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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셔의 손 Oct 31. 2021

"야, 너 제모 좀 해야겠다."

여성의 털과 관련된 세 가지 이야기

“야, 너 제모 좀 해야겠다.”

중학교 시절, 같은 반 남자아이에게 들은 말이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내 다리를 아주 한심하고 우습다는 듯이 쳐다보던 그 아이의 표정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14살의 나는 많이 부끄럽고, 속상했고, 무엇보다 그 말에 아무 반박도 할 수가 없었다. 그 날, 나는 처음으로 면도칼을 쓰기 시작했고 그 후에도 살색 스타킹을 신고 학교에 가는 날에는 나의 다리털이 자라지 않았는지 꼭 확인했다.


대학생이 된 후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간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민소매를 즐겨입던 크리스라는 백인 여자와 친구가 되었다. 크리스의 겨드랑이에는 항상 엄청난 양의 체모가 자라 있었다. 하지만 굳이 그녀에게 “왜 겨드랑이 털을 기르느냐,”라고 묻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겨드랑이에 난 털들은 너무 자연스러워 보여서 “그냥 털을 기르고 싶나 보다,”라고 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케이트 워런이라는 사진가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다리털을 기르고 그 모습을 촬영하여 인스타그램에 공유하였다. 워런은 “이 작업을 하면서 조금은 불편하고, 어색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이 작업을 한 이유입니다,”라고 설명하였다. 그녀는 여성의 체모가 자신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스스로의 꾸밈없는 몸과 마주하고자 하였다. 석양의 빛을 받은 그녀의 다리와 체모는 정말 자연스러워 보였고, 그렇기에 아름답다고도 느껴졌다.


출처: 케이트 워런의 인스타그램 @gokateshoot

     

케이트 워런이 그랬듯, 나도 여전히 나의 털을 볼 때 불편한 마음을 갖게 된다. “흉측해.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겠지.” 자꾸만 이런 생각들이 들어, 나는 다시 열 네 살의 나로 돌아가 면도칼을 꺼내 든다. 동시에 나는 크리스와 케이트 워런의 털을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혐오스러워하는 여성의 털이지만, 그녀들의 체모는 그저 자연스럽고, 때로는 아름다워 보였다. 나는 곧 나의 몸을, 나의 털마저도 아름답게 바라보게 될 수 있을까? 털 좀 안 깎으면 어떤가, 그저 내 몸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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