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02일
떨어지지 않는 감기 탓에 컨디션이 바닥을 친다. 코는 막히고 목은 칼칼한 데다 지독한 편두통까지 남았다. 몸이 고되서 잠자리가 불편한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들이 불면을 부추겼다. '나는 지금 정말 괜찮은 걸까',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걸까'. 잔 건지 못 잔 건지 알 수 없는 몽롱한 상태로 새벽을 버티다 보니, 어김없이 6시 기상 진동이 울렸다. 알람을 끄려고 핸드폰을 보니, 야속한 시간은 기다림도 없이 벌써 1월의 문턱을 훌쩍 넘어섰다.
어제저녁부터 요란하게 울려대던 재난 문자대로 세상은 온통 하얗게 변해 있었다. 도서관으로 향하는 도로는 밤샘 제설 작업의 흔적에도 불구하고 덜 녹은 눈들로 질척였다. 차들은 제 속도를 내지 못한 채 엉금엉금 기어간다. 신호 대기 중 무심코 고개를 돌린 창밖 풍경은 비현실적인 만화 속 세상 같다. 거친 나무의 암갈색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순백의 눈이 예쁘게도 세상을 덮었다. 오늘부터 날씨가 풀린다는데, 이 눈들도 낮이면 다 녹아버리겠지. 그때 내 마음속에 엉겨 붙은 불안과 걱정도 함께 녹아내리면 좋겠다.
또 한 곳의 출판사로부터 투고 결과 문자가 왔다.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예상했지만 늘 아픈 소식. 지금까지 20곳에 원고를 던졌고 그중 5곳으로부터 정중한 거절 통보를 받았다. 하나같이 "우리와 결이 맞지 않으니 더 좋은 곳을 만나길 바란다" 이런 위로였다. 300번의 거절은 각오하라는 선배 작가들의 조언을 되새기며 투고를 이어가고는 있지만, 자꾸만 의문이 든다. 어디가 부족한지 알아야 고치기라도 할 텐데. 혹시 책이 될 수 없는 글을 쥐고 혼자 헛된 발걸음만 내딛고 있는 건 아닌지, 차가운 눈길 위에 자꾸만 마음이 미끄러진다. 역시 난 재능이 없나?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김신회>
[인간의 노동력을 환산한 값이 월급이라고 하지만 과연 월급에 노동력만 들어 있을까. 마음에 안 드는 후배도 참고 넘기는 인내심, 상사의 썰렁한 유머에도 웃어주는 서비스 정신, 할 줄 아는 게 없어도 할 줄 아는 게 많아도 욕을 먹을 수 있다는 깨달음, 나만 회사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회사도 나를 싫어하고 있었다는 반전…. 이 모든 것 한 달치 분량을 꾹꾹 눌러 담은 게 월급 아닌가.]
책을 읽으며 난 시야가 참 좁았구나 싶은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나만 그런가 싶은 것들이 사실은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생각했구나 깨닫게 된다. 정리 안 돼 머릿속을 맴돌고 있던 단어들도 단명하게 표현된 문자로 접하게 되면 내 생각도 정리되면서 무릎을 탁 치게 된다.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이유를 알게 되면서 위로하는 단어 하나 없이도 난 위로를 받는다.
