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털과 관련된 세 가지 이야기
“야, 너 제모 좀 해야겠다.”
중학교 시절, 같은 반 남자아이에게 들은 말이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내 다리를 아주 한심하고 우습다는 듯이 쳐다보던 그 아이의 표정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14살의 나는 많이 부끄럽고, 속상했고, 무엇보다 그 말에 아무 반박도 할 수가 없었다. 그 날, 나는 처음으로 면도칼을 쓰기 시작했고 그 후에도 살색 스타킹을 신고 학교에 가는 날에는 나의 다리털이 자라지 않았는지 꼭 확인했다.
대학생이 된 후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간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민소매를 즐겨입던 크리스라는 백인 여자와 친구가 되었다. 크리스의 겨드랑이에는 항상 엄청난 양의 체모가 자라 있었다. 하지만 굳이 그녀에게 “왜 겨드랑이 털을 기르느냐,”라고 묻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겨드랑이에 난 털들은 너무 자연스러워 보여서 “그냥 털을 기르고 싶나 보다,”라고 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케이트 워런이라는 사진가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다리털을 기르고 그 모습을 촬영하여 인스타그램에 공유하였다. 워런은 “이 작업을 하면서 조금은 불편하고, 어색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이 작업을 한 이유입니다,”라고 설명하였다. 그녀는 여성의 체모가 자신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스스로의 꾸밈없는 몸과 마주하고자 하였다. 석양의 빛을 받은 그녀의 다리와 체모는 정말 자연스러워 보였고, 그렇기에 아름답다고도 느껴졌다.
케이트 워런이 그랬듯, 나도 여전히 나의 털을 볼 때 불편한 마음을 갖게 된다. “흉측해.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겠지.” 자꾸만 이런 생각들이 들어, 나는 다시 열 네 살의 나로 돌아가 면도칼을 꺼내 든다. 동시에 나는 크리스와 케이트 워런의 털을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혐오스러워하는 여성의 털이지만, 그녀들의 체모는 그저 자연스럽고, 때로는 아름다워 보였다. 나는 곧 나의 몸을, 나의 털마저도 아름답게 바라보게 될 수 있을까? 털 좀 안 깎으면 어떤가, 그저 내 몸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