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겐 여전히.
‘아직도?’라는 말을 누군가가 말하는 아픔에, 상처에, 감정에 되묻지 말자고 다짐한 지 오래다. 그 말의 앞에 혹은 뒤에 생략되어 있는 수많은 말들이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게 언제 적 일인데 너 아직도 그러고 있어', '그건 좀 과한 거야, 이상한 거야'. '뭐 별일이라고 그렇게까지 끙끙 앓고 있어.' 같은 숨겨진 말들은 이미 상처 받아 있는 사람에게는 훨씬 더 예리하게 감지된다.
상처가 덧났던 순간에는 늘 저 말이 있었다. 직장동료로 인해 정신과 진료를 오래 다니다가 결국 잠시 휴직하겠다고 말했을 때, '아직도 힘들다고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가 그랬고, 그건 부모님처럼 힘들어하는 나를 가까이서 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아직도 그러면 어떡하냐. 괜찮아져야지. 극복해야지.’ 걱정하는 마음으로 말씀하시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여전히 그 사건을 느리게 소화하고 있는 내가 이상한 건 아닌지, 나만 이런 것인지 무서웠고, 또 그렇게 보일 것이 두려워서 더욱 움츠러들었다. 몇 년이나 지난 연인에 대한 감정을 말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가까운 친구들은 황당해하며 '아직도 그렇다고?' 라거나 '네가 정말 다른 좋은 사람을 못 만나서 그래.'라고 말하곤 했다.
그때 입은 피해로 여전히 힘들다는 말, 누군가에 대한 감정으로 여전히 마음이 동요된다는 말을 꺼내기까지 때론 용기가 필요하다. 타인들에게 '아직도?'라는 반응이 돌아올 것을 예상하기 때문이다. 몇 번의 '아직도' 공격을 당하면서 오히려 이런 개인적 경험이 상담자로서 내담자를 만날 때, 또는 누군가를 아끼는 사람으로서 누군가의 아픔을 들을 때 다르게 대처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랬구나, 여전히 힘들었구나. 그동안 말도 못 하고 혼자 끙끙 앓았겠다"
"그래, 그게 마음에 남아있었구나. 너에게 정말 의미 있는 사람이었나 봐."
"10년, 20년 된 일도 남는데요. 그만큼 oo 씨가 많이 상처 받았던 것으로 이해돼요, 전."
더 간단하게는, "여전히 네 마음이 그렇구나."라고 따뜻함을 담아 반응하는 것 만으로 충분하다. 의아해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걱정한답시고 조언하지 않고. 솔직하게, 용기 있게 말해준 것에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것. 그것은 '여전히 그런 나'가 이상하지 않고, 그럴 수 있고, 그래도 된다는 안심을 준다. 여전히 그럴 수 있다는 나를 인정하고 나면 그 일이, 그 말이, 그 행동이, 그 상처가 왜 내게 오래 남아 있는지를 뜯어볼 수 있는 여유를 준다. 나는 그것이 회복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건 '아직도?'라고 되묻는 사람들 속에서 위축되어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종류의 여유다.
그러니, 부디 '사실 나 여전히..'라는 말에 '아직도'라는 의아함 대신 '여전히 그렇구나'의 다독임과 따뜻함을 되돌려주는 당신과 내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그런 위로는 남에게뿐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더욱 필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