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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주영 Mar 14. 2021

구마모토의 잠 못 이루는 밤

사실은 여행지와 별로 관련 없는 이야기

구마모토

월요일까지 휴가로 잡아놓은 주말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을 상상하니 따분하고 억울해서, 아쉬워서 무작정 구마모토의 호텔을 잡았다. 저렴하게.

낯선 타지에 몸을 맡기면 무엇이라도 해야 하고, 무엇이라도 봐야 하고, 그러면 어느 정도 마음에 무언가 차오르지 않을까 싶었다. 요즘 내 마음은 텅 비었으니까. 하고 싶은 것이 없고 되고 싶은 것이 없으며 이루고 싶은 것이 없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 없다. 시시한 자극을 찾아 계속 무언가를 스크롤하고 있지만 무어라고 기대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게 모처럼의 3일간 계속되면 삶은 더 서글플 것 같았다.

하지만 도착한 호텔은 그저 그랬다. 술 담배나 실컷 하려고 흡연실로 잡아놨는데 역시 담배가 당기지 않는다. 노천온천도 몸을 담그고 20분이 지나니 질렸다. 맥주 한 캔 마시고 테레비를 보고 있으니, 그러니, 무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시내로 나갔지만 시간대가 애매하고 어설퍼서 어떤 가게도 열고 있지 않다.

여기도 고요하다.  방의 새벽 4시도  원룸과 다를 바가 없다. 여기서도 스크롤을 한다. 무슨 처량한 독립영화란 말이, 이건 블랙코미디조차 되지 못한다.  본다, 인터넷. 인터넷을 보면, 그리고  기억 속의 사람들을 보면, 사람들이 화려하고 원대하고, 무엇보다 즐겁다. 그게 신기하다. 다들 편해 보인다. 능숙해 보이고, 삶을 지폐처럼 잘만 쓴다.

원래는 이런 시간에 글을 자주 썼다. 내 허무와 무기력의 근본을 한 글자 한 글자로 추적하면, 그러면 원인을 진단하고, 진단한 원인을 제거해내서, 나도 보통의 뛰어나고 원만한 삶을 쫓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아니면 최소한 글만으로라도 남은 고민과 사고의 흔적이 나를 어느 정도라도 성장시켜 변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난 왜 이렇게 텅 비었지, 뭐가 문제지. 어디서 뭘 하면 좋지. 하지만 코로나로 내 방에 오래 갇힌 시간 동안 깨달음답지 않은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삶을 한 움큼 수확하고 한입에 베어 물듯 즐기지 못하는 건 내가 특별하게 다른 사람이 아니라, 초등학교 중학교 때 따돌림을 당하고 사람을 무서워하고 어려워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잘못된 것일 뿐이라는 걸. 난 그냥 뒤틀린 기둥에서 뻗어나간 가지 같은 것들의 집합이고, 대단하지 않다는 것을 퍼뜩 이해하고 인정했다.

난 사람을 무서워한다. 표정을 읽고 눈치를 보고 가장 어렵고 가장 나쁜 경우를 생각한다. 그것에 끄떡없으려고 친절하고, 정당하려고 노력한다. 당당해지고 싶어서 선해지려고 하고 능력을 갖추고자 한다. 내 모든 것은 나를 어떻게든 초라하지 않게 하려는 겁 많은 발버둥의 결산이다.

그러면 뭘 해야 할까. 그다음에 적어야 할 문장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내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 같은 질문은 시답잖은 자기 연민이다. 삶이 망가졌다고 생각하고 아무것도 하려 들지 않는 것은 나약한 선택이고 그냥 포기다.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 하지만 뭘 해야 할까, 뭘 하고 싶을까.

고요하다. 속 시끄러운 고민이 있었고, 대단할 것 없는 유년시절의 트라우마를 깨닫는 순간 굉음이 울렸고, 안의 모든 것은 그 폭발로 사라졌고. 이 마음 안에 무엇도 적재된 것이 없어 자꾸 메아리가 울린다.

이다음은 무엇을 해야 하지.

스크롤을 했다.

스크롤을 하고, 하다가,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어서 구마모토로 오고, 그러고.

1초는 아주 가볍다. 시간의 작은 단위지만 동시에 예전의 시간이 흩뿌리는 무언가 같다는 생각도 든다. 3년 전에도 하던 후회의 1초가 불꽃의 티끌처럼 훨훨 날아 지금 이 시간 여기에 반짝하고,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의 몇 개월이 아궁이가 입을 벌리듯 왈칵 열려서 이 머리 위로 몇 초씩으로 쏟아진다. 난 그저 시간을 가만히 맞고 있다. 이건 눈보다 빨리 증발한다. 감촉이 따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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