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렁이는 커피처럼, 사는 건 명쾌한 구석이 없다

by 케빈은마흔여덟

12월 7일(일)

점심을 먹은 뒤 부친의 머리를 감겨드렸다. 의자에 앉아 허리를 숙인 자세가 불편할 법도 한데, 오늘은 아프다는 소리를 하지 않으신다. 요통이 조금 가라앉은 걸까. 모친은 엊그제보다 밤잠도 덜 설치신다며 병원은 안 가도 될 것 같다고 했다. 다행이다. 부모님을 위해 뭐라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겨우 마음의 위안을 삼아 본다.


인사하고 집을 나서려는데, 문 앞까지 따라 나와 나를 바라보는 모친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피곤이 깊게 드리운 그 얼굴은 인생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위험이 도사리는 일상 속에 모친만 덩그러니 두고 나오는 내 모습이 보였다. 호강은커녕 고생만 시키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에, 도망치듯 집을 빠져나왔다.




12월 8일(월)

사는 건 어느 시점에나 고달프다. 못해먹겠다고 회사를 박차고 나왔지만, 쉬는 게 결코 쉬는 게 아니다. 경제적 압박, 부모님의 노환, 아이의 학업... 무엇 하나 마음 편히 내려놓을 수가 없다.


이번 달까지 집필 중인 원고를 마무리하려 한다. 책 한 권을 세상에 내놓고 나면 그다음 길을 찾아볼 작정이다. 하지만 심리적 불안 때문인지 글은 자꾸만 제자리걸음이다. 생각은 고여 있고, 썼던 문장들은 다시 보니 죄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3장까지는 끝냈으나, 이 막막한 길을 잘 완주할 수 있을까.


날이 추운 것이, 또 겨울인가 보다. 타이밍에 맞춰 부고장이 도착했다.



12월 9일

사회생활에 치여 살다 보니 ‘친구’라는 자리는 어느덧 ‘동료’들로 채워진 지 오래다. 이제 친구들은 경조사에서나 얼굴을 보는 사이가 됐다. 축하할 일들은 대부분 지나갔고, 이제 부고 소식이 하나둘 들려올 나이가 된 것이다. 친구 부친의 빈소를 찾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는 ‘근황 토크’가 먼저 오간다. 누구는 임원이 되었고, 누구는 대표가 되었다는 소식들. 나는 퇴직하고 쉬고 있다고 솔직히 말했다. 거짓말로 꾸며내고 싶지 않았다. 30년 전 중학교 교실에 함께 앉아 있던 아이들이 이렇게나 다른 길을 걸어왔다는 사실이 신기하면서도 씁쓸했다. 나만 명함 없는 인생이 된 것 같아, 내 삶의 합은 고작 이것뿐인가 자꾸만 되묻게 되는 밤이었다.



12월 10일


일어나 보니 방 안 침대다. 친구가 전철역까지 태워준 기억,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호두 파운드케이크를 우걱우걱 먹었던 기억이 듬성듬성 난다. 상갓집에서 신세 한탄을 하며 마신 술이 과했던 모양이다.


어제는 아내의 생일이었다. 술기운에도 미안한 마음은 있었는지, 친구가 사준 거라며 파운드케이크를 들고 들어왔단다. 고맙다는 아내의 메시지를 받은 친구는 멋쩍어했고, 나랑 와이프는 당황했다. 그제야 카드사 메시지를 확인해 보니, 사실은 내가 산 것이었다. 이제 내 머릿속 해마도 온전치 못한 모양이다.


도서관에서 단기 계약직 채용 공고가 떴다. 아내의 권유로 다시 이력서를 썼다. 글을 쓰고 싶지만 생계는 엄연한 현실이다. 넉넉지 않은 급여와 어정쩡한 기간이지만 돈은 필요하다. 아내에게 혼자 짐을 짊어지게 할 수도, 마냥 놀고 있을 수도 없다. 이번 책을 마무리하고 출판을 시도하는 것까지만 해보고, 그다음은 무엇이든 지속할 수 있는 돈벌이를 찾아야 한다.




12월 11일

싱어게인 4에서 패닉의 노래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를 부르는 가수를 보았다. 밤이 늦어 소리를 낮춘 탓에 가사가 잘 들리지 않아 따로 찾아 다시 들었다. 예전엔 멜로디가 먼저 들렸는데, 글을 쓰기 시작하고부터는 가사가 폐부를 찌른다. 멍하니 앉아 가사 한 줄 한 줄에 나를 비춰보았다. 나는 언제쯤 이런 멋진 글을 쓸 수 있을까. 부럽다.


내 바닷속에는 깊은 슬픔과 헛된 고민들 회오리치네

그 바다 위에선 불어 닥치는 세상의 추위 나를 얼게 해

때로 홀로 울기도 지칠 때 두 눈 감고 짐짓 잠이 들면


나의 바다 그 고요한 곳에 무겁게 내려다 나를 바라보네

난 이리 어리석은가 한 치도 자라지 않았나

그 어린 날의 웃음을 잃어만 갔던가


초라한 나의 세상에 폐허로 남은 추억들도

나 버릴 수는 없었던 내 삶의 일부인가




12월 12일


책을 쓴 지 두 달째다. ‘만약에’라는 단어는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하지만 내 글은 며칠째 ‘IF(만약에) 함수’에서 멈춰 서 있다. 하루에 두 편씩 써 내려가던 날도 있었는데,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내용이 어려운 걸까, 아니면 쓰고 싶은 마음이 바닥난 걸까.


도서관 채용에서도 또 떨어졌다. 내 경력이 부족한 걸까, 아니면 과한 걸까. 그것도 아니면 나이 때문일까. 그냥 운이 없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나중에 더 큰 운을 쓸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떨어지는 건 무엇이든 기분이 좋지 않다. 내 삶은 어디까지 떨어져야 바닥에 닿을까. 만약에...



12월 13일

12시 반 38.9도, 3시 반 38.4도, 아침 7시 38.2도. 다행히 열이 내리고 있다. 독감이 유행이라더니 아이가 결국 옮아왔다. 아픈 아이 걱정과 다음 주 시험 걱정이 공존하는 걸 보니 나도 어쩔 수 없는 대한민국 학부모인가 보다. 아침 일찍 병원에 가기로 하고 밤새 열 체크를 했다.


평소 다니던 큰 병원 대신 수액을 잘 놓는다는 인근 병원으로 향했다. 아이가 빨리 낫길 바라는 마음과 시험에 지장이 없길 바라는 아내의 마음이 이심전심이었을 것이다. 9시 개원이지만 줄을 선다는 말에 8시부터 가서 기다렸다. 닫힌 병원 문 앞에서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 잔을 들고 서성였다. 8시 20분, 출근하는 간호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1번으로 접수를 마쳤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비가 한 방울씩 떨어졌다. 다 마시지 못한 커피를 든 채 뛰었다. 흔들릴 때마다 커피 뚜껑 사이로 커피가 나올 듯 말 듯 일렁이고 있었다. 쏟아지는 건지 지켜내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커피처럼, 사는 건 참 명쾌한 구석이 없다. 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일렁임 속에서 다음 발을 내디딜 뿐이다.


다행히 독감은 아니고 일반 감기였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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