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로인간 1 - 변화편 #11
지난 글에서는 편도체가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대해 알아봤다. 편도체는 위험에 대처하는 다양한 솔루션을 아주 짧은 시간에 병렬연산해서 종합적으로 대처하는 엄청난 성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나는 지난 글의 초입에서 편도체가 회로인간의 메인 빌런이라고 소개했다. 이렇게 우리 생존에 큰 도움을 주는 기관이 왜 메인 빌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걸까?
편도체를 회로인간의 메인 빌런으로 취급하는 이유는 크게 3가지다.
첫째는, 편도체에 의존하는 사고방식이 무척 편안하다는 것이다. 위기 해소는 신속해야 하기 때문에 속도를 중시하게 되고, 속도를 중시하면 구체적인 상황을 따져보거나 새로운 생각을 하는 비효율적인 방식을 쓰지 않게 된다. 별다른 노력 없이 즉흥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편도체에 의존하는 방식은 상대적으로 편리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사람의 뇌는 전체 무게의 2%밖에 되지 않으면서 기초대사량의 20%를 사용할 정도로 에너지 효율이 나쁜 기관이라, 과거 인류에게는 이 문제가 삶과 죽음을 가를 수도 있었다. 실제로 편도체에 의존하는 사고방식은 신경이 강하게 연결된 경로를 최대한 이용하려 하기 때문에 에너지 효율을 극적으로 올려주게 되어, 본능적으로도 선호되는 방식이다.
둘째는, 편도체가 태생적으로 위기상황에서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다는 점이다. 일단 편도체가 강하게 활성화되면 전전두엽 같은 이성적 사고 기관이 빠른 속도로 대응하기 어려워진다. 물론 조건이 맞을 경우 전전두엽이 상향 조절을 통해 편도체의 반응을 억제할 수도 있지만, 급성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편도체의 속도가 전전두엽을 압도하기 쉽다.
긴급상황에서는 소통이나 검증보다 신속한 행동이 중요하다. 투쟁-도피-동결의 본능적 해결이나 학습적 해결, 창발적 해결 모두 자기 회로 안에서 빠른 결론을 내리는 방식이며, 외부 의견을 받아들이는 여유가 없다. 이로 인해 근거 없는 자기 확신이 강해지고, 억제가 약화되면서 평소 숨기던 편견이나 충동이 쉽게 행동으로 드러날 수 있다. 인간의 불합리가 가장 직접적으로 표출될 수 있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셋째는, 편도체가 단순히 on/off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기저 활성도의 개념이 있다는 점이다. 편도체의 기저 활성도가 높은 상태라면 약간의 자극만으로도 강하게 반응하게 된다.
사람마다 위기를 판단하는 정도가 다르다. 어떤 사람은 바로 옆에서 큰 소리가 나도 별 반응을 하지 못하고, 누군가는 길 위에서 시선만 마주쳐도 자신의 존엄성이 침해된 심각한 상황으로 생각하고 행동에 나선다. 이런 차이를 만드는 것이 편도체의 기저 활성도이다.
기저 활성도가 결정되는 방식도 결국 신경가소성이다. 평소에 편도체가 자주 활성화되는 생활을 하면 높아지고, 편도체가 활성화되지 않으면 조금씩 떨어진다.
편도체에 의존하는 행동은 기본적으로 “지금까지 자신이 원래 하던 방식”을 답습하게 되어 있다. 위기로 인해 불안감을 느끼면 편도체 활성으로 인해 행동을 예측하기 쉬운 상태가 되고, 사람 간의 진짜 위기에서는 예측당하고 나면 더 큰 위기로 몰리기 쉽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고 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편도체가 회로인간의 메인 빌런인 이유는 아래와 같다고 할 수 있겠다.
1. 편도체는 신속한 위기 해소를 위해 속도를 중시하다 보니 에너지 효율이 높아서 생각하는 과정이 고통스럽지 않고 편안하다.
2. 편도체에게는 강력한 권한이 있어서, 의견 수렴이나 생각의 검증을 최소한으로 하고 그 결과를 행동으로 간단히 옮기게 된다.
3. 활성화의 개념이 on/off가 아니라 기저 활성도가 있어서 평소에 편도체가 자주 활성화되면 작은 자극에도 강하게 활성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