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Excel'스럽게
프롤로그
퇴직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채, 부랴부랴 도망치듯 회사 밖으로 나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먹고살 길이 막막했다. 금융기관에서 중장비와 상용자동차 대출영업을 해온 터라, 할 줄 아는 일이라곤 대출 심사와 보고서 작성뿐이었다. 문제는 개인이 돈을 빌려줄 수는 없다는 것. 그러고 보니, 15년 넘게 몸에 밴 보고서 작성 능력과 엑셀·파워포인트 실무만이 내가 가진 마지막 도구처럼 남아 있었다. 먹고는 살아야 했고, 그중 하나라도 활용할 방법을 찾고 싶었다.
처음에는 유튜브를 시도했다. 저작권이 없는 클래식 음악을 내려받아 영상으로 만들어 올리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노후한 PC 때문인지 파워포인트로 영상 변환이 계속 실패했다. 결국 생전 다뤄본 적 없는 영상 편집기를 새로 배워 겨우 올렸지만, 구독자는 늘지 않았고 좋아요는 나만 눌렀다. “누구나 한 달에 수백만 원을 번다”는 말은 현실과 많이 달랐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또 다른 시도를 했다. 파워포인트로 아이콘을 만들어 판매하는 일. 오래 일한 업종을 살려 중장비와 상용자동차 아이콘을 심혈을 기울여 제작하고 등록까지 성공했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했다. 판매량 ‘0’. 그럴싸한 성공 후기 영상에 또 한 번 낚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돈이 든 것도 아니고, 한 번쯤 해본 경험이라 치기로 했다. 세상에 쉬운 일은 돈 되는 법이 없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
이번에는 엑셀이 떠올랐다. 실무 기능을 정리해 책으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싶었다. 노트를 펴고 내가 아는 기능들을 정리하다가, 비교 삼아 도서관에서 엑셀 교재를 펼쳐 봤다. 그동안 실무로만 익혔기 때문에 교재를 본 건 오랜만이었다. 하지만 책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내가 알고 있는 엑셀 이론은 생각보다 훨씬 작다는 사실을. 선후배들에게 기능을 알려줄 만큼은 익숙하지만, 교재의 내용은 그보다 한참 넓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초라해지기도 했다.
그러다 한편으로는 교재의 여러 내용이 실무와는 동떨어져 보이기도 했다. 분명 내가 부족한 건 맞지만, ‘현장에서 필요한 엑셀’과 ‘교재 속 엑셀’은 어느 정도 간극이 있었다. 결국 “내가 책을 내봐야 팔릴까?” 하는 마음이 들어 그 작업도 역시 접었다.
그 시기, 사람 사는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를 읽으며 마음을 달랬다. 터질 듯 불안하던 심장을 진정시키려고 읽기 시작했지만, 점점 읽다 보니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탐색하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이성적인 줄 알았지만 사실 감성이 더 강했고, 외향적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철저한 내향인이었다.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고 살며 스스로를 학대해 왔던 것이다.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당황스러우면서 한편으로는 더 늦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자연스럽게 감성의 영역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고, 글을 쓰고 싶어졌다. 그동안 책을 읽으며 메모해 둔 조각들을 모아 두서없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브런치에 초보 작가 타이틀로 글을 올리며 1년을 보냈다. 실력은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수십 년 만에 ‘계속하고 싶은 일’을 만났다. 그러다 운 좋게 독립출판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작은 책 한 권을 냈다. 써도 된다는 자격증을 손에 넣은 기분이었다.
어느 날, 한 철학 교수의 강의를 보며 깊은 인상을 받았다. 철학은 지식을 자랑하는 학문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라는 말. 지식을 설명하기 위한 지식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창이라는 설명이 가슴 깊이 와닿았다.
그러다 내 삶의 절반쯤을 지나온 지금, 문득 돌아봤다 내가 살아온 한 사람의 삶은 충분히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통하는 진리를 말할 수는 없지만, 하나의 일리, 하나의 시선 정도는 건넬 수 있지 않을까. 그때 엑셀이 떠올랐다. 전문가 수준은 아니지만, 실무에서 써온 만큼의 도구라면 이 철학 교수의 말처럼 ‘삶을 보는 틀’로 삼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전에 써둔 메모장을 다시 꺼내 들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방식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다.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거대한 진리를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엑셀을 알고, 삶을 살아본 사람이라면 이 책이 건네는 작은 공감에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엑셀 입문을 돕는 인문학 책.
그리고 삶을 다시 배우는 한 사람의 기록.
01. 셀(Cell) : 나를 담는 칸
현존하는 과학은 우주의 시작을 “태초에 빅뱅이 있었다”는 한 문장으로 설명한다. 그다음엔 “그래서 원자는…”으로 이어지며, 가장 작은 입자에서 가장 큰 구조까지 세상을 풀어낸다. 과학뿐 아니라 ‘처음’과 ‘근원’은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하기 위해 자주 소환된다. 삶은 ‘나’에서 시작되고, 엑셀의 시작은 ‘셀(Cell)’에서 비롯된다.
