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1일, 금>
최근 도통 아이와 시간을 잘 보낼 수가 없다. 세상 문물에 눈을 뜨기 시작한 아이는 하고 싶은 것들이 오죽 많을까. 그런데 아이가 나쁜 길로 갈까 두려운 마음에 이거는 안된다, 저거는 하지 마라 제한을 늘리고 있다. 그러니 아이는 부모와 보내는 시간보다 친구들과 놀거나 새로운 문물을 즐기는데 시간을 더 많이 사용하게 됐다. 심지어 부모의 제한을 피해 잠까지 줄인 듯하다. 평소에는 어떻게든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으려 하고, 주말이면 새벽같이 일어나 몰래 하고 싶은 걸 하다가 들키곤 한다. 집에서는 TV나 휴대폰에 빠져서 부모와 노는 시간도 거의 없다.
그래서 오랜만에 아이와 함께 놀아보자는 취지에서 롯데월드에 갔다.
예고한 며칠 전부터 소풍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들떠 있었다. 오늘은 새벽같이 일어나 한껏 기대한 모습을 하고 이리저리 부산 떨며 준비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 아직은 아이다.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한창 노는 것이 좋은 때임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라는 부모의 욕심에 너무 가둬두는 것은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아직 한창 소풍시즌을 맞이한 롯데월드는 입구에서부터 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있었다. 재미있는 놀이기구 하나는 탈 수 있을까 걱정이 들었다. 우리는 특별한 계획 없이 아이의 발걸음을 따라다녔다. 아이는 부모의 체력 따위 안중에 없이 종회무진 했다.
어지러운 건 안되고, 무서운 것도 안되고, 시시한 것도 안되고,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는 놀이기구를 제외하고 나니 탈 것도 그리 많지 않았다. 사람들 마음도 다 비슷해서, 그나마 탈 수 있는 몇 개도 줄을 서야 했다. 그것도 예전에는 공평하게 기다리기나 했지 요즘은 매직패스라는 것을 사서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기도 한다. 이젠 시간도 돈을 주고 사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이놈의 돈돈돈. 결국 시시한 놀이기구만 반복해서 타다가 오전을 다 보냈다.
금세 만보 걷기를 달성한 우리 부부의 몸은 지쳐갔고, 많은 사람들에 치이고, 에너자이저 같은 아이를 쫓아다니다가 결국 문제가 생겼다. 나는 벤치에 앉아서 쉬고 와이프와 아이는 한 시간 반을 기다려서 기구를 타고 오더니 갑자기 모녀간에 냉기가 흘러나왔다. 좁은 기구 안에서 뭔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와이프는 아이와의 시간이 아까워 뭐라도 같이 하고픈 마음에 뭐 하고 있냐고 자꾸 물었고, 동영상을 찍는 아이는 조용히 해달라는 말을 계속했나 보다. 그러던 중 아이가 조금 선을 넘어서 뱉은 말에 와이프가 마음이 상했다는 거였다. 좁은 기구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갇혀 있던 짧은 시간에 대충 어떤 모습이었을지 짐작이 됐다.
고작 세명의 가족이 하루동안 마음을 맞추기도 이렇게 어렵구나
결국 서로의 감정 균열이 봉합되지 않았고 롯데월드에서 화해는 결국 하지 못했다. 우리는 냉랭한 분위기로 7시 정도에 일정을 마무리했다.
아이는 사춘기가 되어가고, 와이프는 갱년기가 되어간다. 아이는 놀고 싶지만, 와이프는 놀다가도 금세 지친다.
아이는 호기심이 넘쳐나고, 와이프는 호기심이 줄어간다. 아직은 부모에 대한 사랑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와, 일방적인 관심이 사랑이라 생각하는 부모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피곤과 짜증이 더해졌으니, 불가피한 상황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각자 라면을 하나씩 끓여 먹고 원기를 충전했다. 내일이면 또 둘이 언제 그랬냐는 듯 희희낙락할 테니, 괜히 중간에서 중재하려다 새우등 터지질 필요는 없다. 놀다가 싸우고, 화해하고 그것이 사람 사는 세상 아닌가. 그래도 아이와 하루 종일 놀았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평온한 우리 가족이다.
<11월 1일, 토>
역시나 언제 그랬냐는 듯 와이프와 아이는 사이가 좋아졌다. 신기하고, 재미있기도 해서 물었다.
“그래서 둘이 화해는 했어?”
아이는 나를 보며 검지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고 무언의 표정으로 말했다. ‘아빠 쉬, 왜 그런 말을 해?’
사춘기는 갱년기를 못 이긴다고 하던데 그 때문일까. 어제만 해도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던 아이는, 엄마의 마음이 걱정인가 보다.
역시 아직은 아이다.
