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도 중간중간 쉼표를 찍어두어야 한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고속도로를 오가는 버스도 휴게소에 잠시 정차하고,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한차례를 쉬어간다. 멈추라는 신호등이 존재하지 않아도, 반드시 쉬어갈 수 있는 장소를 찾아간다. 기계인 자동차도 쉬어가야 할 때를 알고, 쉬지 않으면 멈추게 되어있다. 매년마다 새로운 윤활유를 공급해주고, 정비해주지 않으면 고장이 나기 마련이다.
최근 매주 월요일마다 재택근무가 아닌 본사로 출장을 가야 할 일이 있었다. 보통 2시간 반을 쉬지 않고 달리면 도착하지만, 매번 마주치는 상습정체구간이나, 어쩌다가 중간에 사고 구간을 지나기라도 재수 없을 땐 도로에서 4시간 이상을 보내야 할 때도 있다. 힘들게 올라와서도 밀려있는 미팅을 몰아서 해치우지 않으면 한주에 2차례 이상을 올라갈 수도 있기 때문에 퇴근시간이 늦어지더라고 올라온 김에 웬만해선 밀린 업무를 모조리 해치우고 가는 편이다. 피로와 땀에 절어 집으로 향하는 도로 위에서 얼른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에 졸음을 꾹꾹 참고 가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도로를 이탈하는 일이 발생한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내비네이션에 졸음쉼터와 휴게소를 찾아보지만 적어도 15분 이상을 달려야 하는 상황이 오면 스스로 뺨을 때리고, 생수도 한 모금 마시고, 음악소리를 크게 켜고 노래를 불러보아도 쉽사리 졸음을 떨쳐낼 수가 없을 때가 많다. 힘겹게 휴게소에 정차하고 나선 무리한 강행군이 한순간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뒤늦은 후회를 하기도 한다.
가끔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뽑는 자리에 들어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꼭 물어보는 말 중 하나가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고 있나요? 또는 일 이외에 즐기고 있는 취미생활이 있나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수익을 위한 노동은 결국엔 시간이 지날수록 지칠 수밖에 없고, 그것을 풀 수 있는 자신만의 노하우나 활동이 없다면, 금방 녹아웃이 될 수 밖에 없다.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을 프로 운동선수들과 같은 선 상에 놓고 본다면 잘 쉬고 먹는 것 또한 프로 직장러로서의 중요한 자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리고 프로젝트를 함께 하다 보면 모두가 같은 속도를 내며 달릴 수가 없다. 달리는 속도도, 지치는 속도도, 회복하는 속도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목표점이 같고, 만들어야 할 결과물이 있기 때문에 조금씩 속도를 맞출 필요가 있다. 이런 경우에 경험상 휴식의 노하우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확실히 페이스 조절을 잘한다는 걸 느낄 때가 많다. 하지만 퇴근 이후 또는 주말을 아무리 잘 쉬고 먹어도 풀리지 않는 지침이 있다. 인간은 스트레스에 100% 면역될 수 없고, 인간은 반드시 어느 시점에서는 지치게 되어있다. 이럴 때는 스스로를 어떻게 돌볼 줄 아는 사람들은 확실히 다름이 느껴단다.
인생을 살다 보면 자의든 타의든 힘들 일이나 괴로운 일 들이 반드시 찾아오게 되는 것 같다. 이럴 땐 강행돌파를 할 것인지 아니면 한 템포를 쉬어갈지 선택의 기로에 설 때가 있다. 어느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단정 지어서 말할 수 없지만, 지나온 길이 고단한 여정이었다면 쉬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인 것 같다.
최근 한 달 사이에 잠시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 사회활동, 밴드, 사이드 프로젝트, 지역 활동 등 아직 2021년이 두 달 남짓 남았지만 올 한 해는 시작부터 매주가 꽉짜인 스케줄로 바쁘게 움직인 한 해였다. 쉬었으면 좋겠다고 느꼈을 때 잠시 멈추었던 것이 옳은 선택이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힘들고 지친 나에게 무엇을 해주지?
스스로에게 무엇을 해줄까를 고민하던 끝에 결정은 쉼터에 가만히 머무르기였다.
'잠시 내려놓기'
'아무것도 안 하기'
'마음 가는 대로 그래도 두기'
'가족들과 시간 보내기'
별다를 것 없는 시간들이지만 특별한 의미를 두고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가장 편한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장 큰 힐링이었다. 그리고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따뜻한 곳이 있다는 게 무엇보다 더 가장 큰 위로이고 힘이었다는 걸 느낀다. 복잡한 생각이 들지 않는 가벼운 일들을 자연스레 하는 것이 회복이 된다.
'별말 없이 드라마를 보는 와이프 옆에 나란히 앉아 있기'
'집 앞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듣기'
'출근한 아내와 아이들이 없는 빈집에서 청소하기'
'내 방에서 컴퓨터를 켜고 검은 바탕화면 속 마우스 커서를 빙글빙글 돌리기'
'아침 일찍 일어나 산책 겸 혼자서 마트에서 장보기'
돌이켜 보면 지치고 힘이 들 때 졸음쉼터를 급하게 찾기보다는 삶의 중간중간에 쉼표를 미리 찍어두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고 지칠 때 혹시라도 내가 편히 쉴 곳이 있는지를 스스로 물어보고 찾아보는 것도 쉬는 방법을 찾는 것처럼 중요한 일인 것 같다. 급하게 쉴 곳을 찾기보단 인생의 긴 여정에 미리 쉼표를 찍어두자. 앞으로 내 인생에서도 언제쯤 쉬어갈지 어디에서 쉬어갈지를 찾는 시간을 이번 기회에 가져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