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데려다 주는 곳
나는 깨달았다. 세상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만약 이날 폰을 도둑질 당하지 않았다면 이 광경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이날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 고스란히 이 순서대로 벌어지지 않았다면, 이 한 장의 사진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좋은 일은 물론 나쁜 일들까지 모두 다. 하나도 빠짐없이 차곡차곡 쌓여야만 현재를, 지금 이 자리를 만들어낸다. 때로는 힘들고 아픈 일이라고 생각했던 순간들도. 알고 보면 어떤 잊지 못할 삶의 조각으로 나를 이끌기 위한 과정일 수도 있다. - 『케이채의 모험』 중
“하나도 빠짐없이 차곡차곡 쌓여야만 현재를, 지금 이 자리를 만들어낸다”라고 믿는 작가의 마음을 떠올린다. ‘좋은 일은 물론 나쁜 일들까지 모두 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빠짐없이 쌓아와 마주한 결과가 흡족하고 흐뭇했기 때문은 아닐까, 비뚤어진 마음으로 본다. 찰나의 선택들이, 살면서 별로 중요치 않다고 생각했던 결정들이 때로 삶의 방향을, 나라는 사람을 어떻게 바꾸어놓는지를 우리는 알고있지 않나. 비록 뒤돌아보고서야 깨닫는 일이 부지기수지만.
찰나의 선택은 단지 물건 하나를 사는 것,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당장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이 말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그곳을 갈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사소한 것일 수 있지만, 그 순간의 결정이 ‘나’라는 사람의 태도를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핑계를 댈 것이 없어진다. 중요하지 않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했지만, 그 결정이 내 삶의 가장 벅찬 순간으로 데려갈 수도 있고, ‘별 일 아니겠지’라고 넘겼던 것들이 큰 눈덩이가 되어 돌아오는 일도 있지 않던가. 직업을 구할 때 크게 다르지 않을 거란 생각으로 머물 지역을 선택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기회를 놓치게 만드는 일이 되었고, 우연한 기회에 가볍게 배우기 시작한 스쿠버다이빙은 바다라는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 기회가 되었다. 말 한마디를 잘못하여 가까워지기 어려워진 사람도 있고, 짧은 편지 한 장이 끈끈한 인연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해내지 못하면 죽을 것 같이 아등바등하던 일이 예상하던 만큼 끔찍한 결말로 이어지지 않고 해결되기도 했고, 그냥 넘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바랐던 일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실수 혹은 잘못이 되기도 했다.
그 모든 과정을 거쳐 나는, 지금 나라는 모습으로 여기 이 지금에 와 있는 것일까. 이런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과거에 거쳐 온 ‘좋은 일은 물론 나쁜 일들까지 모두 다’ 하나하나 해체하여 어디서 잘못된 것인지 들여다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부질없는 일임을 알면서도. 답은 결국 하나라고 믿는 수밖에. 지금의 내가 좋은 모습인지 혹은 나쁜 모습인지 판단하지 않고, 과거의 경험들과 나의 선택들이, 그리고 어찌할 수 없었던 우연한 일들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진 모습이라는 것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남은 삶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들과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지는 것들에 응하는 것. 그렇게 차곡하게 쌓인 과거들이 나를 데려갈 장소에, 마주할 사람에, 당도하게 될 삶의 어딘가가 최선임을 믿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