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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gmouth Feb 21. 2021

가끔 홀로 여행은 실패하기도 한다.

맨 처음 여행 나 홀로 떠났던 여행

누구나 살다 보면 혼자만의 근사한 여행을 꿈꾸게 될 때가 있다. 인생의 전환점을 찾는다던가 아니면 삶의 활력소나 새로운 출발을 위해 여행을 계획하곤 한다. 그런 면에서 혼자서 떠나는 여행이 필요했던 순간과 삶의 전환 포인트는 많았지만 결론적으로 단 한 번도 혼자 여행을 성공해본 적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계획은 있었지만 실행에는 실패했다.


그러고 보면 난 어딘가로 떠난다는 게 익숙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

역마살이 있다는 사람들과는 전혀 반대의 삶을 살았다.

어린 시절 친구들은 모두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날 때 나만 홀로 고향을 지키고 있었다.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

심지어 군대에서조차 고향을 벗어나지 못했다.

군부대는 집에서 차를 타고 15분 거리에 위치해 있었고, 주말에는 부모님께서 저녁식사를 군부대 앞 영외식당에서 하실 정도였다. 대학 동기들과 선후배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부대 앞까지 면회를 왔었기 때문에 다른 장소에 와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직장생활을 재택근무를 하기때문에 30년이 넘는 시간을 한 도시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 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한 때는 일탈을 꿈꾸기도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을 뿐이다.

2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가면서 해야 할 일들을 산더미처럼 적어두고,  제대 후 복학하기 전까지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다짐을 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결심했던 각오는 금방 사라지고 말았다.

생각했던 대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그렇게 실현 불가능한 계획은 세우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심이 무너지는 데는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매일 같이 컴퓨터에서 먹고 자고, 방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비좁은 골방에서 엉덩이에 땀이 차올라 의자가 흠뻑 젖을 때까지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게임에  몰두했다.

군대를 전역하고 세상에 나오면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현실을 그러지 못했다.

매일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상이 현실이 아닌 게임 속에서 조차 계속되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잠자리에 누울 때면 밀려오는 허망함과 매읿 바라보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잠들기를 바라는 괴로운 시간이 반복되었다.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새벽마다 잠든 부모님 몰라 꺼내온 안주거리와 술로 배를 채우고

부대끼는 몸으로 술기운에 잠들던 시간이 반복되었다.


변화가 필요했다.

남들은 군대 갔다 오면 정신 차린 다고들 하는데 나한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애초에 정신 차린 사람들은 군대가 아니었어도, 강제적인 환경에 의지해 와지 우지 될 사람들이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 같은 사람이나 강제적인 환경변화를 통해 의지를 불태우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나에게도 강제적으로 혼자만의 여행이 필요한 시점이 다가왔다.

전환의 포인트가 필요했다. 반복되는 재미없는 일상을 벗어나게 해 줄 계기가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선 단순히 내가 살고 있는 곳을 벗어나고생을 해야지 갈망하는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여행의 준비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복학해서 무난하게 취직을 바라는 부모님과

집을 떠나 새로운 걸 도전해보겠다는 아들의 싸움은

1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의견이 좁혀지지 않았다.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했던가

반대에도 불구하고 난 새벽 첫차에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그래도 걱정이 되셨는지 어머니는 흰 봉투에 30만 원을 넣어서 손에 쥐어 주셨다.

올라가서 전화도 자주 하고, 밥 굶지 말라던 어머니를 뒤로하고

내 인생 꿈을 위한 첫 여행이 시작되었다.

 

매일 보던 차창밖에 풍경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이쯤이면 보일 것 같은 건물들도 한참이 지나서야 눈에 보인다.

2시간 반의 시간이 너무나도 느리게 흘러갔다.


터미널에서 내렸지만 한동안 신세를 지기로 했던 친구는 보이지 않았다.

덜렁 집 주소만 문자로 남겨놓고, 집 근처 PC방에서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친구는 모습을 드러냈다. 첫차를 타고 온게 무색해지게 8시간을 PC방에서 보냈다.


어릴 때부터 한 동네에서 지냈던 절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로 올라와서

혼자서 안 해 본일 없이 꿋꿋이 버티며 살아가던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던 친구였다.


별다른 이야기 없이 내일의 파이팅만 외치며 가볍게 삼겹살에 소주 한잔을 걸치고

짐가방을 들어주며 아는 형과 동거하고 있다는 친구 집에 들어갔다.

정장과 구두가 즐비한 옷방 한구석에 짐을 풀고,

길었던 하루를 마무리할 때까지 나는 그곳이 어떤 곳인지 몰랐다.


