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친구가 내게 강요한 특훈은 길거리를 다니면서 큰 소리로 인사하기였다. 아주머니나 경찰관 아저씨를 만나면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하고 외치는 것이 나의 임무였다. 절박했던 나는 참 별난 특훈이라 생각하면서도 순순히 그의 말을 따랐다. 당연히 처음에는 되지 않아 계속해서 그 친구에게 핀잔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옆에서 내 대신 자연스럽게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하는 그가 얼마나 부럽던지......
박태식이는 첫날 훈련이 끝나자 한 가지 응급대응 방법도 알려주었다. 그냥 "차렷"하지 말고 앞에 작은 소리로 "전체~~"하는 소리를 넣으라는 것이었다. "차렷"이 아니라 "전체~~~ 차렷"하면 아마 "차차차차"하고 "렷"이 나오지 않는 현상은 바로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그 자리에서 "전체~~~ 차렷"해보니 뭔가 좀 괜찮아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음 날 나는 조회에 들어오신 담임선생님 앞에서 "전체~~~ 차렷, 경례"하는 구령을 무사히 할 수 있었다. 다음 시간, 그다음 시간도 모두 성공. 난 하루 종일 싱글벙글,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차차차차" 사건으로 날 걱정하던 친구들도 웬일이냐며 잘 됐다고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그놈의 끈질긴 박태식의 특훈은 그 이후로도 일주일에 두세 번씩 두 달여간 지속되었다.
그 뒤로 웅변학원도 다니고 거울 보면서 말하는 연습도 하고 뒷산에 올라가 소리도 질러보고 하면서 내성적인 나의 불편함을 고쳐보려고 애를 썼다. 대학에 가서도 뭔가 토론 기회가 있거나 하면 기를 쓰고 준비를 해가서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연습을 이어갔다. 대학교수가 되기 전에 이 훈련이 끝나지 않았으면 난 강의를 시작하면서도 "차차차차"하고 말을 이어가지 못했을지 모른다. 물론 그랬을 리는 없지만......^^
훈련을 통해 성격 개조를 했다지만 내성적인 나의 본성이 어디 갈리 없다. 교수생활을 하면서도 내게는 무대 공포증 비슷한 현상이 불쑥불쑥 나타났다. 방학이 끝나고 첫 강의가 시작되는 그 순간에 조차 쿵쾅쿵쾅 가슴이 요동치는 경우조차 꽤나 있었다. 그때마다 난 큰 소리로 "여러분~ 반갑습니다"하고 먼저 연극하듯 인사를 건넨다. 그러고 나면 그나마 좀 안정된 마음으로 강의를 이어갈 수 있었다. 이런 나만의 팁들을 장착하고 내성적인 본성의 난 그다지 불편함 없이 말과 대면의 자유를 누리고 살고 있다.
토론을 할 때나 말을 주고받을 때도 가끔 당황할 때가 있었다. 그때 내가 쓰기 시작한 방법은 "그건 두 가지 면에서 볼 필요가 있는데요"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머릿속을 빛의 속도로 돌려 그것의 구성 부분을 두 가지, 세 가지로 정리한 후 말을 이어가는 습관을 몸에 붙였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재수 없어하는 사람들도 꽤 있어서 익숙해진 다음부터는 첫째, 둘째, 셋째 하는 표현은 생략하고 말하게 되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첫째, 둘째, 셋째를 생각하며 말을 한다.
덕분에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의 제목이 "김 교수의 세 가지"이다. 이 타이틀은 내성적인 내가 외향적인 옷을 입힌 결과의 상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