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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채리 Nov 24. 2022

어떤 글을 쓰고 있나요?

김채리의 출판사 창업 일기 #02

채리입니다.

어떤 글을 쓰고 싶나요?라고 물으신다면 대답해 드리는 것이 인지상정.

저는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의도치 않게 브런치에 노출된 저의 키워드가 소설가더군요. 제가 소설을 써보기도 하고, 소설을 써서 상을 받은 적도 있지만 아직 소설가는 아닐 겁니다. 이걸로 돈을 벌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최근 ‘우울하지만 사랑스러운 일기’라는 키워드로 단상집 『0 0』을 출간하였습니다. 2020년 우울증에 걸리고 난 이후 일기처럼 블로그에 써온 생각들을 책으로 만들어 보자라는 무모하지만 낯선 도전이었습니다. 제목은 ‘영 영’이라고 읽으면 됩니다. 공공, 빵빵, 이응이응, 눈눈... 천차 만별의 소리로 읽어주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제가 화를 내거나 혼내지는 않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책에 수록된 짧은 70편의 글은 본래 책을 만들겠다는 의도로 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때 당시 저는 (정확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극심한 불안장애를 겪고 있었기에 무언가를 계속 쓰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상태였습니다. 말 그대로 ‘두뇌풀가동’ 상태가 지속되고 있어서 글을 쓰는 일은 일종의 누전차단기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습관처럼 혼자 일기를 써오고 있다가 제주에서 하는 독립출판 워크숍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주에도 이런 기회가 있구나’, 설레는 마음으로 수업을 신청했습니다.


4주간의 워크숍을 수강하고 나서 제 손에는 투박하지만 그래도 썩 나쁘지 않은 책 한 권이 들려 있었습니다. ‘와 내가 좋아하는 책을 내가 직접 만들 수 있다니…!’ 저는 감정 표현에 서투른 편이라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을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설레고 기쁜 상태였습니다. 저의 새로운 출발점이 되어준 책입니다. 이쯤 되면 의문이 드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소설가라더니 소설책은 한 권도 낸 적 없고 무슨 단상집이야? 그러고도 니가 소...   

  

흠흠... 해명을 해보자면 저는 소설가가 되고 싶은 것이 맞습니다. 대학교를 다닐 적에도 소설을 읽고 쓰는 공부를 했었고 지금도 틈틈이 공모전에 낼 작품을 써보기도 하고, 가끔 A4 한 페이지 분량의 엽편 소설을 쓰고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아직 글을 쓰는 능력이 많이 부족하고, 소설을 쓰는 일은 쉽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연습이 많이 필요한 만큼 많이 읽고 쓰고 배우려고 애쓰는 중입니다.  

   

얼마 전에 플리마켓 행사를 나간 일이 있었습니다. 창업 멘토님의 조언으로 제가 쓴 문장을 담은 10개의 작은 종이 책갈피를 직접 만들어서 500원에 판매해보았습니다. 물론 진짜 팔려던 것은 책이었지만, 사람들이 어떤 문장을 좋아하는지 알아보기 위한 작은 테스트이자 500원을 이체하는 동안 한 마디 더 말을 붙여보고 싶은 작은 욕심을 담았습니다. 인쇄업체에 직접 맡긴 것도 아니고, 전문 재단 장비로 자른 것도 아니라 삐뚤빼뚤 엉망인 것들이었지만 그 느낌이 좋다며 한 번씩 더 웃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유독 사람들이 많이 가져가셨던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01

제가 당신의 따뜻함이 되고 싶어요.
제가 당신의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02

너랑 함께라서
하나도 빠지지 않고
빼곡히 담긴다.

가장 우리 다운 것들


                    - 김채리 단상집 『0 0』 수록



단상집에 수록된 이 두 문장은 사실 제가 소설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느슨한 저항의 목소리를 담은 자전적인 소설을 쓰고자 했으나, 단상집의 글은 보시다시피 감성적이고 감각적인 글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글을 부끄럽다고 생각했습니다. ‘세 권정도만 내고 나서는 더 이상 단상집은 내지 않아야지,’ ‘단상집에는 더 이상 쓸 수 있는 말이 없어지지 않을까?’ ‘나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 될 거야.’ 이런 안일한 생각과 막연한 계획들로 저의 책을 대했습니다. 나열하고 보니 어리석은 이 문장들이 더 부끄럽네요.


‘한때 우리의 전부였던’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집을 최근 구매했습니다. 카세트테이프, MP3, PMP 등의 스마트폰으로 대체된 전자 기기들에 대한 글을 모든 책입니다. 책을 읽던 중에 저의 잘못된 생각을 꾸짖는 듯한 문장을 발견하여 공유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 가수는 10집을 냈다. 10집까지 내는 가수는 흔치 않다. 10년이 넘게 이어지는 인연은 흔치 않다.

출처 : 『한때 우리의 전부였던』, warm gray and blue


저도 좋아하는 가수가 어느 순간 앨범을 내지 않을 때, 지난 앨범을 반복해서 들으며 기약 없는 기다림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메모장에 이름을 적어두었던 가수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도 부끄럽게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핑계로 제가 그동안 써왔던 문장을 무시하려 했네요. 어쩌면 저의 책을 구매해주신 분에 대한 기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부로 혼자만의 작은 약속을 하려 합니다. 10년 뒤에도 제가 처음 발행했던 만큼의 부수라도 꼭 저의 책을 만들겠노라고요. 오늘의 채리는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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