"그래 세상 쉬운 일이 어디 있나"
02월 03일
아침까지 길을 막아서던 은백의 고집들
오후의 볕 한 줌에 순한 물이 되어 흩어졌다
야속하게 길기만 한 이 감기는 목소리를 앗아가고
간절한 문장은 훌쩍임에 자꾸 늘어지기만 한다
질척이는 길 위에 제 속도를 내지 못하는 차들처럼
나의 투고도, 가장된 어깨도 푸른 신호만 기다리고 있다
눈 덮인 세상은 다 녹아 본연의 색을 찾는데
내 마음 서리꽃은 언제 녹아 제속도를 찾아 흐를까
녹아내린 눈은 뿌리 깊이 봄을 전달하려 하는데
유난히 추운 마음엔 좀처럼 온기가 닿지 않는다
문장이 싹을 틔울 수 있는 훈풍 불어오기를
내일은 코끝 스치는 공기가 다정해져 있기를
2월 4일
연일 기승을 부리던 한파가 한풀 꺾였다. 산책하기 좋은 날씨라는 생각에 도서관 주차장에 차를 대고 공원을 걸었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듯 흐릿했지만, 골골대던 몸 때문에 오랜만에 하는 산책이라 그런지 기분은 상쾌했다. 군데군데 보이는 푸른 하늘 틈 위로 남쪽행 비행기 한 대가 잠시 나타났다가 이내 다시 구름 사이로 사라졌다. 엊그제 눈꽃을 듬뿍 머금고 있던 나무들은 어느새 눈이 내리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푸른 잎도, 화려한 눈꽃도 모두 사라진 앙상한 나무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촘촘히 뻗어 나가는 가냘픈 가지들이 보였다. 나무는 저 얇은 가지 끝까지 생명을 살려내기 위해, 겨울이 오기 전 미리 잎을 포기했다. 무언가를 살리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역설적이게도 '포기'하는 일임을 나무는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요즘 우리 부부의 커다란 고민 중 하나는 아이의 스마트폰에 대한 생각이다. 미디어라는 거대한 파도에 올라탄 아이를 마냥 막을 수도,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엊그제의 충돌은 결국 부모의 통제와 아이의 욕구 사이 간극을 줄이지 못한 결과였다. 사실 육아는 부모의 욕심을 덜어내고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면 쉬워질 일이다. 하지만 그놈의 욕심이 문제다.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아이는 피하길 바라는 마음, 조금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주고 싶은 그 욕심을 포기하는 게 가장 어렵다. 세상이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듯 아이의 세상도 내가 겪었던 것처럼 흘러가지 않을게 뻔하지만, 나는 여전히 무거운 잎을 매단 채 겨울을 맞으려 한다.
나 자신에게도 포기가 필요하긴 마찬가지다. 오늘 받은 '50 플러스 채용설명회' 문자를 보며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콜센터 업무라는 말에 선뜻 마음이 가지 않는 건, 아마도 그 직업의 생리를 안다는 핑계 뒤에 숨겨둔 나의 해묵은 인식 때문일 것이다. 퇴직 후의 현실을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내가 예전에 뭐라도 되었던 양' 내려놓지 못한 자존심이 남아 있는 건 아닐까.
나무가 가냘픈 가지를 지켜내기 위해 잎을 떨구듯, 나도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버려야 할지 고민이 필요한 시기다. 아이에 대한 통제욕이든, 과거의 화려했던 명함이든, 지금의 나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포기해야 할 것들이 있다. 앙상한 가지로 겨울을 버티는 저 나무처럼, 나 또한 불필요한 것들을 털어내야 비로소 불투명한 구름 속을 뚫고 유유히 날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본가에서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인사를 나눴다. 이제 그만 가보겠다는 말과 함께 현관문을 닫으려는데, 문틈 사이로 모친의 얼굴이 다시 들어왔다. 그 찰나의 표정을 마주한 순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한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수용소라는 끔찍한 현실 속에서도 아들에게만은 이것이 신나는 게임인 양 연기했던 아버지 귀도. 지금 내 앞에 선 모친의 표정이 딱 그랬다. 당신도 지금 이 상황이 두렵고 앞날이 걱정스럽겠지만, 자식에게만은 "아무 일 없으니 마음 쓰지 마라"라고 말하는 그 안간힘 섞인 표정. 영화 속 아이는 아빠의 익살스러운 표정을 믿고 별일 없을 거라 안심하며 웃었지만, 나는 그 미소 뒤에 숨겨진 진실을 외면하기엔 세상을 너무 많이 알아버렸다.
지금 이대로의 상태만 유지되어도 좋으련만, 냉정한 현실은 상황이 더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노력해도 더는 좋아지지 않을 이 비극적인 흐름은, 안 그래도 연로한 모친의 몸과 마음을 조금씩 좀먹고 있음을 나는 안다. 당신의 삶이 깎여나가고 있는데도 오직 자식의 마음이 다칠까 봐 괜찮은 척 연기하는 그 주름진 미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모친의 그 표정이 잔상처럼 남아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