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고도와 속도로

쓸데없이 합리적이었어

by 케빈은마흔여덟

2월 5일

2만 4천 원이 뭐라고, 쓸데없이 합리적이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며 나를 위한 소모품에 돈을 쓰는 일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됐다. 제법 풍족했던 월급날에도 우선순위는 늘 아이였고, 퇴직 후에는 나를 치장하는 것 자체가 언감생심이 되었다. 다행히 유행이 돌아 옷장 속 낡은 옷들을 꺼내 입을 순 있었지만, 신발은 달랐다. 세월의 찌든 때가 접착력을 갉아먹었는지, 멀쩡해 보이던 신발들도 몇 번 러닝을 나가면 밑창이 너덜너덜하게 분리되어 버렸다.


러닝은 돈이 들지 않는 정직한 운동이다. 기록에 목매지 않는 동네 러너에겐 비싼 장비는 사치일 뿐이다. 하지만 가성비만 따지다 뒷굽이 한 달도 못 가 닳아버린 만 원짜리 운동화의 실패를 겪으며, 최소한의 품질은 타협할 수 없는 문제임을 깨달았다. 최근 몇 켤레의 신발을 연달아 버리고 나니, 자연스레 새 운동화에 눈길이 머물기 시작했다.


코스트코에 계란을 사러 갔다가 2만 4천 원짜리 운동화를 보았다. 2주 전보다 세일이 더해진 매력적인 가격. 신었다 벗었다 하며 살까 말까를 수십 차례 반복했다. 하지만 결국 내려놓고 식자재만 챙겨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니 억울함이 밀려왔다. 고작 2만 4천 원. 산다고 망하지도, 안 산다고 부자가 되지도 않을 그 돈 앞에서 나는 왜 그토록 작아져야 했을까. 그 신발 한 켤레를 고민하던 시간 속에 갇힌 내 모습이 한없이 야속했다.


유행에 민감했던 지난날의 소비는 통장 잔고가 마이너스가 되고서야 과소비였음을 알게 됐다. 경제적 빈곤 속에서 했던 비루한 고민이었지만, 덕분에 현실을 돌아볼 수 있는 냉정한 시간을 가졌다. 아마 덜컥 샀으면 신발장 속 저 많은 신발 중 하나가 됐을 게 뻔하다. 쓸데없이 합리적인 결정이었다고 자위하며, 다음번엔 운동화 코너 근처엔 안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2월 7일

어릴 적 본가 뒷마당은 관악산 줄기와 이어지는 낮은 산이었다. 겨울만 되면 그곳은 우리들의 거대한 썰매장이 됐다. 목수였던 아버지는 현장에서 남은 나무로 세상에 하나뿐인 눈썰매를 만들어 주셨다. 요즘이야 집 평수로 자존심을 세운다지만, 그 시절엔 이런 썰매가 있느냐 없느냐가 내 어깨를 으쓱하게 만드는 기준이었다. 아버지의 솜씨가 더해진 내 썰매는 단연 친구들 사이에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눈은 그저 '출퇴근길의 방해꾼'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눈 많이 오던 저녁, 웬일인지 아이를 졸라 밖으로 나갔다. 아무도 밟지 않은 놀이터에서 아이와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을 만들었다. 눈 위에 누워 팔다리를 휘저으며 자국을 만들고 싶다는 아이의 말에 흔쾌히 허락했다. 깔깔거리며 신나게 뒹굴고, 나무를 흔들어 눈벼락을 맞으며 한바탕 웃었다. 현관문을 열기 전, "오늘 밖에서 누운 건 비밀이야"라고 속삭이며 엄마 몰래 옷을 털어냈다.


눈이 올 때마다 내 마음을 먼저 스치는 건 뒷산의 투박한 나무 썰매다. 나의 아버지도 그때는 길이 미끄러운 게 싫고 추위가 버거운 고단한 어른이었을 텐데, 자식에게만은 겨울의 낭만을 남겨주려 시린 손으로 나무를 깎으셨을 것이다. 내가 그 썰매를 평생 품고 살 듯, 내 아이도 아빠와 눈 위를 뒹굴던 어느 겨울날을 오래도록 기억해 주길 바란다. 그 따뜻한 추억 하나로 아이가 겨울을 싫어하지 않기를 소망한다.




2월 8일

“아들, 맨날 와서 국수만 먹어서 어떡해.” 이가 약해진 부친을 위해 주말 본가 식탁에는 늘 소박한 국수가 오른다. 아들에게 제대로 된 밥 한 끼 대접하지 못했다는 모친의 미안함이 목소리에 배어 있다. 나는 그릇을 비우고 일부러 더 크게 소리를 낸다. “와, 진짜 맛있어요!”


식사 후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옛날이야기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야기는 젊은 시절 명절 길로 이어졌다. 13시간이 걸리던 귀성길, 집에 가려면 반드시 건너야 했던 저수지 물길 이야기. 비가 오면 무릎까지 옷을 적셔야 했고, 때로는 강을 건너지 못해 외갓집에서 하룻밤을 묵기도 했다는 그 시절. 부친은 그때의 물길이 그리운지 한참을 추억하셨다.


