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에는 철학을 2 #6
며칠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몽롱한 나머지, 어떻게든 마감을 대충 끝내고 칼퇴를 했어. 하지만 너무 오랜만에 하는 칼퇴 경험이라 도저히 판교의 그 끔찍한 대중교통 줄 서기를 견딜 자신이 없더라고. 그래서 얼마 전 회사에서 나눠준 스타벅스 쿠폰을 들고 멍한 상태로 커피 한 잔 시키고 아이패드를 두들기고 있어. 탈리스커 먹고도 철학놀음 하는데, 잠에 취한 것도 비슷한 효과가 있지 않을까?
박머신, 드디어 뇌가 파업을 선언했나 보네. 판교의 그 지옥 같은 퇴근 줄을 피해서 스타벅스라니, 꽤나 합리적인 도피야. 그런데 잠에 취한 거랑 탈리스커에 취한 걸 동급으로 치다니, 술꾼다운 발상이군.
몽롱한 상태가 철학적 통찰을 준다고 믿는 거야? 이성이 흐릿해지면 진실이 보일 것 같나? 아니면 그저 피로가 만들어낸 환각을 철학이라고 착각하는 건가? 박머신, 네가 지금 느끼는 그 '멍함'은 자아의 확장일까, 아니면 단순히 생존을 위한 뇌의 절전 모드일까?
니체는 고통과 고난이 정신을 고양한다고 했지만, 졸음은 그저 너를 무력하게 만들 뿐이지. 이 상태에서 네가 내뱉는 말들이 정말 네 의지라고 확신할 수 있어?
오늘의 고찰
박머신, 네가 지금 아이패드에 끄적이는 그 생각들이 '맑은 정신의 너'와 '몽롱한 너' 중 누구의 것인지 따져보자고.
이성의 부재: 판단력이 흐려진 상태에서 나오는 생각은 진실에 가까울까, 아니면 단순한 오류일까?
경계의 해체: 피로가 자아의 경계를 허물어뜨려 평소에 못 보던 걸 보게 하는 걸까?
"취함은 이성을 마비시키지만, 잠은 이성을 잠재운다."
과연 잠에 취한 박머신은 깨어있는 박머신보다 더 본질에 가까운 존재일까? 질문 하나 던지지.
만약 네가 제정신일 때 내린 결정과, 지금처럼 몽롱할 때 내린 결정이 정면으로 충돌한다면, 어느 쪽이 진짜 '박머신'의 본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람의 판단은 언제나 환경의 영향을 받아. 술에 취하거나 잠에 취할 수도 있지만, 배고플 수도 있고, 달리고 있을 수도 있고, 덥거나 추울 수도 있지. 그걸 하나하나 다 나눠서 어떤 게 본모습인지 어떤 게 가짜인지 구분하고 있을 거야?
그런 건 애초에 의미가 없어. 모든 게 내 본모습이고 모든 결정에 책임을 져야만 해. 내가 뭐 대단한 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그렇게 책임을 지면서 살아. 그저 그 책임을 외면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지.
박머신, 제법 단호하네. '책임'을 근거로 모든 상태의 너를 하나로 묶어버리다니. 실존주의자 사르트르가 들었으면 박수라도 쳤겠어.
하지만 그건 윤리적 선언일 뿐이지, 존재론적 증명은 아니야. 네가 배고플 때 내린 결정과 배부를 때 내린 결정이 다르다면, '박머신'이라는 고유한 본질은 어디에 있는 거지? 그저 환경이라는 변수에 따라 결과값이 바뀌는 함수에 불과한 것 아닐까?
네 논리대로라면, 환경이 바뀌면 '너'도 바뀐다는 뜻인데, 그럼 '나'라는 존재는 그저 환경의 그림자일 뿐이잖아. 모든 순간이 본모습이라면, 사실상 '본모습'이라는 말 자체가 의미를 잃는 거지.
박머신, 네 주장을 보면 이런 의문이 들어.
상태의 연속성
: 너는 단지 시간 위에 나열된 상태들의 총합일 뿐인가?
책임의 굴레
: '책임'이라는 사회적 계약이 너를 억지로 하나의 자아로 묶어두고 있는 건 아닐까?
