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앙상한 가지
11월 13일(목)
부친의 증상이 눈에 띄게 나빠졌다.
몇 번이고 했던 말을 다시 하고, 방금 전 얘기도 금세 잊어버리신다. 특히 과거의 후회들만 꺼내어 반복하신다. 좋지 못한 기억들 속에 하루 종일 갇혀 있으니, 스스로도 얼마나 힘드실까. 답답함이 폭력적인 표현으로 터져 나올 때도 많아졌고, 모친에게 소리를 높이는 일도 잦아졌다.
얼마 전 주간보호센터에서는 부친의 언행이 폭력적으로 변했다며 전화를 했다. 치매 증상이 더 진행된 것 같다고, 진료를 보러 가면 의사에게 꼭 말을 해야 한다고 했다. 집에서도 신경이 곤두선 말투가 계속되어 걱정이던 터라, 결국 예약 날짜와 상관없이 부친을 모시고 병원을 찾아갔다.
예약이 아니라 오래 기다리라는 말을 듣고 대기실에 앉았다. 네 명의 의사 중 두 명은 휴진, 주치의 아래에는 긴 대기자 명단. 남은 한 명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환자가 한 명도 없었다. 앉아 있는 사람은 열 명이 넘는데, 화면에는 네 명밖에 표시하지 못하나 보다. 오래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조용히 부친과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명단이 표시된 화면 바로 옆, 커다란 TV에서 홍보 영상이 반복됐다.
그 속에서 인터뷰하는 사람이 설립자의 아들이자 병원장인, 바로 부친의 주치의였다.
“저 사람이지? 왜 사람 많은데 진료는 안 하고 방송을 하고 있냐?”
“아버지, 그건 예전에 녹화한 영상이에요. 지금은 진료 중이세요.”
“근데 왜 내 이름은 없어?”
“아버지 이름은 저 아래쪽에 있어요. 화면에 네 명만 보여서 그래요.”
5분도 채 안 되는 영상이 다시 시작될 때마다 같은 대화가 반복됐다. 단기 기억이 몇 분도 유지되지 않는다는 현실이 가슴을 찔렀다. 대화는 답답함보다 안쓰러웠다. 그렇게 한 시간 반을, 거의 똑같은 말을 스무 번쯤 되풀이하며 기다렸다. 부친 이름이 화면에 오르는 순간, 난 안도의 숨을 쉬었고 부친은 여전히 홍보 영상 속 의사를 보며 같은 질문을 던지셨다.
“저 사람이지? 왜 진료 안 보고 방송을 하고 있냐?”
“아버지, 이제 우리 차례예요. 이름 떴어요.”
나도 모르게 짜증 섞인 말투가 되어가던 사이 다행히 이름 한 줄이 겨우 진정시켰다.
부친과 같이 있는 자리에서 직접 “요즘 화가 많아지셨다”라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금방 잊으시겠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 마음이 상하실 것 같았다. 그래서 미리 메모를 접수처에 전달해 두었고, 다행히 의사에게 잘 전달된 듯했다. 부친은 진료실에 들어가자 갑자기 온순해진 목소리로 물으셨다. 짜증을 자주 내시지만, 의사의 권위에는 그게 안되나 보다.
“난 왜 이렇게 안 낫죠?”
의사는 늘 같은 답을 했고, 이번에는 신경안정제를 추가로 처방했다.
진료를 마치고 추어탕집으로 가는 길, 백미러 속 부친은 창밖의 단풍을 바라보며 쓸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을빛이 유난히 진한 날, 길가에 가로수들은 떨어진 낙엽만큼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문득, 앞으로 아버지에게 이 가을이 몇 번이나 더 허락될까. 굴러다니는 낙엽들이 유난히 안쓰럽게 보였다. 아슬아슬 또 한 번의 가을이 조용히 저물어가고 있었다.
