 사실에 만족하기로 했다. 역시 경험이 중요하다.
광명시에서 열린 ‘아트 북페어’ 행사에 참석했다. 독립출판 작가로 선정된 이들에게 판매 기회를 제공하는 자리였고, 동시에 독립출판사들의 홍보를 위한 장이기도 했다. 작년에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 행사장을 찾았었다. 아이와 함께여서 좋은 작가와 책들은 구경도 못하고 여기저기 끌려 다니기만 했다. 올해도 작년의 나 같은 사람들만 행사장을 찾는다면 한 권도 팔리지 않을 거라는 우려도 있었다. 그래도 경험 삼아, 또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고 참석해 봤다.
행사장에는 조금 일찍 도착했다. 시작까지 한 시간 이상 남았는데도 야외 운동장부터 시민체육관 내부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미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셀러 작가들의 자리는 시민체육관 한쪽 면에 계단을 등지고 마련되어 있었다. 나는 2기 작가였고, 작년 1기 작가들을 포함해 대략 50명 정도가 참여한 듯했다. 미리 자리를 잡은 작가들 사이에는 사전 교류가 있었던 듯, 친근하고 유쾌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내가 배정받은 곳은 맨 끝에서 두 번째 테이블이었는데, 아직 아무도 오지 않은 상태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제일 먼저 와서 뭘 해야 하나 멍하니 서있던 사이 다른 작가들이 도착했고, 조금 늦었지만 우리 팀도 행사 시간에 맞춰 판매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우리 팀은 나를 포함해 나이가 있어 보이는 남자 3명과 젊은 여자 1명(이후 조(녀) 작가)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조(녀) 작가는 우리 팀 분위기를 고려해 운영팀이 의도적으로 배치한 건 아닐까 행사를 진행하는 사이 생각이 들었다. 어림잡아 대충 50살 전후 남자 3명이 자칫 칙칙할 수 있는 팀이었다. 다행히 박 작가가 야외활동 전문가라서 팀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 덕분에 조 작가 혼자 고군분투하는 일은 없었다.
행사는 예상대로 아이와 함께 온 부모들이 많았다. 혹은 젊은 연인들, 행사 관계자의 지인들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이들의 눈길을 끌 수 있거나 지인들이 많이 온 부스는 유독 문전성시를 이뤘다. 우리 팀을 찾는 손님은 행사 끝날 때까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나마 관심을 보인 사람들은 두 부류였는데, 하나는 사주에 관심 있는 어른들이고, 다른 하나는 곤충에 관심 있는 아이들이었다. 남자 조 작가가 책을 사면 사주를 봐주겠다는 광고를 걸었고, 박 작가가 테이블에 다양한 곤충 장난감을 깔아놓은 덕분이었다. 나는 밥도 먹지 않고 종일 앉아 내 책에 관심을 보인 사람을 세어봤는데, 두 명이 다였다. 애초에 책이 많이 팔릴 거라 기대하진 않았지만, 이 정도로 관심이 없을 줄은 몰랐다.
나는 글로 승부하고 싶지만, 그것도 일단 책을 펼치게 해야 가능한 일이다. 거리낌 없이 호객행위를 하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어야 한다. 관심을 보이면 판매로 이어지도록, 애드리브를 멈추지 않는 기술이 필요했다. 그런데 나는 그게 잘 안 됐다. 과거에 영업은 어찌했었는지 잘 모르겠다.
행사 내내 나는 다른 작가들의 책을 읽거나,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숲 체험 전문가 박 작가의 이야기, 소설책을 두 권이나 낸 남자 조 작가의 이야기, 젊은 청춘을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여자 조 작가의 이야기. 그러면서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세 사람의 삶을 살짝 엿봤다.
최근 글을 계속 써야 하나 고민이 깊어지던 시기였다. 실력은 정체된 것 같았고, 브런치의 구독자와 좋아요도 기대만큼 늘지 않았다. 재능 탓을 하며, 역시 다른 일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런데 내 책을 보던 작가들의 칭찬이 이어졌다.
“원래 글을 쓰셨었나요?”
“솔직한 글에서 힘이 느껴져요.”
“책의 가독성이 좋네요.”
당사자 앞에서 악담이야 할 수 없었겠지만, 설사 그 칭찬이 과장이었다 해도 잠시나마 계속 나아갈 동기는 생겼다. 역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취업 준비 중인 일들이 정말 기회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진짜 글로 승부를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취업이 된다 해도 글은 진심으로 써볼 생각이다. 어차피 은퇴를 하더라도 100세 시대에는 지속할 거리가 필요하다. 나는 남들보다 5년 먼저 인생 2막을 준비한 셈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의 길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훗날 내가 ‘작가’라는 명함을 걸고 글을 쓰고 있다면, 그건 지금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일이 될 것이다. 멀지 않았다고 믿는다. 오늘 얻은 용기로 조금만 더 정진해 봐야겠다.
결국, 책은 한 권도 팔지 못한 채 행사가 끝났다. 나는 다른 작가들과 교환한 책 네 권이 전부였다. 그런데 끝날 무렵에는 '왜 왔나' 싶은 비관적인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비록 만원 한 장도 집에 가져가지 못했지만, 나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과 기억에 남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무엇보다 시기적절하게 자신감까지 얻었다.
뭐든지 행동하기 전 생각이 깊었다. 때로는 위험을 피하기도 했지만 때를 놓치는 일이 더 많았다. 책을 낼까 말까, 행사에 참석할까 말까. 긴가민가 했다면 역시나 책은 막연한 목표로 남았을 것이고 판매행사 같은 건 기회도 었었을 테다. 완벽하다 할 수는 없지만, '잘 왔다’는 생각으로 마무리했으니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은 한 걸음 아니었을까.
<9월 28일, 일>
사진보다는 무덤
지난주는 본가에 가지 않았다. 괜히 죄송한 마음이 들어서 이번 일요일엔 비가 와도 꼭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생각보다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다. 또다시 비를 핑계로 본가에 가지 않으려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 같아서 단호하게 일어났다. 누워서 미적거리다 보면 분명 가지 않을 이유를 하나둘 붙이게 될 게 뻔했다.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아침을 챙겨 먹고, 바로 갈 준비를 마쳤다. 역시 고민할 시간에 몸을 움직이면 언젠가는 끝난다. 그래도 비가 와서 걷지 않고 버스를 타고 갔다.
“지난주 시골 갔던 건 기억나세요?”
“기억나지. 그런데 비가 와서 산소엔 못 갔잖아.”
다른 건 기억이 흐릿한데, 할아버지 산소에 못 들렀던 사실만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계셨다. 어지간히 아쉬웠던 모양이다. 가봐야 산 중턱에 있는 작은 봉분 하나일 텐데, 왜 그토록 가고 싶어 하시는 걸까. 할아버지, 할머니가 보고 싶으신 마음이라면 서랍 속 사진 한 장이 더 기억을 선명하게 만들어 줄 것 같은데 말이다. 2차원 속 사진으로는 그리움을 해소하기엔 부족했나 보다. 봉분 앞에 서면 알 수 없는 어떤 기운이라도 느껴지는 걸까.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나도 그렇게 될까. 부모님의 부재에 따른 그리운 감정은 아직 온전히 이해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미리 이해하고 싶은 감정도 아니다. 때가 되면 알게 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