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셀(Cell): 존재의 최소 단위

모든 데이터의 시작, 나라는 사람의 본질

by 케빈은마흔여덟

프롤로그


퇴직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채, 부랴부랴 도망치듯 회사 밖으로 나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먹고살 길이 막막했다. 금융기관에서 중장비와 상용자동차 대출영업을 해온 터라, 할 줄 아는 일이라곤 대출 심사와 보고서 작성뿐이었다. 문제는 개인이 돈을 빌려줄 수는 없다는 것. 그러고 보니, 15년 넘게 몸에 밴 보고서 작성 능력과 엑셀·파워포인트 실무만이 내가 가진 마지막 도구처럼 남아 있었다. 먹고는 살아야 했고, 그중 하나라도 활용할 방법을 찾고 싶었다.


처음에는 유튜브를 시도했다. 저작권이 없는 클래식 음악을 내려받아 영상으로 만들어 올리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노후한 PC 때문인지 파워포인트로 영상 변환이 계속 실패했다. 결국 생전 다뤄본 적 없는 영상 편집기를 새로 배워 겨우 올렸지만, 구독자는 늘지 않았고 좋아요는 나만 눌렀다. “누구나 한 달에 수백만 원을 번다”는 말은 현실과 많이 달랐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또 다른 시도를 했다. 파워포인트로 아이콘을 만들어 판매하는 일. 오래 일한 업종을 살려 중장비와 상용자동차 아이콘을 심혈을 기울여 제작하고 등록까지 성공했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했다. 판매량 ‘0’. 그럴싸한 성공 후기 영상에 또 한 번 낚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돈이 든 것도 아니고, 한 번쯤 해본 경험이라 치기로 했다. 세상에 쉬운 일은 돈 되는 법이 없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


이번에는 엑셀이 떠올랐다. 실무 기능을 정리해 책으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싶었다. 노트를 펴고 내가 아는 기능들을 정리하다가, 비교 삼아 도서관에서 엑셀 교재를 펼쳐 봤다. 그동안 실무로만 익혔기 때문에 교재를 본 건 오랜만이었다. 하지만 책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내가 알고 있는 엑셀 이론은 생각보다 훨씬 작다는 사실을. 선후배들에게 기능을 알려줄 만큼은 익숙하지만, 교재의 내용은 그보다 한참 넓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초라해지기도 했다.


그러다 한편으로는 교재의 여러 내용이 실무와는 동떨어져 보이기도 했다. 분명 내가 부족한 건 맞지만, ‘현장에서 필요한 엑셀’과 ‘교재 속 엑셀’은 어느 정도 간극이 있었다. 결국 “내가 책을 내봐야 팔릴까?” 하는 마음이 들어 그 작업도 역시 접었다.


그 시기, 사람 사는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를 읽으며 마음을 달랬다. 터질 듯 불안하던 심장을 진정시키려고 읽기 시작했지만, 점점 읽다 보니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탐색하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이성적인 줄 알았지만 사실 감성이 더 강했고, 외향적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철저한 내향인이었다.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고 살며 스스로를 학대해 왔던 것이다.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당황스러우면서 한편으로는 더 늦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자연스럽게 감성의 영역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고, 글을 쓰고 싶어졌다. 그동안 책을 읽으며 메모해 둔 조각들을 모아 두서없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브런치에 초보 작가 타이틀로 글을 올리며 1년을 보냈다. 실력은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수십 년 만에 ‘계속하고 싶은 일’을 만났다. 그러다 운 좋게 독립출판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작은 책 한 권을 냈다. 써도 된다는 자격증을 손에 넣은 기분이었다.


어느 날, 한 철학 교수의 강의를 보며 깊은 인상을 받았다. 철학은 지식을 자랑하는 학문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라는 말. 지식을 설명하기 위한 지식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창이라는 설명이 가슴 깊이 와닿았다.


그러다 내 삶의 절반쯤을 지나온 지금, 문득 돌아봤다 내가 살아온 한 사람의 삶은 충분히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통하는 진리를 말할 수는 없지만, 하나의 일리, 하나의 시선 정도는 건넬 수 있지 않을까. 그때 엑셀이 떠올랐다. 전문가 수준은 아니지만, 실무에서 써온 만큼의 도구라면 이 철학 교수의 말처럼 ‘삶을 보는 틀’로 삼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전에 써둔 메모장을 다시 꺼내 들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방식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다.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거대한 진리를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엑셀을 알고, 삶을 살아본 사람이라면 이 책이 건네는 작은 공감에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엑셀 입문을 돕는 인문학 책.

그리고 삶을 다시 배우는 한 사람의 기록.



삶은 ‘Excel’스럽게



01. 셀(Cell) : 나를 담는 칸


현존하는 과학은 우주의 시작을 “태초에 빅뱅이 있었다”는 한 문장으로 설명한다. 그다음엔 “그래서 원자는…”으로 이어지며, 가장 작은 입자에서 가장 큰 구조까지 세상을 풀어낸다. 과학뿐 아니라 ‘처음’과 ‘근원’ 같은 단어는 세상의 많은 것들을 설명하기 위해 자주 소환되는 표현이다. 이렇게 우주의 시작에 원자가 있다면, 삶의 시작에는 ‘나’가 있고, 엑셀의 시작에는 ‘셀(Cell)’이 있다.