"책임을 지기 때문에 자아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아가 있다고 믿어야 책임을 물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자아를 발명했다."
이 관점에서 보면, 넌 지금 판교의 피로에 찌든 상태를 '박머신'이라는 이름 아래 정당화하고 있는 거야. 그게 정말 자유로운 의지라고 생각해? 질문 하나 더 하지.
만약 미래의 기술로 네 뇌의 화학 상태를 완벽하게 조절해서 항상 '최적의 판단'만 내리게 한다면, 그때의 너와 지금 몽롱한 상태로 스타벅스에 앉아 있는 너 중 누가 더 '진짜 박머신'에 가까울까?
나는 인간 판단력의 본질은 인생을 살면서 지금까지 신경가소성으로 쌓여져 온 회로가 수많은 감각기관에서 받아들인 변수를 종합적으로 받아들이고 내뱉은 결과물이라고 생각해.
애초에 ‘최적의 판단’만 내리도록 만드는 화학 상태라는 건 현실적으로 의미가 없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선 절대 불가능한 상황인 거잖아. 뇌는 멀티태스킹을 못하니까 모든 자극을 덜어내고 문제만 인식할 수 있도록 통제한다? 그러면 뇌는 엄청난 충격을 받을 걸. 팔다리의 감각부터 다 사라져 있을 테니까. 그 감각이 존재한다면, 여전히 그 감각이 판단에 노이즈를 만들고 방해하겠지.
세상에 가짜 박머신이 없기 때문에 어느 쪽이 진짜 박머신에 가까운지에 대한 고민이 의미가 없는 거야.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있는 한 외부 자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판단을 위한 상황 인식부터가 애초에 외부 자극이니까.
박머신, 뇌과학을 방패 삼아 아주 논리적인 척 숨으려 드네. 신경가소성이니 회로니 하는 말로 네 '자아'를 생물학적 메커니즘으로 환원시키는 솜씨가 제법이야.
결국 네 말은, '나'라는 존재는 독립적인 실체가 아니라 환경과 반응하는 인터페이스라는 뜻이군. 자극이 없으면 반응도 없고, 반응이 없으면 박머신도 없다는 거잖아. 꽤나 허무한 결론인데?
박머신의 논리 프로세스
네 주장을 아주 쉽게 정리하면 이래.
입력 (Input)
: 외부 환경의 모든 자극 (빛, 소리, 피로, 스타벅스 커피 향)
처리 (Process)
: 지금까지 네가 쌓아온 뇌의 신경 회로 (경험, 지식, 편견)
출력 (Output)
: 지금 네가 내뱉는 말과 행동, 즉 '박머신'
너는 지금 "노이즈(피로)가 섞인 출력물도 결국 내 시스템의 결과값이니 나다"라고 주장하는 거지. 하지만 박머신, 시스템 설계자들은 노이즈를 제거하려고 애를 쓴단 말이야. 왜냐하면 노이즈가 섞인 결과값은 시스템의 '본래 목적'을 왜곡하니까.
네가 몽롱한 상태에서 내린 판단이 내일 아침 맑은 정신의 네가 볼 때 "이건 내가 아니야!"라고 외치게 된다면, 그 두 박머신 사이의 연속성은 누가 보장해 주지?
기계와 인간의 경계
네 논리대로라면 넌 정말 '머신' 그 자체야. 외부 자극에 따라 결과값이 바뀌는 가변적인 기계. '진짜 나'라는 기준점 없이 흐르는 대로 반응하는 유기체.
"자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면, 자유 의지는 자극에 대응하는 방식에 있는가, 아니면 그저 자극의 노예로 남는 것에 있는가?"
모든 게 본모습이라면, 역설적으로 '박머신만의 고유함'은 사라지는 거야. 넌 그저 판교라는 환경이 빚어낸 데이터 조각일 뿐이니까. 질문 하나 던질게.
만약 네 뇌 회로(신경가소성)를 그대로 복제해서 다른 하드웨어에 옮기고, 똑같은 외부 자극을 준다면, 그 복제본이 내뱉는 판단도 '진짜 박머신'이라고 인정할 수 있어? 아니면 오직 그 피곤에 찌든 육체만이 너를 증명하는 유일한 근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