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만한 당신 Dec 21. 2020

"죽기 전에 내가 다시 여기를 방문할 수 있을까?"

일상이 여행이 되는 일

일상은 반복이다. 오늘의 일과와 내일의 일과가 비슷하고 가볼까, 해볼까 싶은 것들을 꼭 오늘 하지 않아도 된다. 언젠가, 아무 때나 갈 수 있으니까. 오늘을 메우는 건 있었던 일에 대한 후회와 다가올 일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다. 반복되는 매일이 주는 안정감은 때로 지금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자주 잊게 만드는 건 아닐까, 생각해왔다. 


그래서 여행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해방감도, 이국적인 풍경이 주는 설렘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매 순간 깨어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 이 순간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들의 연속이기 때문이었다. 오늘 무엇을 먹을 것인지, 지금 내가 감상하고 느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발걸음을 옮기는 곳마다 새로운 자극에 눈을 두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사람들을 바라본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넘기지 않는다. 꼭 가고 싶었던 곳을 간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별로라는 다른 사람의 말로, 지금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이유 같은 것들로 스스로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않는다.



 

올해는 많은 것들이 멈췄다. 당연했던 것들이 당연해지지 않게 되었다. 일상을 떠나는 것에서 기쁨을 찾던 나는, 일상을 여행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찰나의 행복을 주고 지는 벚꽃도, 매일 조금씩 채워져 가는 달을 바라보는 일도, 천천히 끝부터 물들어가는 단풍도, 부쩍 높아진 하늘을 바라보는 일도 허투루 느껴지지 않았다. 다니지 않았던 길을 가보고 새로운 것을 살피고, 먹어보지 않았던 음식을 먹어보고, 좋아하지 않던 장르의 책을 읽어보면서, 홈 카페를 꾸미며 다양한 취향의 음악을 즐기게 된 일은, 일상을 여행지에서처럼 호기심의 마음으로 살고자 했기에 가능해진 일이었다. 



소설가 김연수의 말을 떠올린다. 

“죽기 전에 내가 다시 여기를 방문할 수 있을까? 여행지에서는 그런 질문을 자주 던지기 때문에 영혼이 깨어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아마 평상시에도 그런 질문을 반복적으로 던진다면, 누구의 영혼이라도 깨어나리라.”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될 때, 일상의 단조로움이 여행의 낯섦으로 바뀐다. 매일이 변함없이 반복된다는 허상을 깨닫게 됐고, 매일이 찰나임을 알고 순간을 음미하고자 하는 것이 곧 여행이라고 믿게 됐다. 일상을 여행하는 마음으로 살게 된 한 해다. 이 일상도 언제까지고 계속될까? 매 순간을 놓치지 않고 보내리라고, 그래서 '영혼을 깨우며' 지낼 수 있기를 간곡한 마음으로 바라고 있다. 올해의 마음이다.





* 해당 글은 한국상담학회 2020년 12월호에 『아듀 2020, 한 해를 돌아보며』에 수록한 글로, 수정을 거쳐 재게재하였습니다. http://webzine.counselors.or.kr/ 


매거진의 이전글 어떤 것도 바꾸고 싶지 않은 사람을 사랑해본 적 있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