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나보고 냄새나는 동네에 산다고요?

모 방송국에 비공개 오디션이 있어서 다녀왔다. 담당 PD와 몇 명의 관계자가 있는 앞에서 원고 리딩을 했다. 원고 리딩이 끝난 후, 담당 PD는 내게 간단한 피드백을 던지더니 대뜸 호구조사를 시작했다.


"어디 살아요?"

"서울 ㅇㅇ쪽 삽니다"


담당 PD는 이때부터 실금실금 웃더니 본인도 젊었을 때 이 동네에 살았다고 한다. 분위기가 딱딱할 수 있으니 모종의 라포를 형성하는 것인가 순간 생각하던 때, PD가 바로 입을 뗀다.


"우리 때는 ㅇㅇ산다고 하면 애들이 냄새나는 동네에서 왔다고 그랬어 껄껄"


냄새나는 동네?


본인이 과거 이 동네 주민이었건, 현재 이 지역 주민을 앞에 두고 냄새나는 동네라는 표현이 가당키나 한 것일까?


이때 함께 있던 여자 관계자가 재빨리 말을 낚아채더니

"ㅇㅇ에 ㅇㅇ지역 아파트가 얼마나 비싼데요" 라면서 긴급 실드를 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나는 이 동네에서 집값이 비싸다는 그 지역 아파트가 아닌 동네 언저리 원룸에 산다.


나와 1도 관련 없는 관계자가 상사급인 PD에게 반박하는 것을 보면 내가 느낀 게 비단 자격지심은 아닌가 보다. 사회생활이란 더럽기 짝이 없어서 냄새나는 동네 주민 취급을 받고도 고생하셨다며 PD에게 인사를 하고 방송국 문을 나왔다.


집이 망하고 유목민처럼 이사를 다니면서 서울과 수도권에서 참 다양한 동네에 살아보았다. 나 같은 경우는 미국과 네덜란드에서도 살아봤으니 역마살을 사람으로 만든 게 나다 싶을 정도로 참 다양한 곳에 살아봤다만, 내가 사는 곳을 냄새나는 동네 취급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내가 경제적으로 윤택했으면 이런 개소리에도 여파가 없었겠다 싶다가도, 역지사지로 내가 돈이 많다고 쳐도 남의 거주지를 냄새나는 동네라고는 절대 말하지 않을 것 같다.


한 지역의 아이들이 동네 빌라 벽에 못 사는 거지 동네라는 낙서를 남겨서 논란이 되어 뉴스에 나온 적이 있었다. 나는 빌라 벽 대신 면전에서 거지 취급을 받은 기분이었다. 없이 사는 것은 이토록 서러운 것이다. 남들이 아무렇지 않게 던진 말에 상처받으면서도 내 자격지심인가 본인을 들여다보다 결국 내 처지를 비관해 버린달까. 느닷없는 개저씨의 공격에 오늘 하루를 제대로 망쳤다.


작가의 이전글 브런치스토리 팝업-내 글이 내게 위로를 건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