내 여행의 목적은 꿈이었다.

꿈에 대한 마지막 도전이었다.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한 푼도 없이 서울로 상경한

지방 청년이 음악으로 성공하는 모습을 만들고 싶었다.

친구 집에 임시거처를 마련하고,

낮에는 물류창고, 밤에는 음악활동을 하면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게 나름의 목표였다.

잠자리에 누워 앞으로의 계획을 되새겨보았다.

그 날은 다른 날보다도 더욱 잠이 오질 않았다.


새벽녘이 다가올 즈음에야

버스에 오르기 전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

앞으로의 펼쳐질 서울에서의 삶

이제부터 지내게 될 낯선 장소에서의 하룻밤

집에서 한심하게 보냈던 시간들을 생각하며,

앞으로 다시는 그런 생활로는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고 안도하며 잠이 들었다.


길었던 하루가 지나고 아침이 왔을 때

내가 세웠던 나름의 목표는 단 하루 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 물류창고로 향해야 할 친구의 발걸음은 서초동의 한 사무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간 사무실에는 의자는 없이 책상만 가득 차 있었고,

TV에서나 나올법한 진한 화장을 한 여자들과 정장에 넥타이까지 차려입은 남녀들이 테이블마다 옹기종기 모여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친구는 누가 봐도 미인이라고 생각할만한 여자를 동료라고 소개해줬다.

그리고선 그 동료는 나를 빈 강당으로 안내했다.

잠시 후 많은 사람들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그때까지도 무슨 일인지 몰랐다. 신입사원 교육이라고만 들었지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과 같이 교육을 받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물류창고가 아닌 이 곳으로 온 순간부터 불길한 예감을 눈치챘어야 했다.

역시나 불길한 예감을 틀리지 않았다.


"네트워크 마케팅"


듣나자마 깨달았다. 이곳은 다단계였구나...

순진하게도 나는 친구가 다단계에 빠졌으니 빨리 데리고 탈출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친구를 데리고 나오는 게 서울에서 의지할 수 있었던 유일한 친구를 잃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교육이 끝나기도 전에 교육장을 나와서 무작정 친구를 데리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야 이거 다단계야, 너 이거 계속하면 그동안 모은 돈 다 날려."

난 친구가 다단계 빠지기 전에 데려올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다단계인 줄 알고 있어. 근데 이게 왜 나쁜 건데, 이거 해서 돈만 잘 벌면 되는데 왜 그래? 돈 버는 게 나쁜 거냐?. 이게 왜 나쁜 건지 내가 납득할 수 있게 설명을 해봐."

듣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배신감만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이미 친구는 나를 물건 팔아먹을 대상으로밖에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골방에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 게임만 했던 모습과

부모님 가슴에 대못 박고 눈물을 훔치면서 버스에 올랐던 기억

작업복보다 정장이 더 많이 걸려있었던 옷방

처음부터 물류창고가 아닌 이곳으로 나를 데려온 이유


아무 말도 듣지 않고 그 길로 그곳을 벗어났다.

서초동 빌딩이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걷고 나서

이름 모를 카페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나름의 계획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어디서 지내야 할지 틀어진 계획을 어떻게 바로 잡아야 할지 생각이 나질 안았다.

집 나간 지 하루 만에 돌아갈 염치도 없었다.

상경해서 골방에서 굳은 일하면서 성공한 드라마 같은 일은 나에겐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창밖에 낯익은 건물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무겁진 않았다.

조용히 식탁에 어머니가 주신 흰 봉투를 올려놓았다.

부모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 난리를 치고 큰소리치고 나가더니 하루 만에 돌아오냐고 질책할 법도 했을 텐데

아무 말도 없으셨다.

이상하게 그날은 아무 생각 없이 잠이 들었다.


긴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었다.

내 여행은 그렇게 끝이 났었다.

그때는 실패였던 여행이었지만

생각해보면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던 여행이었던 것 같다.

계획했던 대로 흘러가진 않았지만 불안했던 시절의 성장통이었던 같다.

그때 왜 아무 말 안 하셨는지 부모님께 묻진 않았지만

부모님도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시질 않는다.

그때 돌아왔을 때 호되게 혼을 내시지 않은 이유가 이미 내 모습이 답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고 싶을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같으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은 것을 깨닫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오는 것 같다.

나에겐 꿈을 찾아서 내디뎠던 그 짧은 하루의 여행이 계기였던 것 같다.

지금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이제는 그런 혼자만의 여행을 떠날 일이 없을 것 같다.


만약에 혼자서 여행을 떠날 일이 생긴다면 그때처럼 하루 만에 끝나는 여행이 되진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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