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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트우먼 Mar 22. 2022

기막힌 유전자

나를 닮은 아이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편이지만 우연히 본 드라마가 재미있어 챙겨보고 있다. 풋풋한 첫사랑에 대한 내용이지만 곳곳에 어린아이들도 공감할 만한 재미적인 요소가 있어서 아이들도 가끔 보곤 한다. 재미있는 장면이 지나가고 심각한 장면이 나오면 방에 들어가는 첫째와 달린 둘째는 같이 심각해진 표정으로 TV를 응시하고 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웃기고 어이가 없는지 사진으로 찍지 못해서 안타까울 뿐이었다.

 어느 날은 TV 코 앞에서 한참 동안 드라마를 집중해서 보고 있어서, 풋풋한 남녀 주인공의 마음을 이해는 하는 건지, 뭘 알고는 보는 건지 물어보면 그저 재미있다고 한다. 6세에게 벌써 풋풋한 소녀 감성이 생기는 걸까?


 그도 그럴 것이 얼마 전엔 '어쩌다 사장'이라는 관찰 예능을 보는데 키 큰 남자 배우들이 대형 슈퍼를 며칠 동안 운영하면서 겪는 에피소드들이 나왔다. 둘째 아이와 같이 보는데 갑자기

 "엄마, 저 빨간 앞치마 한 오빠 멋져" 이러는 것이 아닌가!!

 순간 웃음과 함께 한동안 놀란 얼굴로 딸아이를 쳐다보았다. 6살이 되었지만 마냥 귀여운 막내이고 아직도 찡찡거리는 아기인 것 같았는데 처음으로 TV를 보면서 누군가가 멋있다고 먼저 말해주는 그 순간은 아직도 어벙 벙한 느낌이 든다. 그것도 내 귀에 속삭이면서!

 그때부터 나는 우빈이 오빠라고 사진을 검색해서 보여줬고 광고 속이나 마트의 냉동식품 겉표지에도 있는 그 오빠의 얼굴을 볼 때마다 둘째 아이는 반가운 표정으로 "우빈이 오빠다!"라고 했다.


 '여자 아이라면 흔한 광경일 텐데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하고 생각이 들겠지만, 둘째 아이의 기질을 알면 이해가 가게 된다. 아이는 많이 예민한 아이인데 특히 감정과 사람들의 시선에 관해 많이 예민하다. 오은영 박사님은 이런 아이들을 '유리알 같다'라고 말씀하시는데 감정이 어느 수준에 탁 건드려지면 거기서 딱 멈춰버리고 터지는 상태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인 나는 어느 순간 어떤 상태가 될지 쉽게 예측하지 못한다. 어느 날은 기분이 좋아 보였는데 그 비슷한 어느 날은 칭얼거리고 우는 날이 된다. 그 기준을 아는데만 몇 년이 걸린 것 같다.

 특별히 우리 아이는 지나가는 친한 친구에게도 인사하기가 쑥스럽고 자주 보던 어른들이 아는 척을 해도 순간 얼음이 되어서 아무 말도 못 하는 아이가 된다. 왜 그랬냐고 집에 와서 물어보면 "부끄러워서 그래"라고 대답하는 아이다. 낯선 환경에 가면 적응하는데 시간이 꽤 걸리고 처음 다니는 어린이집은 물론, 다녔던 어린이집도 새 학년이 되면 나름의 적응기간이 필요한 아이이다.

 

 '왜 그럴까?' 난 왜를 생각해 본다.

활발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예민하지 않았던 나와 남편은 더더욱 그런 쪽이 아녔기에 도대체 왜 이런 기질이 나온 걸까? 생각해보았다. 그래서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둘째를 임신하고 있을 때 첫째 아이와 남편을 챙기느라 태교를 편히 하지 못했기에 예민한 아이가 나왔다는 것이 결론이다. 그렇다면 둘째들은 다 예민한가? 그럼 셋째들은?이라고 스스로 물어보면 또 그건 아니다.


 그렇게 정확한 Why를 찾지 못하고 그저 나와 잘 맞지 않은 아이라고 생각하며 부딪히는 순간들이 많이 있었다. 이런 사람(인간)은 처음 만나는 것 같았다. 왜 그냥 말하면 될 것을 말하지 못할까? 그냥 도와달라고 하면 될 것을 울음으로 표현할까? 왜 친구들에게 같이 놀자고 말하지 못할까? 왜 엄마 품을 벗어나지 못할까? 수없이 많이 이야기해도 왜 매번 똑같을까. 그렇게 받는 나의 스트레스도 최고치가 되었다.  

 

 그래서 원인을 찾으려고 많은 육아서들을 읽고 오은영 박사님의 프로그램을 보고 또 보았다. 이 프로그램에 나가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도 되었다. 그러다 해답의 통로는 하나로 합쳐진다는 것을 알았다.

 "부모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세요"

프로그램에 나온 문제 행동의 아이들의 부모는 그렇게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서 눈물을 흘리고 부모의 내면의 상처가 치유되면서 아이의 문제 행동도 고쳐지게 되었다.


나의 어린 시절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나도 참 부끄러움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성격도 조금 바뀌기도 하고 바쁘게 사느라 어린 시절을 잘 떠올릴 일이 없었는데 차근차근 아이를 보니 어릴 적 내 모습이 조금씩 오버랩이 되었다.


 유치원 때인 것 같다. 유치원에서 재롱잔치 같은 것을 준비하면서 아이들 소개에 쓸 영상을 집에서 찍는 날이었다. 쑥스러움이 많은 나는 제대로 말을 잘 못하고 영상 기사님의 마지막 부탁 ' 엄마 볼에 뽀뽀해볼까?'라는 요구도 쉽게 응하지 못했다. 당황스러운 순간이 되면 눈에서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던 것 같다. 그 모습에서 아빠의 낮은 훈육의 목소리에도 입을 삐죽이며 혼자 조용히 슬프게 우는 둘째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왜 그럴까? 하고 이해하지 못한 내 아이의 모습이 나의 옛 모습이었다니. 괜히 코 끝이 찡해왔다. 지금의 둘째 아이도, 그때의 나도 당장에 꼭 껴안아 주고 싶었다. 부모의 유전자라는 게 나의 어릴 적, 어쩌면 숨기고 싶은 순간들도 다시 꺼내 들게 되는 지울 수 없는 사진이 돼지만, 동시에 나와 닮은 이 아이를 이제는 이해할 수 있는 처방전도 될 수 있겠다. 기막힌 유전자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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