<11월 3일, 월>
지극히 개인적이고, 지극히 사사로운 글
가을이 깊어간다. 나무는 마치 말초신경부터 서서히 감각을 거두듯, 잎 끝에서부터 겨울을 준비하는 모습이 신기하다.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 끝, 아직 떨어지지 못한 몇몇 잎사귀들은 혹시나 하는 미련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 하지만 계절의 흐름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오고,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햇살도 이내 차가운 바람으로 바뀐다. 자연의 이치 앞에 우리는 그저 흐름을 탈뿐이다.
온 세상이 AI 때문에 난리다. 인공지능이 프로바둑기사를 이길 때까지만 해도 그다지 체감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Chat GPT 등장 이후로는 진화 속도를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다. AI패권을 움켜쥐려는 강대국과 세계적인 기업들은 앞다퉈 시장에 뛰어들었고, 이미 출시되어 시장에 선보인 생성형 AI도 다수가 있다. 우리나라도 조금 늦긴 했지만 이번 2025 APEC에서 AI의 패권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위험하니, 우려스럽니 해도 인공지능은 어쩔 수 없는 흐름이다. 인공지능이 활용될 다양한 산업이 등장하고, 그에 따른 현존하는 산업의 구조적 변화도 불가피한 현실이 되어 버렸다.
알게 모르게 이미 도로에는 자율주행차가 다니고 있다. 로봇이 의학에서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전쟁을 대신해서 사람들을 죽이고 있기도 한다. 온라인상에서는 이미지, 소리, 영상 등 만들지 못하는 영역이 없을 정도다. 산업의 다양한 부분에서 이미 인공지능은 사용되고 있고, 그 범위는 앞으로 더 확대될 예정이다.
글 쓰는 작가들에게도 먼 산 불구경 하듯 바라볼 수만은 없다. 오타와 맞춤법의 오류를 찾아주고, 긴 글을 요약하고, 주제를 찾아주는 일 같은 건 나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고 있다. 주제를 주기만 하면 이미 나보다 더 전문화되고 표현도 좋은 글을 내놓는다. 심지어 유료 버전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생성형 AI를 활용해서 책 한 권은 금방 만들 수 있는 수준에까지 와있다. 밥벌이로 글을 쓴다는 생각은 무모한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막 초보 작가가 된 마당에 벌써 포기를 해야 하나 고민이다.
전문가들은 인공지능의 사용은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고 말한다.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위험하다는 이유로 사용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는 더 이상 논쟁거리가 아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단순히 어떤 일을 잘하느냐 여부보다는 인공지능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 여부가 더 중요할 평가 항목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난 Chat GPT를 사용해 보긴 했지만 IT분야에 자질도 부족해서 전문화된 버전을 사용할 줄 모른다. 또 글을 쓰면서 작정하고 사용하자니 왠지 내 글 같지 않고, 내 글이라고 우길 만큼 표정관리도 하지 못한다. 심지어 맞춤법을 수정하면서도 죄의식이 조금 느껴질 정도다. 인공지능이 닿지 않는 영역은 없을까.
본가에 가면 모친과 누나는 소소한 부업을 하고 있다. 전선 같은 걸 작은 소겟에 끼워 넣는 일이다. 산업화를 거치며 단순노동이 로봇으로 대체되었지만, 이 건 자동화를 할 수 없는 일이다. 로봇이 잡기엔 너무 유연한 선이기에 단순한 작업이지만, 여전히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하는 일이다. 이 부업이야말로, 비록 전문적인 일은 아니지만 인간의 노동으로만 할 수 있는 영역이다.
글 쓰기에도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 없을까.
쓰기 영역에서 인공지능도 아마 전문영역에서 먼저 도입될 가능성이 크다. 사실을 다루고, 전문가의 견해를 다루며, 다양한 자료를 분석하는 곳에 적합할 것이다. 법과 규칙을 해석하고 그에 맞는 결론을 도출하는 곳에 사용될 것이다. 오류를 수정하고 사실에 맞게 수정하는 곳에 쓰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인공지능이라도 작고 유연한 케이블처럼 사소한 개개인의 이야기는 알 수가 없을 것이다.
글 쓰기의 영역에서 앞으로 인간이 쓴 글의 차별화는 개개인의 사소한 일화, 개인의 사소한 생각, 개인의 사소한 느낌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진의 발명으로 그림이 소외될 위기에서도 그림은 그림만의 영역으로 자리 남았듯, 글도 인간의 영역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기준은 아마도 개개인의 사소함이지 않을까.
인공지능이 활용될 영역은 어디까지 일지 지금으로서는 알지 못한다.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지만 자본이 들어가는 이상 돈이 되는 영역에서부터 인공지능은 진화할 것이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 공공의 영역에서부터 활용될 것이다. 사소한 개인의 영역은 돈이 될지도 의문이니 아마도 조금은 먼 이야기가 아닐까. 희망을 섞어서 예상해 본다.
그러니 난 더 지극히 개인적이고, 지극히 사사로운 글을 써야겠다.
인간이 공감하는 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