문득 바라본 부친의 모습이 평소보다 평온해 보였다. 허리 통증도 잦아든 듯했고, 옛이야기를 이어가는 모습도 제법 명확했다. 정말 조금은 괜찮아지신 걸까 하는 작은 기대가 싹텄다. 지나친 기대는 실망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긴 추위 끝에 찾아오는 잠시의 온기는 믿어보고 싶다. 돌아오는 봄에는 부친과 함께 꽃구경을 갈 수 있기를, 저수지 물길을 건너듯 이 고비도 무사히 건너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2월 9일

나만의 고도와 속도로

오후가 되자 한기가 제법 너그러워졌다. 영상으로 돌아온 기온을 핑계 삼아 서둘러 러닝을 나갔다. 서서히 몸에 열이 오르자 감기 후유증으로 나를 괴롭히던 편두통이 신기하게 사라졌다. 다리와 폐에 전해지는 묵직한 부하가 머릿속 통증을 밀어낸 모양이다. 한기로 웅크렸던 몸에는 온기가 퍼지고, 불투명한 현실 탓에 눅눅해졌던 감정들은 거친 날숨 사이로 빠져나갔다.


투고했던 출판사로부터 연일 거절의 비보가 들려온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본격적으로 글을 쓴 지 이제 겨우 1년이다. 좌절하기엔 너무 이르고, 포기를 입에 담기엔 그만큼의 노력을 쏟았는지 스스로 의문이 든다. 나는 그저 순수 노력파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조금 더 가보기로 했다.


고개를 드니 파란 하늘 위로 방향이 다른 비행기들이 각자의 궤적을 그리며 지나간다. 저마다 출발지도 목적지도 다르겠지만, 모두 어딘가를 향해 묵묵히 날고 있다. 나 역시 나만의 고도와 속도로 조금 더 가보는 수밖에 없다. 신해철의 노래처럼 "그냥 가 보는 거야"




2월 10일

출간 역시 경험인가 보다. 예전 독립출판 지원사업은 너무 준비 없이 선정된 탓에 채 익지 않은 글들이 책이 되었다. 이번에는 공을 들였건만 출판사는 감감무소식이다. 초보 작가에게 이 기다림은 고역이다. 세상은 역시 노력만으로 안 되는 일 투성이다.


학창 시절엔 '노력=성과'라는 공식이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진짜 세상은 달랐다. 노력 뒤에 숨은 변수, 요령, 재능, 그리고 '운'이라는 거대한 벽이 존재했다. 사회에서 만난 친구 P는 술을 한 방울도 못 마시는 체질이었지만, 맨 정신으로 취한 사람보다 더 능숙하게 술자리를 주도하며 자신만의 길을 개척했다. 체질적 한계를 다른 노력으로 극복해 낸 셈이다.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사회가 말하는 경로는 '보편적인 길'일 뿐, '모두에게 맞는 길'은 아니다. 고속도로가 막힌다면 국도로 돌아가면 될 일이다. 나는 경제적 이득을 위해 쓰는 걸까, 아니면 쓰는 행위 자체를 사랑하는 걸까. 고민이 필요할 때 인지도 모르겠다. 나만의 국도를 찾아 다시 핸들을 돌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2월 11일

운은 그저 운일뿐이다

쇼트트랙 남녀 혼성 경기를 지켜봤다. 우리 대표팀은 강력한 우승 후보였지만, 앞선 선수가 넘어지는 바람에 함께 미끄러져 허망하게 탈락했다. 그 장면을 보며 처음 든 생각은 '운이 노력을 배신했구나'였다.


하지만 가만히 빙판을 보다 생각을 고쳐먹었다. 올림픽 무대에 선 이들 중 노력하지 않은 선수가 단 한 명이라도 있을까. 그곳은 이미 노력이 '기본 사양'이 된 사람들의 전쟁터다. 우리 선수가 넘어진 것은 운이 노력을 배신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 순간 운이라는 변수가 그렇게 작용했을 뿐이다.


노력은 자기 자신과의 약속이자 과정의 기록일 뿐, 운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아니다. 우리가 넘어진 덕분에 메달을 딴 선수의 노력이 우리보다 가벼웠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운과 노력을 억지로 연결 짓는 것 자체가 잘못된 전제였을지 모른다. 억울해할 것도, 자책할 것도 없다. 운은 그저 운일뿐이니까.



2월 13일

눈치채지 못하게, 봄이 온다

이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편지를 기다린 적이 있었나 싶다. 돌아보면 나의 직업적 계절은 늘 순탄한 봄이었다. 큰 기다림 없이 취직했고 이직 또한 수월했다. 그래서 지금, 소식 없는 출판사의 메일을 기다리는 이 시간이 낯설면서도 더욱 간절하다.


명절을 앞두고 가라앉은 기분과 러닝의 여파로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도서관으로 향했다. 다행히 공기가 부드러워졌지만, 한내천은 아직 녹지 않은 얼음을 아쉬움처럼 품고 있었다. 평소보다 느린 발걸음으로 아침을 깨웠다. 흐릿한 하늘이 해를 가리고 있었지만, 공원에는 분명히 다른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 문득 발밑을 보았다. 죽은 듯 마른땅 위로 미세하게 푸른 기운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마른 흙을 뚫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어린 잔디들이었다. 풍경은 여전히 겨울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땅 밑에서는 이미 봄이 소리 없이 꿈틀대고 있었다. 지금 나의 이 막막한 기다림 끝에도 봄은 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 일상의 밑바닥에서도 이미 푸른 기운이 시작되었기를 기대해 본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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