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에 따라 듣는 노래
요즘에는 도통 아침 일찍 일어나질 못한다.
11시가 넘어서야 겨우 몸을 가누며 퉁퉁 부운 눈으로 몸을 일으킨다.
코로나로 인해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은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뒷목이 젖을 정도로 온 집안을 난장판을 만들며 놀곤 한다.
그 날은 이른 아침부터
우리 집 작은 사람들이 시골집 강아지들 마냥 외출 갔다 돌아온 주인을 맞듯이 쪼르르 달려와서
침대에 누워있는 나를 깨운다.
"아빠, 온 세상이 하얗게 됐어"
어젯밤부터 내렸던 눈이 밤새 지면을 가득 채웠다. 새하얗게 많이도 왔다.
일기예보를 보니 오늘은 눈이 온다고 했다.
하루 종일 기다렸는데 눈은 내리지 않았다.
저녁밥을 먹으면서도
"지니야, 내일 날씨 알려줘"
혹시라도 눈이 내리지 않을까 봐
몇 번을 되묻고 나서야 알았다는 듯이 밥 한 숟가락을 뜰 정도였다.
그리고 잠들기 전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를 정리하고 주섬주섬 외출복을 준비한다.
베란다를 열자마자 느껴지는 한기!
생각보다 날이 차다.
새벽 6시부터 일어나 베란다에서 눈 구경을 했다는 아이들은 평소에는 답답하다고 던져버리던 목도리와 털모자도 군말 없이 썼다.
아이들이 훌쩍 커버릴 동안 이만큼 눈이 내리질 않아서 어릴 때 사놓은 장갑은 들어가지도 않는다.
급하게 동네 문방구로 달려가 2만 원짜리 스키 장갑을 구매해 손에 껴주었다.
완전무장 완료!
모래놀이 세트와 3년 전부터 방치되었던 눈썰매까지 들쳐 메고 운동장으로 나간다.
신발장에서부터 부츠를 신고 발을 동동 굴러보던 아이들은 운동장에 도착하자마자 눈 세상을 향해 달려 나간다.
요즘 유행하는 눈 오리는 없지만
차곡차곡 고사리 손으로 쌓아 올린 눈사람과
허리가 부서질 듯 끌고 다닌 눈썰매
그리고 양볼이 벌겋게 변해도 함박웃음을 짓고 뛰어노는 아이들 덕분에 오랜만에 만진 눈이 나쁘지 않았다.
한참을 논 것 같은데 한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 날이 추워서인지 아이들은 한 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집으로 들어가자고 재촉한다.
그래도 신나게 놀아서 그런지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어린 시절 한 겨울에 눈이 발목 넘게 쌓이면
형이랑 집 앞 공터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눈 장난을 치고 집에 들어서면
현관문부터 유자 냄새가 가득했다.
겨울이면 항상 엄마는 집안일도 힘든데 무거운 유자를 시장에서 한 소쿠리 사 오셔서 유자를 절여 놓으셨다.
집에서 아무도 먹지 않던 유자차를 힘들게 손수 담으셨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날은 하루 종일 집 안에서 유자 냄새가 떠나질 않았다.
하지만 나는 유자차가 싫었다.
엄마가 힘든 것도 싫었지만
뜨거운데 달짝지근하고, 끈적이는 액체가 입 안에 들어오는 감촉이 싫었다.
나는 겨울에는 유자차보다는 코코아를 좋아했다.
그리고 성인이 되고선 한 겨울에도 ‘얼죽아'만 찾게 되었다.
결혼을 하고 고향에 내려가면
그때도 언제 담았을지 모르는 유자청을 매번 냉장고 깊은 곳에서 꺼내 주셨다.
그 유자청은 1년이 지나도록 잊혔다가 다음 해 겨울이 되어 같은 자리에 쌓일 때까지 남아있었다.
그리곤 냉장고 청소할 때 버려지곤 했다.
그때도 나는 철이 없었다.
올 겨울 우리 부부는 고흥에서 유자를 한 박스 주문했다.
이제는 카페 데이트가 가능할 정도로 아이들은 컸다. 주문할 때면 아이들의 음료도 주문해야만 한다.
겨울이면 커피를 마실 수 없는 아이들은 유자차를 마신다.
달콤하고 향긋한 유자차를 첫째도 둘째도 찻잔 속 유자까지 숟가락으로 긁어먹을 정도로 잘 마신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가 오고
이제는 주말에 드라이브 삼아 가던 시외의 카페들도 갈 수가 없어졌다.
그래서 우리는 유자를 주문했다.
유자청 만드는 게 쉽지는 않다.
베이킹소다에 유자를 하나하나 깨끗이 씻어낸다.
그리고 유자 하나에도 많게는 10개까지 있는 씨앗을 일일이 포크로 발라내고,
껍질은 채 썰고, 씨앗이 빠진 과육은 따로 분리해놓는다.
유자청을 넣을 유리병은 열탕 소독을 하고,
물기가 마르면 설탕에 켜켜이 묻어놓는다.
그리고 한 달의 숙성기간을 기다리면 완성이다.
한바탕 눈 속을 강아지 마냥 뛰어놀고, 집에 도착하자 아파트 현관문부터 달콤하고 향긋한 유자향이 한가득이다.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커피포트에 물을 올린 아내와 외투를 훌훌이 벗어던진 아이들과 옹기종기 둘러앉아 엄마가 마시던 유자차를 함께 마신다.
그리고 노래를 켠다.
"브로콜리 너마저 - 유자차"
https://www.youtube.com/watch?v=Un6MKGLsdho
어릴 땐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씩 이해가 될 때가 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던 유년 시절에는 나도 유자차를 잘 마셨던 것 같다.
그리고 점점 크면서 멀리하게 된 건 아닐까?
엄마가 해주던 유자차를 맛있게 먹는 ‘어린 시절의 나’를 엄마는 기억하고 해마다 유자를 묻어두지 않았을까?
어릴 적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부모님의 사랑을
지금 나의 아이들을 통해서 이해하게 된다.
이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건가 보다.
누구나 추운 겨울 따뜻한 차 한잔과 떠오르는 음악이 있겠지?
올 겨울 함박눈이 내렸던 날 유자차를 우려 마시던 그때를 기억하며 글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