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만한 당신 Dec 25. 2020

'남과 비교하기'라는 덫

글쓰기가 재미있다가 없다가

누가 시켜서, 해야 해서가 아니라 좋아서 즐거워서 무언가를 하게 되면 저절로 눈이 떠지고, 어떻게든 그 일을 하기 위한 시간을 내게 된다는 것을 아는가. 최근 몇 주간, 내게 글을 쓰는 일이 그랬다. 일과가 끝나고 캔들워머로 방 한구석을 밝혀두고, 책상 위의 백색 스탠드를 켜서 어두워진 사위를 조금 밝히는 일. 그리고 브런치를 열어 '제목을 입력하세요'로 흐릿하게 써져있는 텅 빈 화면을 바라보며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무언가를 써 내려가는 일. 일상에서 글감을 찾게 되고, 써두었던 글을 퇴고하는 일이나 좋아하는 책을 필사하는 일, 거기서 영감을 받아 또 문장을 쓰게 되는 일들. 이런 종류의 기쁨은 내게 생경한 것이었다. 글로 생각을 풀어내고 정리하는 데서 오는 시원함도 있지만 내면을 들여다보고 내 안에 있는지도 몰랐던 마음을 발견하고 가시화하는 것은 고요하면서 충만한 행위였다. 무엇보다 내가 바라던 '글을 쓰는 사람',  누군가에게 위로와 선한 영향을 주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해 지금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이 일종의 안도감과 뿌듯함을 느끼게도 해주었다.  스스로 글을 잘 쓰는 축에 든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내가 시간을 들여 쓰고 싶었던 글을 쓰고 그걸 퇴고하여 완성한 글은 종종 스스로 흡족했고 기쁨을 주었다. 그러다 요 며칠 이전처럼 글을 쓰는 일을 즐거워하지 않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무슨 일일까, 특유의 반추 능력으로 곰곰이 되짚었다. 



10월 경, 학교에서 10명 내외의 소그룹으로 약 두 달 동안 운영하는 온라인 글쓰기 프로젝트를 개설하였고 운 좋게 신청이 되었다. 프로그램은 매주 1회씩 등단작가에게 글쓰기 강좌를 들으며 글쓰기의 기본적이지만 핵심적인 것들을 배우고 실습하는 과정이었고, 궁극적으로는 각자 10-13매 분량의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이번 주에 있었던 5번째 강의에서는 다음 주에 최종 제출할 원고의 마지막 점검이 이루어졌다. 2번의 피드백을 거쳐서 수정된 원고에 대해 작가에게 일대일로 피드백을 받는 과정은 즐거웠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작가와의 피드백 이후에는 수강생들끼리 서로의 글을 읽고 좋은 부분과 아쉬운 부분을 나누는 활동을 했다. 이전에 파편화된 글만 공유하다가 처음으로 거의 완성된 원고를 나눠보게 되었는 데, 신선한 소재로 유려하게 쓴 글들이 많아서 사실 좀 놀랐다. 나이에 연연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나보다 10살은 어릴 대학생들이 그 정도 수준의 글을 쓴다는 게 대단하게도 느껴졌고 반대로 내 글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A 수강생은 무당벌레를 소재로 평행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썼고, B 수강생은 게르 생활을 하는 유목민의 삶을 써냈다. C 수강생은 사랑이란 소재를 부모님의 결혼생활을 통해 액자식으로 풀어나가는 서술로 몰입하게 만들었고, D 수강생은 생소한 단어들로 낯설지만 생생한 묘사를 구사해 감탄하게 만들었다.  


반대로 내 글은 고심 끝에 결정한 여행기 형태를 띤 에세이었는 데 진부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거의 매일 1시간 이상씩을 쓰고 수정해 왔는 데도 여전히 등장인물들의 대화가 산만한 것 같고, 글의 흐름도 예상 가능해서 지루하게 느껴지고, 지나치게 감정 과잉인 것 같기도 했다. 이 정도 수준의 글이면 더 낫게 만들기 힘들지 않을까?  저 사람들은 저렇게 잘하는 데 나는 이것밖에 안 되는 데? 




그렇다. 비교의 덫에 빠진 것이다.  내가 잘하고 싶고, 중요하게 여기는 무언가를 남들이 훨씬 더 잘하고 나는 형편없고, 나아질 것 같지 않고, '해봤자 어차피 나는 저 사람들보다 더 잘할 순 없어'라는 생각의 오류에 빠지는 것 말이다. 남과 비교하기 덫에 빠졌다는 걸 알아차리자, 웬걸 의외로 슬그머니 웃음이 났다. 그런 스스로에 대해 실컷 웃어주었다. 너, 또 그러고 있구나. 누가 저 사람들보다 잘하라고 그랬어? 비교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니까? 


최근 몇 년의 경험을 통해 누군가와 비교하지 말고,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기준으로 나아가자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시간을 보냈다. 이 정도면 충분히 훈련된 줄 알았는 데, 살아오면서 쌓아온 '남과 비교하기'라는 오랜 습관을 허물기엔 여전히 역부족이었나 보다. 다만, 그걸 빨리 알아차리게 되었다는 걸 기특해할 순 있었다. 내가 저 사람보다 더 잘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래서 해봤자 소용이 없을 것 같다는 이유로 내가 소중히 여기던 것을 놓아버리려 했던 것 말이다. 

아마도 곰곰이 들여다보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냥 글쓰기가 재미가 없어졌다고 합리화하거나, 나는 안 된다며 불필요한 자괴감에 매몰되곤 글을 쓰는 일을 계속하지 않았을 것이다. 표면적인 이유 아래에 실은,  잘하는 것은 '남보다' 잘해야 하는 것이고, 잘하지 못하는 것은 곧 무용하다는 오래된 믿음이 내 안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인데 말이다.  



그래서, 다시 훈련의 시간이다. 누구보다 잘하기 위해서, 뛰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기꺼이 하고 싶은 일이라서, 어제의 나보다 조금씩 나아질 수 있는 일이라서, 잘해서가 아니라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에 하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을 일깨운다. 매일의 노력이 어디엔가 차곡히 쌓여감을 진심으로 믿고 시간을 들이겠다고 다짐한다. 평가를 해야 할 때는 나만의 속도와 나만의 기준을 들이대자고 다짐한다. 때로 읽히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들 때는 박준 작가의 말을 지지대로 삼는다. 쓰는 행위가 주는 순수한 기쁨과 위로를 잊지 않으려고. 


"다만 어떤 글은 누군가에게 읽히지 않아도 쓰이는 일만으로 저마다의 능력과 힘을 가지는 것이라 믿는다. 마치 마음속 소원처럼. 혹은 이를 악물고 하는 다짐처럼." 
-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산문집 중





매거진의 이전글 "죽기 전에 내가 다시 여기를 방문할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