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트우먼 Jan 17. 2022

평범한 엄마의 특별한 날들

1. 초보 엄마, H를 만나다.





처음 만나는 아이.


아이를 처음 만났다. 맘 카페 후기에서 미리 경험한 출산의 과정은 예상보다 참을만했고, 아이와 처음 만나는 순간이 다가왔다. 내 몸에 열 달 동안 자리 잡고 있었고 요즘 기술이 좋아져 3D 사진으로 얼굴을 미리 보았지만, 실물로 만나는 순간은 처음이다.

'낯설다'라는 게 처음 딱 떠오르는 느낌이었다. 온통 쭈글쭈글하고 탱탱 불어서 나온 모습은 TV 드라마나 다큐에서 본 다른 신생아들과 비슷했고, 나를 닮은 구석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내 아이?'

이런 마음은 좀 미안했지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너무나 어색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출산을 했고, 출산보다 더 힘들었던- 만신창이가 된 몸을 추스르는 일에 더 고통스러웠지만, 짬짬이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점점 사람의 얼굴로 돌아오는 모습을 찾아보는 기쁨에 푹 빠져버렸다. 아이와 둘이 있는 시간은 우주 속에 둘만 있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시간이 멈춘 것 같기도 하고 꿈을 꾸는 것 같기도 했다. 한 번의 유산 후 찾아온 아이라서 그런지 '육아'라는 새로운 세계는 다른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쁨들이 충만했다.



H의 첫 특별함



신생아 시기와 어느덧 찾아온 돌, 그렇게 하루하루 순조롭게, 또는 뜨겁고 맵게, 아이와 보낸 지 24개월이 지났다. 예정대로 어린이집에 입소를 하였고, 입소 오리엔테이션 날이 되었다. 환경에 적응하는 차원에서 아이와 함께 2-3시간 머물렀다 돌아가는 날이라 아이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주변을 탐색하고 뛰어놀았다. H는 너무 편안하게 자기 집처럼 놀고 오래 봐온 친구들인 양 어울리며 거실 한쪽에 있는 작은 놀이터에 푹 빠져있었다. 어떤 아이는 낯선지 엄마 옆에서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 하였고, 어떤 아이는 집에 가자고 조르는 아이들도 있었다. 선생님들은 그런 아이들 옆에 와서 놀잇감을 주며 어떻게든 편한 장소라는 것을 인식시켜 주려는 듯했다.

'H는 왜 낯설지 하지 않는 거지? '


사실 그동안 아이를 키우면서 '왜?'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많았다. 낯을 많이 가리는 나와 남편도 썩 수더분한 스타일도 아니었는데, 아무 장소에서 노래 부르며 춤을 추고, 표정은 항상 웃고 있으며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H의 모습을 볼 때면 가끔 '누굴 닮은 거지?' 하는 순간들이 꽤 있었다. 다른 가족들로부터 자주 듣는 말 중에 하나도 "H는 항상 웃고 있어 ;) " 였다.

항상 스마일 하는 아이. 덕분에 나도 웃게 되니 뭐- 좋았다. 내 속에서 이렇게 늘 긍정적인 아이가 태어났다니. 그래서 다른 아이들도 거의 다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기관에 보내고 다른 아이들을 만나게 되니 다 그런 건 아니었다. 찡찡 그 자체인 아이들도 있었다. 모두의 시선들이 그 아이에게 향하면 아이 엄마는 저절로 인상을 찌푸리게 되었다.


그렇게 H가 즐겁게 노는데 갑자기 나에게 와서는

"엄마! 똑같아요. 똑같아요!" 라며 거실 바닥에 있는 도형 블록과 미니 놀이터 꼭대기의 세모 모양의 지붕을 가리키며 이야기했다. 옆에서 보던 선생님은 약간은 놀란 표정으로 "어머 이런 것도 알아?"라고 하셨다.

'응? 이게 대단한 건가!'라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살짝 기분은 좋았다. 처음으로 아이가 다른 아이와 조금 다름을 느꼈던 날이었다.



자동차 마니아




H는 주로 자동차를 갖고 놀았다. 자동차를 좋아해 집에 미니카와 장난감 자동차가 많이 있었다. 매일 자동차를 일렬로 줄을 세워놓고 놀았다. 도로 위에서 신호에 맞춰 바삐 지나가는 자동차의 모습을 그대로 축소해서 이리저리 따라 하며 자동차라는 세계에 빠진 아이가 되었다.

