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수 있는 회로를 가꾸는 일

회로인간 1, 변화편 #20

by 한조각


우리는 지금까지 회로가 무엇인지, 어떻게 그것을 자극하고 설계하여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왔다. 이제 이 여정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우리가 왜 그토록 고단한 변화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그 근원적인 목적지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그것은 결국 ‘나를 사랑할 수 있는 회로’를 가꾸는 일이다.




내 결정의 총합이 곧 나라는 회로다


게임 속 캐릭터의 능력치는 유저가 어떤 퀘스트를 수행하고 어떤 스킬에 포인트를 투자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인간의 회로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가 내리는 모든 결정은 휘발되지 않고 회로에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나’를 이룬다.


반복된 결정은 회로를 더욱 굵고 단단하게 만들고, 사용하지 않은 길은 조금씩 희미해지다 결국 끊어진다. 결국 내가 가질 수 있는 능력의 최대치는 내 라이프사이클 안에 얼마나 많은 활동과 결정을 품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오늘 내가 내린 사소한 결정 하나가 내일의 나라는 회로를 만드는 설계도가 되는 셈이다. 만약 우리가 과거의 회로에만 의존해 산다면, 우리는 결코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 될 수 없다. 그저 익숙한 회로라는 감옥에 갇혀 살 뿐이다.



나는 나의 가장 정밀한 관찰자다


우리는 흔히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를 가장 집요하게 감시하고 평가하는 존재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주관 속에 살아가지만, 동시에 누구보다도 자신을 가까이서 지켜본 ‘최초의 관찰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가 타인을 평가할 때 적용하는 엄격한 ‘기준선’을 자신에게도 동일하게, 혹은 더 가혹하게 적용한다는 점이다. 내가 세운 이상적인 기준과 현실의 초라한 모습 사이의 간극이 커질수록 우리는 고통받는다. 이 간극을 메우지 못할 때 발생하는 것이 ‘자기부정’이다. 자기부정은 내 모습을 실제보다 더 낮게 평가하게 만들어, 변화의 의지조차 꺾어버리는 치명적인 오류를 발생시킨다.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닌, 사랑할 만한 가꾸기


흔히들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이는 무책임한 위로일 수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대상만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보기에 부끄러운 선택만 반복하는 나를 억지로 사랑하라는 것은 뇌의 논리 구조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해답은 명확하다. 내가 나를 보았을 때, ‘사랑할 만한 구석’이 있도록 회로를 가꾸는 것이다. 당장 완벽해지라는 뜻이 아니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하려 애쓰는 모습, 지루한 반복 속에서도 나만의 놀이를 설계하며 나아가는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는 우리의 가장 정밀한 관찰자이기에, 아주 작은 변화조차 결코 놓치지 않는다. 내가 나를 속일 수 없듯, 내가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 또한 그 누구보다 내가 가장 먼저 눈치챌 것이다.



변화는 계속될 당신의 퀘스트다


‘회로인간’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확인한 것은, 변화가 단순히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와 가꿈’의 영역이라는 사실이다.


완성된 회로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죽는 순간까지 새로운 결정을 내리고, 새로운 길을 내며, 자신이라는 회로를 업데이트해 나가는 존재들이다. 오늘 당신이 내린 그 작은 결정이, 당신의 회로를 조금 더 아름답게 가꾸는 소중한 한 걸음이 되길 바란다.


당신이 당신의 회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는 순간, 변화는 더 이상 고통이 아닌 가장 가치 있는 삶의 유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