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마음이 벌써 춥다

이래저래 여전히 막막하다

by 케빈은마흔여덟

<10월 18일, 토>

감기인가


아침부터 더웠다 추웠다 했다. 땀이 나면 선풍기를 틀고, 다시 추워지면 끄고, 기분만큼 몸도 변덕스러웠다. 어제부터 목에서 느껴지던 불편한 공허함은 염증 때문인지, 긴 숨을 내쉴 때마다 그렁그렁한 이물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가지 않고 종일 누워 쉬었지만, 마음은 영 편하지 않았다.


요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있으면 몸은 편한데,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따라온다.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뭘 해야 할지 막막한데,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내가 부끄럽고, 그럼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은 죄를 짓는 것 같아 자꾸 자책하게 된다. 우울한 마음에 불편하느니 그냥 나가서 뛰자는 생각이 들어, 욱신거리는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그게 무슨 변화가 될까 싶지만, 역시 뛰고 나면 다시 나아갈 긍정의 힘이 생긴다. 무거운 다리는 살살 걷다 보면 달리고 싶은 충동을 만들고, 천천히 스며드는 땀은 몸에 기름칠을 해준다. 속에 있던 불편한 생각들이 몸속 열기에 밀려 땀구멍을 비집고 나가면 평온함이 찾아온다. 사람들이 취미생활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감기증상이 있는데, 찬바람 맞아도 괜찮을까? 모르겠다. 괜찮지 않으면 그건 그때 생각 하는 걸로.





<10월 21일, 화>

나도 쓸모를 빨리 찾고 싶다


‘신인감독 김연경’이라는 프로그램이 인기라기에 한 번 시청해 봤다. 은퇴하거나 퇴출된 여자 프로 배구 선수들을 모아 팀을 만들어 경기를 펼치는 스포츠 예능이다. 야구로 치면 작년에 봤던 ‘최강야구’와 비슷한 형태다. 여성 선수들이고, 종목만 배구로 바뀌었을 뿐이다. 내가 최강야구를 보다가 안 보게 된 이유처럼 뻔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내 기준에서 이런 스포츠 예능은 장수하기 어렵다. 꿈을 포기하지 않은 선수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이 소개되면서 시즌 초반에는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지만, 너무 이겨도 지루하고, 너무 져도 재미가 없다. 신선함이 익숙해지고, 사연의 깊이가 잊힐 즈음엔 관심도 떨어진다. 게다가 예능 특성상 중간중간 재미까지 있어야 하니 프로그램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이런 스포츠 예능을 보다가 말고는 했다.


그럼에도 이런 프로그램이 많아지면 좋겠다. 스포츠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에서도 시도되면 좋겠다. 100세 시대를 향해 가는 사회지만 자동화로 일자리를 잃었고, 이제 인공지능의 확대로 더 많은 퇴직자가 생길 거라는 예측도 있다. 아직 열정은 식지 않았고, 자신의 쓸모를 입증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기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은퇴해도 기회가 있다는 메시지가 사회 전반에 퍼졌으면 좋겠다. 나도 포함해서 말이다.

겨울이 다가온다. 내 마음에도 볕 드는 날이 오면 좋겠다.




<10월 22일, 수>

감정어휘


감정 어휘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큰 문제는 경험이 부족해 서고, 그래서 그걸 표현할 적당한 어휘도 쉽게 찾아지지가 않는 것 같다. 가끔 글이나 노래에서 들은 표현이 실제 그런 느낌일까 궁금할 때가 있다. 특히 사랑과 이별에 관한 표현은 너무도 다양한데, 나는 와닿지 않을 때가 많다. 마음이 덴 것처럼, 총 맞은 것처럼. 이런 건 진짜로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다.


시를 쓰고 책을 읽으며 감정 표현을 공부하고 있지만, 부모님을 볼 때 느껴지는 감정은 나도 잘 모르겠다. 무서움인지, 불안인지, 고통인지, 아니면 측은함인지. 나의 사회적 불확실성도 마찬가지다. 걱정인지, 불안인지, 무모함인지, 아니면 별것도 아닌 자책인지. 그럴 것 같은 표현은 있어도 딱 그런 표현은 못 찾겠으니, 역시 아직은 초보 작가인가 보다. 이래저래 여전히 막막하다.




<10월 24일, 금>

마음의 여유는 존재할까


급하지 않은 속도로
나뭇잎 하나, 하늘을 올려다본다


시간은 맥없이 흐르는데, 쫓지 않는다
그저 그 속에 나도 존재할 뿐


여유란 하지 않는 시간일까
아니면, 다른 걸 생각할 틈일까


눈코 뜰 새 없이 해야 할 일을 했을 때도
한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될 때도
여유라는 건 마음에 담아두지 못했다


사뿐히 떨어지는 낙엽
유유히 떠가는 구름
모든 것이 마음의 연료다


분주한 삶 속에서도
잠시 멈출 수 있다면
그 순간, 삶은 숨을 쉰다


여유는
달리며 가쁜 호흡 사이에서도
들이킬 수 있는 긴 숨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07화감정의 파도, 시간이 해결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