학창 시절부터 컴퓨터를 접하긴 했지만, 지금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크고 성능도 형편없는 기계였다. 그저 게임이나 하는 물건에 불과했고, 대학교에 들어갈 때까지도 타자 연습이나 간단한 레포트를 작성하는 정도로만 사용했다. PC라는 이름으로 컴퓨터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세대였지만, 오피스 프로그램은 대학에 들어가서야 처음 접할 수 있었다.
엑셀은 대학 졸업을 앞둔 시기에 처음 열어봤다. 계산이 필요한 과제를 위해 새 창을 열었을 때, 눈앞에는 알파벳과 숫자가 격자무늬로 배열된 낯선 화면이 펼쳐져있었다. 각 칸에는 글자나 숫자를 적을 수 있었지만, ‘Enter’를 치면 줄이 바뀌지 않고 다음 칸으로 이동했다. 처음엔 한 줄 이상 쓸 수 없는 프로그램인 줄 알았다. 그저 줄을 바꾸려면 ‘Alt+Enter’를 눌러야 한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이때만 해도 나에겐 레포트 쓰는 그저 이상한 프로그램에 불과했다.
그 경험은 묘하게 사람 사이의 관계와도 닮아 있었다. 모임이나 회의 자리에서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보려 농담을 던져도, 상황과 사람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오히려 더 어색해진다. 엑셀에서도 셀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의도와 다르게 줄이 넘어가 버린다. 결국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의 시도’는 어색함을 남긴다.
셀(cell).
만화 ‘드래곤볼’의 영향 때문인지, 이름을 들으면 악당이 먼저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사전적 의미는 세포, 즉 생명의 가장 작은 단위다. 컴퓨터에서는 기억장치의 한 위치를 뜻하기도 하고, 엑셀에서는 데이터를 입력하는 각각의 칸을 의미한다. 단순한 칸이 아니라, 엑셀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다. 그 안에는 숫자, 문자, 수식, 색상, 조건부 서식 등 다양한 정보가 담긴다.
세상을 설명하는 방법도 이와 비슷하다. 우주에서부터, 혹은 원자에서부터 설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너무 작거나 너무 커서 체감하기 어렵기에 사람마다 와닿는 정도가 다르다. 나 역시 허블망원경의 사진을 보며 막연히 상상하는 게 전부였다. 그래서 그런 설명은 종종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릴 적 친척들이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는 농담을 하곤 했다. 나는 그 말을 진심으로 믿고 울먹였지만, 나중에야 그것이 어른들의 흔한 농담이었다는 걸 알았다. 어린 마음엔 상처로 남았지만, 돌이켜보면 그때 처음으로 ‘나는 누구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다행히도 부모님은 사랑으로 나를 채워주셨고, 그래서인지 진짜 혈연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느낄 만큼의 믿음이 생겼다. 아마 그 시절이 나의 ‘셀’을 인식하기 시작한 첫 순간이었을 것이다.
자아를 인식하는 일은 쉽지 않다. ‘자아’라는 단어는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잡을 수도 없다. 그러나 그것은 거울 속 모습 하나로 정의되지 않는다. 좋아하는 나, 싫어하는 나,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까지 포함해야 비로소 진짜 ‘나’를 이해할 수 있다.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저절로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부모가 바란 모습으로, 친구들이 기대한 모습으로, 사회가 요구한 역할로 살아가며 진짜 나를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렇게 타인의 시선에 맞춰 사는 동안 우리는 진짜 자신의 셀을 비워둔 채 복사-붙여 넣기만 반복하는지도 모른다.
누구나 어느 시점에 깨닫는다. “아, 나는 사실 이런 사람이구나.” 그 계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타고난 성찰력일 수도 있고, 커다란 상처나 우연한 사건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끝내 자신을 모른 채 세상을 떠나기도 한다. 그 또한 삶의 한 방식이라면 부정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한 번뿐인 인생, 내가 어떤 사람인지조차 모른 채 산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물리학자들은 방대한 우주를 설명할 때, 가장 작은 입자인 원자에서 출발한다. 그 미세한 존재들이 모여 별을 만들고, 별이 모여 은하를 이루며, 은하가 모여 우주를 구성한다.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거대한 사회와 복잡한 관계, 수많은 사건 속에서도 모든 것은 ‘나’라는 작은 존재에서 시작된다. 적어도 살아 있는 한, 세상의 중심은 언제나 ‘나’로부터 시작된다고 믿는다.
엑셀의 셀도 그렇다. 아무것도 없는 공란일 수도 있고, 화려한 색과 선이 들어간 칸일 수도 있으며, 복잡한 수식으로 값을 계산해 내는 칸일 수도 있다. 셀은 엑셀이라는 세상 안에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최소 단위다. 세상 만물의 근원도, 결국은 셀과 같다. 우주는 99.9퍼센트가 비어 있는 공간이라고 하니, 세상은 어쩌면 거대한 공란일지도 모른다. 그 안에 어떤 색을 채울지는 각자의 몫이다.
원자로 우주를 설명하듯,
자아로 세상을 바라보듯,
엑셀은 셀로부터 시작된다.
셀은 엑셀의 시작이자, 삶의 은유다. 가장 작은 칸에서 가장 깊은 이야기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