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창업을 하나요?
김채리의 출판사 창업일기 #01
아아 안녕하세요 채리입니다.
적고 보니 너무 거창한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결판을 짓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데려왔습니다. 왜 창업인가? 사실 이 질문을 두어 번 들었는데 제대로 답하지 못했던 것 같아 뒤늦은 변명 겸 답변을 해보고자 합니다.
저는 왜 창업을 하려고 할까요? 아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이 짐작하기로서는
1. 출판업계 경력이 있다.
2. 창업으로 돈을 많이 벌고 싶다.
3. 좋은 사업 아이템이 있다.
정도의 이유가 있겠네요.
좋은 습관인지 나쁜 습관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질문에 질문으로 답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생각이 많아서 대화 도중에도 생각을 하고 있는 때가 많은데, 갑자기 "점심 뭐 드실 거예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또 거기서 새로운 생각을 해야 하기 때문에 "뭐 먹을까요?"라는 말로 시간을 버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생각이 많다는 건 여러모로 피곤하네요. 계속 물어봐서 죄송합니다. 점심 정도는 제가 생각하겠습니다.
아무튼 위와 같이 나열한 세 가지 이유는 모두 저에게 해당되는 내용이 아닙니다. 저는 출판 관련 경력이 없어 전문성도 부족하고, 창업으로 돈을 벌기보다 글을 써서 저작권으로 돈을 벌고 싶다는 야망(?)이 있으며, 출판사 창업할 겁니다라는 얘기를 했을 때 돈은 어떻게 벌거냐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던 것을 보면 사업 아이템으로서의 전망도 부족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제가 사양산업이라는, 요즘 사람들이 1년에 1권도 안 본다는 책으로 창업을 결심한 이유가 있다면 '함께하고 싶다'라는 바람이 가장 컸기 때문입니다. 출판사 창업은 제 꿈에 대한 실현과 더불어, 저와 같이 작가의 꿈을 품고 있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고자 하는 바람과 나아가 다른 분야의 젊은 예술인들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래서 작가로서 저의 개인적인 글을 계속해서 써내는 것보다는 '출판사'라는 틀을 통해서 작가와 독자를 연결하자는 포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책을 너무 좋아해서 부모님께서 전집을 사다주시면 한 달안에 다 읽어버리고, 10분이면 오가는 등하굣길을 책을 읽으며 다니느라 1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책과 관련한 이야기만으로 책 한 권을 낼 수 있을 만큼 책벌레였습니다. '신기한 스쿨버스 시리즈' 과학 그림책이나 '그리스 로마 신화' 같은 만화책들도 좋아했지만 제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소설 책이었습니다. 생각이 많은 사람이 소설을 좋아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아시나요? 9살 당시 원자폭탄의 위험성을 그린 소설 '핵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이라는 작품을 읽고 일주일 내내 무서워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던 적이 있습니다. 명절날 할아버지 집에 누워 핵폭탄이 떨어지지 않을까 어두운 창밖을 내내 바라보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휴우... 그렇게 저는 책을 많이 읽어서인지 가장 재밌고 자신 있는 과목이 '국어'였습니다. 그래서 작가를 꿈꾸게 되었고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습니다. 매우 정석대로의 루트입니다.
대문호가 되겠다는 부푼 열망은 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 조금씩 꺾이기 시작했습니다. 스무 살 이후부터 친척들이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당시 집안에서 나름 공부 좀 한다 하는 편이었지만 입시결과가 좋지 못했고, 진학한 과도 취업이나 진로가 불분명해 보이는 곳이었으니 저에 대한 기대만큼 실망도 크셨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곳에서 제가 의연하게 저의 페이스대로 글을 쓰거나 공부를 했다면 좋았을 텐데, 20대 초에 그러한 기지를 발휘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제가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야 했고 그 방법을 글과 책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풀어내려 애썼습니다.
그렇게 도망치듯 제주로 와서 서비스직 일을 시작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새내기 사회초년생은 처음 경험해보는 직장생활에서 겪은 부당함, 불합리함에 저항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제 스스로도 깎여나갔습니다. 마음에 병이 생겼고 시들시들해져 가는 자신을 달래기 위해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습니다. 2020년 3월의 마지막 날 처음 블로그에 글을 작성했던 때가 생각납니다. 새벽 3시가 가까운 시각 잠이 오지 않아 노트북을 켜고 한 편을 완성했다는 성취감을 통해 글의 힘을 다시 느꼈습니다. 몸속을 뒤덮고 있는 나쁜 생각들을 언어로 정제하며 하루하루를 견뎠습니다. 글이 이만큼 나에게 중요한 것이었다니, 그런 것을 저버리고 지내고 있었다니, 뒤늦게 제대로 돌보지 못한 나 자신에게 반성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나는 글을 쓰고 살아야겠다. 글을 쓰는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조금씩 하루의 일부분을 기록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리고 반짝이는 눈빛으로 자신의 꿈을 말하던 주변 사람들을 떠올렸습니다. 저와 같이 글을 쓰는 작가를 꿈꾸던 이, 자신 만의 감각으로 피아노 건반을 다루던 이, 때묻지 않은 동심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던 이, 큰 키와 남다른 센스로 모델을 꿈꾸던 이… 그들의 꿈은 생계유지, 가족의 반대, 경제적 문제 등 여러 가지 여건에 의해 좌절되거나 외면당했습니다. 바로 몇 년 전의 제 자신이었습니다. 저는 언젠가 어떤 방식으로든, 이들이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었습니다. 왜 이들이 품고 있는 꽃봉오리는 피어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고 져야만 하는가. 왠지 모를 사명감마저 갖게 되었습니다.
힘든 순간을 견디기 위해 차곡차곡 쌓아 올린 낱말과 문장들을 가지고 제주도에 있는 취⋅창업지원기관에 들어갔습니다. 이제는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습니다. 누구는 모아둔 돈이 얼마라던데, 만나고 있는 사람과 결혼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던데, 부모님과 해외여행을 갔다던데, 저를 가로막는 사회적 요구와 시선에 더 이상 굴복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나는 이미 글을 통해 죽음을 극복하고, 죽기를 각오하고 이 일에 매달려보기로 했으니 지금은 이 것 외엔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합니다. 제가 누군가의 가사를 들으며 다시 희망을 가지고 꿈을 품었던 것처럼 어쩌면 저의 글로 또 다른 누군가가 절망에서 살아냄을 경험하는 기적 같은 일이 또 생기지 않을까요?
오늘의 채리는 여기까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