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배고파서 죽지는 못할 것 같다

by 케빈은마흔여덟

<9월 23일, 화>

착한 사람이 더 부자 되는 세상

주식이 활화산처럼 불타오른다. 코스피는 사상 최고치를 계속 경신하고, 커뮤니티에는 너도나도 수익 인증 글이 올라온다. 한창 주식 투자를 하던 때 주가는 지지부진했고, 난 손해만 봤었다. 그런데 이제 여유가 없으니 고공행진이라니.. 아무래도 돈하고는 연이 없나 보다. 사촌이 땅을 산 것도 아닌데 배가 아프다.


오늘 한 커뮤니티에서 눈에 띄는 해외소식을 하나 접했다. 어릴 때 저금통을 털어서 기부했던 한 소녀가 어른이 되어 수백억에 달하는 복권에 당첨되었다는 기사였다. 부럽긴 하지만 착한 사람인 것 같아서 배는 덜 아프다. 이런 희망적인 소식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 그럼 한 사람이라도 더 선한 마음으로 살아갈 테니 말이다.


현실은 냉혹하다. 사람이 개를 물어야 기사가 되는 세상, 자극적인 기사만 쏟아지니 온통 나쁜 짓을 한 사람만 부자로 비친다. 세금 안내는 부자, 남의 돈 갈취하는 사람. 나쁜 짓 한 돈은 수십억이 보통이다. 그런 기사들을 보고 있자면, '저렇게 살아야만 부자가 될 수 있나', '이래서 사람들이 흑화 하나' 같은 생각도 하게 된다. 액만 보면 가끔 나도 '혹'한다. 나도 흑화 하기 전에 빨리 무슨 수를 내야 할 것 같다.





<9월 24일, 수>

배고파서 죽지는 못할 것 같다

치매라는 병 탓에 부친은 같은 말을 자주 반복하신다. 의식의 흐름을 따라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이 말을, 또 다른 날은 저 말을 되풀이하신다. 그런데 그 반복되는 말들 중 ‘죽을 때’라는 말을 들을 때면, 듣는 내내 마음이 먹먹해진다. 요즘 들어 그 말씀이 부쩍 잦아졌다.


“우리 아버지만 조금 오래 살았지, 친인척들 중에 80을 넘긴 남자가 거의 없다. 나는 어떨 땐 50살 정도밖에 안 먹은 것 같은데, 언제 80을 넘었는지 모르겠다. 이제 죽을 때가 됐는가 보다.”


고모님들은 아흔을 훌쩍 넘기셨고, TV에선 백 살을 넘긴 사람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여든둘이라는 나이가 어찌 보면 그리 많은 것도 아니다. 문제는 그놈의 고집과 스스로 만든 인식이다. 단편적인 생각에 갇혀 가족 중 굳이 남자만을 기준으로 삼으니, 이제 죽을 때가 됐다는 결론에 이르신 것이다. 그까짓 나이 뭐라고.


사는 건 그깟 숫자보다는 삶에 대한 애착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재미와 쓸모를 스스로 찾아서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의지가 있어야 ‘살고 싶다’는 의욕도 생긴다. 그런데 아쉽게도 매번 하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다고 하신다. 매일 같이 앉고, 눕고, 밥 먹고 가 전부인 집에서의 생활. 아침마다 가기 싫다며 억지로 다니는 주간보호센터에서의 생활. 즘 부친은 어떤 재미가 있을지 알 수가 없다.


부친의 하루를 바라보면 나도 모르게 생각이 깊어진다. 가족의 버팀목으로서 조금 더 살아주시면 좋겠지만, 그 바람이 과연 부친에게는 어떤 부담으로 다가올까. 대화를 시도해 봐도 짜증만 내고, '죽을 때'를 말하는 진짜 마음에는 무엇이 있을까. 건강할 때는 '딱 하루만 아프다가 죽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곤 하셨는데, 애석하게도 그 말을 한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당신을 잃어가고 있다. 모친의 심정도 궁금하긴 마찬가지다. 가족을 간병하는 사람의 마음은 하루에도 지옥을 열두 번 오간다고 하던데, 과묵한 모친의 심경도 감히 헤아리기가 어렵다.


얼마 전, 모친에게서 부친이 한 말이라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밥을 한 10일 굶으면 사람이 죽는다는데, 그렇게 오래 굶으면 배고파서 난 안 될 것 같다.”


죽음이 가까워지면 입맛을 잃는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부친의 입맛은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그 말도 사실이길 바라본다.


먹기 위해서라도 삶의 의미를 찾으셨다는 건 다행스러운 신호다.

생각해 보면 삶의 의미라는 게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 세계 평화를 꿈꾸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떤 이는 가족을 위하고, 또 어떤 이는 단지 먹기 위해 살아간다. 자신의 현실과 가치관에 따라 만들어진 의미라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특히 입맛을 잃지 않고 배고파서 먹는다는 말은 부친의 현실에서는 충분한 삶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맛이라도 느끼며, 조금만 더 힘을 내주시면 좋겠다.




<9월 25일, 목>

과하게 익은 가을 과일처럼 떨어졌다.

떨어진 걸 보니, 가을인가 보다.


3개월짜리 일자리였다. 직업에 귀천이 없으니 그 일을 비하할 생각은 없다. 합격하지 못했으니 내가 잘났다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도서관에서 오후 1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하는 단기 계약직이었고, 급여도 그리 많지 않았다. 지원자가 거의 없을 거라는 짧은 생각은 오산이었다. 나보다 더 간절한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다. 면접도 못 보고 서류에서 탈락했다. 너무 익으면 떨어지는 법. 나이도 많고, 업무와 상관없는 과잉경력 탓이지 싶다.


기왕 도서관에서 하루를 보내는 거, 돈이라도 벌며 버텨보자는 생각으로 지원했었다. 와이프의 권유도 한몫했다. 떨어진 이유가 무엇일까, 오만가지 생각도 들지만 어쩌겠는가. 마음에 담아두어 봐야 좋을 것도 없다.


전에 근무했던 회사에서도 연락이 없고, 답답한 나날이 이어진다.

하... 더 내려놔야 하나, 더 내려가야 하나

이렇게 낙담한다고 달라질 건 없다.

어쩌면 작가로 거듭나라는 계시일지 또 모르니, 기왕 이렇게 된 거 써보자.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04화비는 할아버지의 배려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