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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만한 당신 Dec 15. 2020

어떤 것도 바꾸고 싶지 않은 사람을 사랑해본 적 있니?

넷플릭스 오리지널 <반쪽의 이야기>

넷플릭스에 5월 1일 자로 업데이트된 오리지널 영화 <반쪽의 이야기>(원제: The Half of It)를 보았다. 썩 마음에 들어서 두어 번을. 고등학교 졸업반인 한 남자(폴 먼스키)가 같은 학교의 여자(알렉시스 레마이어)를 좋아하게 되고, 이웃에 사는 엘리 추에게 사랑의 편지를 써달라고 부탁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간단하게 풀어쓴 시놉시스는 하이틴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진부한 소재인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소재를 풀어나가는 방식도 아주 새롭지는 않다. 


# 캐릭터의 비전형성

그러나, 이 영화의 미덕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에 있다기보다 각 캐릭터들의 비전형성에 있는 것 같다. 우리가 하이틴 영화에 등장하는 '운동하는 남자', '인기 많은 여자', '공부만 잘하는 여자' 캐릭터가 으레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성격적인 특성이나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 전형성을 벗어난 각자만의 결핍이 있고 그것이 촌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제시되며, 각자의 독특성이 이야기를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끌고 간다.  



# '사랑'에 대한 직접적인 발화들

청소년이 등장하는 영화의 장점이랄까 특징은, 성인이 주인공인 영화에서 발화하긴 멋쩍은 대사나 이야기들이 허용된다는 점이다. 아마도, 사람들이 공유하는 청소년기라는 특성이 그런 오글거림을 용인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래서 청소년 주인공들의 대사를 통해서 감독이 영화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폴과 엘리가 영화 초반에 나누는 '사랑이 뭐냐'라는 주제의 대화 장면이 그렇고, 결국 폴과 엘리가 각자의 감정이 어디를 향했는지, 그 감정의 실체가 무엇이었는지를 깨닫고 나서 방백 하듯 쏟아내는 교회 장면이 그렇다. 그 모든 과정을 통해 폴과 앨리가 알게 된 '사랑의 무엇인지'에 대한 답은 곧 영화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며, 폴의 다음과 같은 대사로 대신할 수 있으리라.  


"난 늘 사랑은 한 가지 방식뿐이라 생각했어. 올바른 방식 하나. 하지만 더 많아.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많아. 그리고 난 사랑의 방식 때문에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을 관두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I always thought that there was one way to love. Uh, one right way. But there are more.  Uh, so many more than I knew. And.. I never want to be the guy who stops loving someone.




# 성장은 각자의 '사랑'을 확장해 가는 것 

폴은 직감적으로 사랑을 알고, 엘리는 글로 사랑을 알았지만, 결국 두 사람 모두 사랑에 대한 감각과 생각을 훨씬 더 확장해나간다. 사랑의 대상이 되었던 알렉시스 또한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을 받아들인다. 영화 중간중간에 그 장면을 설명해주는 것처럼 보이는 사랑에 관한 명언이 두 번 등장하는 데, Oscar Wilde와 Satre의 글이다. 그런데 가장 마지막에는 엘리가 말한 사랑의 정의가 명언처럼 화면에 제시된다. 

남을 통해, 글을 통해, 막연하게 안다고 생각했던 것을 자신의 언어로, 자신만의 경험으로 정의를 내릴 수 있게 된 앨리는 이미 그것만으로 충분히 성장한 것일지 모른다. 




# Squahamish라는 공간

영화 내용 중 Iowa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근처 어느 소도시이지 않았나 싶은데 찾아보니 가상의 공간이라고 한다. 감독인 Alice Wu가 최근 인터뷰에서 Squahamish는 워싱턴주 동부에 위치하며 꽤 자유주의적인 주에서는 보수적인 마을로 구상했다고 언급하였다. 

그러나, 실제의 공간들도 꽤 등장한다. 앨리와 앨리의 아버지의 공간이던 기차역은 Thendara Station이며,

Thendara Station in Old Forge NY which is part of the Adirondack Scenic Railroad








폴과 알렉시스가 데이트를 했던 Sparky's Diner라는 음식점 또한 같은 이름으로 운영되는 음식점이다.

The town of Haverstraw, 129 Ramapo Rd, Garnerville





공간에 관련된 자료 출처 https://famewatcher.com/where-exactly-is-squahamish-half-of-it-movie-location.html 




Squahamish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이곳을 떠나본 적도 없고, 여러 가지 이유로 떠나기를 망설인다. 여기를 나서면 더 큰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미 이 곳의 삶도 '괜찮기' 때문이다. 훌륭하지는 않지만, 괜찮은 공간으로서 상정된 가상의 마을 Squahamish를 배경으로 함으로써 세 주인공들의 성장은 단지 사랑에만 머물지 않고, 각자의 세계를 넓히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미 가진 괜찮은 것이 망가질 수 있음을 각오하면서, '대담한 선(a bold stroke)'을 그으려는 용기를 내고 나아간다. 큰 도시로, 대학으로, 원하던 꿈에 가까이. 


영화 후반부에서는 주인공이 Squahamish를 떠나기로 결정된 모습을 보여준다. 성장을 한 주인공이라면 가상의 마을 Squahamish는 반드시  떠나야만 하는 공간이 된다. 괜찮은 사람보다 훌륭한 사람이 되기로 결심해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인공들이 정말로 '훌륭한' 사람이 될까. 훌륭하다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결과를 떠나, 망칠 수도 있지만 기꺼이 떠나겠다고 용기를 낸 것, 그래서 행동으로 옮기는 것, 일련의 과정을 겪은 것이 곧 훌륭함이라고 나는 믿는다. 




# 우리는 무엇을 사랑이라고 말하는가

영화를 곱씹다 보면, 여러 종류의 사랑이 곳곳에 있었음을 알게 된다. 폴과 엘리와의 우정, 알렉시스에 대한 긴장된 설렘과 애정, 교사가 엘리에게 보이는 아끼고 보살피는 마음, 그리고 엘리 아버지의 은은하지만 가장 빛나던 부정까지. 길지 않은 장면이었지만 엘리 아버지가 말했던 대사가 우리가 가장 가까이에서 느끼면서도, 가장 쉽게 그 소중함을 간과하는 사랑을 대변해준다고 느꼈다. 그 대사를 남기며 글을 줄인다. 


"상대의 그 어떤 것도 바꾸고 싶지 않은 사람을 사랑해 본 적 있니?"
Have you ever loved someone so much you don't want anything about her to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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