 우리 가족은 그 당시 아버님이 물려주셨던 오래된 자동차를 잠깐 타고 다녔었다. 평범한 중형 검은 세단인데 같은 기종의 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면

"아빠 차!! 아빠 차!"라고 말해줬다. 나는 그러면 차 뒤에 이름을 확인한 뒤 맞다고 해주었다.

'너무나 평범한 자동차 모양인데 어떻게 우리 차와 같은 기종인지 알고 있는 거지? 신기하네!' 정도로 생각하고 그냥 넘겼다.


사실, 나는 시각에 좀 둔한 편이다. 사람을 보더라도 한참을 봐야 얼굴을 알아봐서 오해도 받는 경우도 있었고, 아무리 뜻을 잘 이해하여도 그 글자가 그 글자라 한자 급수 시험에서 매번 떨어져 한자를 싫어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이 되었다. H가 시각적인 부분에서 나를 닮지 않는 건 분명했다. 약간 인정하기 껄끄러웠지만 '아빠를 닮았나 보네' 하거나, 그냥 H가 아빠 차 정도는 잘 기억을 했겠거니 하였다.


그러다 H는 자동차 엠블럼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현대면 H, 대우, 삼성, 기아 자동차 회사의 엠블럼을 볼 때마다 주변 사람에게 물어본 뒤 다음에 그 엠블럼을 보면 바로 맞추었다. 그러다 외제차 엠블럼도 하나씩 알게 되었고 확실히 외제차의 쉐입이 예쁘고 특이한지 더 관심을 가지며 외우기 시작했다. 정확한 건 그때 당시 엄마인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뭐야 자동차 영재 아니야? ㅎㅎ"


그 당시 핫한 TV 프로그램으로 '영재 발굴단'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각 분야의 영재들이 나와 그들의 생활을 보여주고 전문가가 조언을 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너무나 신기한 아이들이 많았다. 가야금 같은 악기의 천재, 집에서만 보고 들은 영어로 원어민처럼 말하는 영어 천재, 체육 천재 등 다른 세계 속에 있을 것 같은 아이들을 보며 그들의 가정환경과 부모님 직업이 남달라 그러겠거니 생각했다. 솔직히 '금수저이겠지' 하며 나와 분리시켰지만 부러운 면도 있었다.

 그중 기억나는 아이가 있었다. 자동차의 앞, 뒤, 옆, 창문 모양 등의 모습을 세세하게 알고 있는, 자동차를 사랑하는 아이였다. 자동차의 극히 일부의 모습을 보고 어떤 기종인지 맞추는 모습은 영재를 넘어 세상에 이런 일이였다.! 곧 아이는 경찰서의 자동차 수사에 필요한 카메라 분석에도 참여를 하여 사건, 사고의 가해 차량을 맞추는 일에도 참여를 하게 되었다. 자신의 영재성으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장면을 보며 어린아이의 특별함이 개인에게 국한되지 않고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조금 특별한 시선을 갖게 하였다. 훗날 꼭 필요한 인재가 될 것 같았다. H를 보니 이 아이가 생각이 났지만 헛웃음을 하고 다시 아이와 놀아주었다.


H가 여느 남자아이들보다는 조금 더 자동차를 좋아한다고 느꼈지만 특별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너무나 평범한 엄마이고 부모이니까! (또는 그러고 싶은)


 자동차 사랑은 자동차를 넘어 탈것들(버스, 택시, 기차 등), 도로, 지도로 확장되었다. 직접 타보는 것도 좋아하고 유아용 전동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도 좋아했다. 그리고 같이 자동차를 타고 어디를 가야 할 때면 뒷좌석 카시트에 앉아서 고개를 중앙으로 내밀어 꼭 내비게이션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택시를 탈 때에도 내비게이션이 켜져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자동차가 가는 방향으로 지도가 움직이고, 지도의 모습대로 창 밖의 장면들이 펼쳐지는 것이 신기한 듯 보였다. 그리고 거리 위의 교통 표지판에도 매우 관심이 많아서 이건 어떤 표시인지 표지판을 볼 때마다 물어보아서 설명해주는 것이 일이 되었다. 운전면허 공부 책을 사줘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 번도 귀찮거나 힘들지 않았다. 그저 아이의 시선과 호기심들이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그저 평범한 아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면서 원장 선생님의 제안을 받고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