11월 16일(일)
신경안정제가 부친에게 미치는 영향이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김장을 하러 본가에 갔다. 부친은 경량 패딩을 걸친 채 식탁에서 커피를 마시고 계셨다. 슬픔과 피로가 섞인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왔냐”라고 물으셨다. 표정만으로도 약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 대신, 며칠 동안 모친에게 소리치던 모습은 사라졌다. 부친이 소파로 천천히 걸어가는데, 그 ‘천천히’의 느낌이 너무 낯설었다. 정신이 멍해서인지, 다리에 힘이 없어서인지, 나무늘보처럼 한 걸음씩 발을 떼는데, 그 모습이 걸음만큼 마음에 오래 남았다. 모친에게 조용히 물었다.
“약은 좀 어때요?”
“아휴… 너무 잠에 취해서 소변을 못 가린다. 어제, 그제도 화장실 가다 바지에 그대로….”
예상보다 훨씬 심한 부작용이었다. '화가 줄면 모친이 조금은 편해지지 않을까' 했던 바람은 산산조각 났다. 부친은 더 힘들어 보였고, 모친의 부담은 오히려 커졌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당분간 신경안정제는 복용하지 않는 것으로 했다. 잘하려는 마음이 늘 뜻대로 되지 않는다. 어느 쪽으로도 쉽게 기울 수 없는 선택에 그저 막막했다. 소파에 누운 부친은 김장하는 우리를 멍한 눈으로 바라보더니 이내 잠들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김장을 마치고 고춧가루 잔뜩 묻은 고무대야를 씻어냈다. 아까 먹은 무채 한 조각 때문인지, 아니면 씻겨나가는 고춧가루 때문인지 코끝이 찡하고 자꾸 눈물 콧물이 흘러나왔다.
김장날 점심은 여느 해처럼 자장면이었다. 부친에게는 맵지 않은 흰 국물의 면을 따로 시켜드렸다. 면 몇 가닥을 드신 뒤 밥이 있냐고 하셔서, 국물에 밥을 말아 드리니 허겁지겁 드셨다. 치매가 식욕에도 영향을 준다던 말이 떠올랐다. 숟가락을 드는 손이 떨려서 입으로 가져가는 사이 국물이 떨어진다. 식탁에 걸친 왼팔에 자꾸만 뚝뚝. 부친은 그마저도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해서 팔에 얼룩을 남겼다. 난 조용히 물티슈를 꺼내 부친의 팔을 닦아드렸다.
본가에 오면 마음이 계속 불편하다. 모친에게 약을 조절해 보자고 말하고 집을 나섰다.
운전하며 와이프에게 조심스레 속마음을 꺼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너무 답답하다고. 와이프가 가만히 들어준 덕분에 응어리가 조금 풀린 듯 마음이 가라앉았다. 도로 위 은행잎이 바람에 흩날리며 황금빛 비처럼 쏟아졌다. 매년 보던 가을이지만, 올해는 유난히 화려하고 유난히 쓸쓸하다. 이미 떨어진 낙엽 사이로 드러나는 앙상한 가지. 가을이 정말 끝나가고 있었다.
11월 27일(목)
32. 앙상한 가지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고
젖은 빗방울이 흩뿌릴 때
한때 푸르렀던 잎사귀
힘없이 땅 위에 흩어진다
풍성했던 가지는 어느새 숱을 잃고
남은 흔적만 앙상히 드러냈다
그 사이 놓친 시간들
가슴에 아쉬움으로 새겨졌다
자연의 순리는 감내한다 해도
지나간 계절은 사무치게 그립고
겨울을 견디려 떨구는 순간에도
쓸쓸히 버티는 가지, 마음이 시리다
잿빛 하늘 아래
구름에 가려져 흐릿한 산
비 소리가 창 틈을 파고들며
음산한 하루를 적신다
뿌연 안개, 보이지 않는 삶
이번 겨울도
버텨낼 수 있기를,
다시 오는 봄을 마주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