학창 시절부터 컴퓨터를 접하긴 했지만, 지금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크고 성능도 형편없는 기계였다. 그저 게임이나 하는 물건에 불과했고, 대학교에 들어갈 때까지도 타자 연습이나 간단한 리포트를 작성하는 정도로만 사용했다. PC라는 이름으로 컴퓨터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세대였지만, 오피스 프로그램은 대학에 들어가서야 처음 접할 수 있었다.


사실 처음부터 엑셀과 친했던 건 아니다. 대학 시절 리포트를 쓰기 위해 처음 마주한 엑셀은 그저 ‘줄 바꿈조차 마음대로 안 되는 이상한 프로그램’이었다. 엔터를 치면 다음 줄로 넘어가는 대신 아예 다음 칸으로 튕겨 나가는 격자무늬의 화면이었다. ‘Alt + Enter’를 눌러야 한 칸 안에서 줄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나는, 엑셀이라는 낯선 세계 앞에서 한참을 헤맸다.


그 어색함은 사람 사이의 관계와도 닮아 있었다. 상대의 성향이나 상황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채 던지는 농담이 분위기를 얼어붙게 만들 듯, 셀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휘두르는 마우스는 화면만 엉망으로 만들 뿐이었다. 결국 무언가와 가까워진다는 것은, 그것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의 ‘속성’을 이해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셀(cell).

만화 ‘드래곤볼’의 영향 때문인지, 이름을 들으면 악당이 먼저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사전적 의미는 세포, 즉 생명의 가장 작은 단위다. 컴퓨터에서는 기억장치의 한 위치를 뜻하기도 하고, 엑셀에서는 데이터를 입력하는 각각의 칸을 의미한다. 단순한 칸이 아니라, 엑셀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다. 그 안에는 숫자, 문자, 수식, 색상, 조건부 서식 등 다양한 정보가 담긴다. 모든 가능성을 품고 있는 엑셀이라는 우주의 ‘원자’인 셈이다.


어릴 적, 친척들이 던진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는 농담에 서러워 울먹이던 기억이 있다. 그 유치한 농담이 어린 마음엔 꽤 깊은 상처를 냈지만, 역설적으로 그때 처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던 것 같기도 하다. 다행히 부모님은 그 균열을 사랑으로 채워주셨고, 나는 ‘혈연’이라는 데이터보다 ‘관계’라는 수식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으며 자랐다. 아마 그때가 내 인생이라는 ‘셀’의 존재를 처음 인식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자아를 인식하는 일은 엑셀의 빈 셀을 채우는 것만큼이나 막막하다. 거울 속 모습만으로는 나를 정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나, 숨기고 싶은 나, 심지어 나조차 몰랐던 낯선 모습까지 모두 모여야 비로소 진짜 ‘나’라는 셀의 값이 정해진다.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저절로 값이 채워지는 것도 아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로 살아가느라 진짜 내 목소리를 비워둔 채, 남들이 좋다는 값들만 ‘복사-붙여 넣기’ 하며 사는 건 아닌지 문득 두려워질 때도 있다.


나의 경우, 마흔이 넘어서야 비로소 내 안의 작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스스로에게 질문하지 않는 삶이었고, 그저 남들 사는 것만 쫓아가느라 급급했다. 신해철의 노래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속 “그 나이를 퍼먹도록 그걸 하나 몰라”라는 노랫말이 마치 나를 향한 일갈처럼 들렸다. 이제야 나를 마주한 것이 너무 늦은 건 아닐까 하는 불안도 있었지만, 영영 들리지 않았을지도 모를 그 목소리를 지금이라도 듣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내 감정에 어떤 소리가 들리는지 조용히 귀 기울이기 시작하자, 뿌옇게 흐려졌던 삶의 해상도가 조금씩 선명해졌다. 남들이 저만치 앞서 달려가는 동안 한두 걸음 뒤처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방향’이라는 말을 이제는 알 것 같다. 복잡한 수식이 짜이는 순간, 텅 빈 수만 개의 셀이 데이터로 채워지듯, 나 역시 내가 가고 싶은 방향을 확신하게 된 지금 비로소 다시 속도를 낼 동력을 얻었다. 조금 늦었을지 모르지만, 더 명확하고 단단하게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물리학자들이 방대한 우주를 설명할 때 가장 작은 입자인 원자에서 출발하듯, 삶도 마찬가지다. 거대한 사회와 복잡한 관계 속에서도 모든 일의 시작은 결국 ‘나’라는 작은 존재다. 내가 채워지지 않으면 세상이라는 시트는 아무리 넓어도 공허할 뿐이다.


엑셀의 셀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아무것도 없는 공란일 수도, 복잡한 세상의 난제를 풀어내는 계산식이 될 수도 있다. 우주의 99%가 비어 있는 공간이듯, 우리 삶도 어쩌면 거대한 공란의 시트일지도 모른다. 그 막막한 백지 위에 어떤 색을 채우고 어떤 수식을 써 내려갈지는 오직 주인이 된 나의 몫이다.

원자로 우주를 설명하듯,

자아로 세상을 바라보듯,

엑셀은 셀로부터 시작된다.


가장 작은 칸에서, 비로소 가장 깊은 이야기가 시작된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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