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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즈모넛cosmonaut Oct 09. 2020

남자의 화장

꾸안꾸의 즐거움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 꾸안꾸 화장을 했다. 꾸안꾸란  “꾸민 듯 안 꾸민 듯”이란 뜻. 내가 화장을 하기 시작한 건 작년 겨울부터였다. 유튜브를 시작하면서 촬영용 화장을 한 것이 계기였다. 지금은 내가 그렇게 화장을 시작했다는 사실이 탐탁지 않다. 그냥 일상의 필요에 따라 좀 더 일찍 화장을 시작했었다면 좋았을 것을, 화장의 의지가 없던 내가 유튜브 때문에 할 수 없이 화장을 시작했다는 것이 뭐랄까 어리석다고나 할까 뭐 좀 부끄러운 느낌이다.     


덕분에 내 유튜브의 초기 영상의 화장한 얼굴을 보면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화장을 전문으로 하는 내 후배의 지인이 영상을 보고 기겁을 해서는 기본 화장법을 문자로 정리해서 보내줄 정도였다. 이름 하여 가부키 화장 사건이다. 회 칠한 듯한 얼굴에 눈썹은 비대칭에 입술은 또 왜 그리 빨간지……. 그걸 보고 그때는 그냥 웃었지만, 지금은 많이 부끄러워한다. 흉측한 얼굴 때문이 아니라, 화장을 대하는 나의 태도 때문이다.     


올해 환갑인 나는 나이 탓, 남자 탓을 하면서 ‘화장은 할 수 없이 하는 거야’ 하고 생각했었다. 화장하는데 나이와 성별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고작 1년 전 이야기지만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우리의 고정관념이나 이른바 ‘윤리’란 놈은 그렇게 사람을 바보로 만들기 일쑤이다.      


화장을 자주 하니까 화장술이 꽤 늘었다. 그리고 어느 날인가부터 난 유튜브 촬영이 없는 날도 아침에 세면을 하면 바로 화장부터 하는 사람이 되었다. 화장한 얼굴이 안한 얼굴보다 훨씬 더 깔끔하고 맑았기 때문이다. 외출을 할 때면 왠지 어깨가 펴지는 것이 기분까지 상쾌했다.     


최근에는 꾸안꾸 화장술까지 익힌 덕에 내 얼굴은 점점 자연스럽고 화사해졌다. 메이크업 스틱을 쓰면 비비크림보다 화장품이 옷에 덜 묻어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눈썹 면도기로 가끔 손질을 하고 나서 눈썹을 그려야 한다는 요령도 자연스럽게 터득했다. 립스틱과 입술연고를 섞어 바르는 편리한 놈을 만나 엄청 기뻐하며 바로 구매하기도 한다.  가끔 학교 앞 화장품집이나 백화점 1층에 들리기도 한다.     

꾸안꾸 애프터 앤 비포


물론 화장을 하지 않는 취미도 나쁘지 않다. 화장하는 기쁨만큼 귀찮을 때 화장 하지 않는 기쁨이 또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19로 마스크를 하고 다니니 아침에 귀찮을 때는 나 역시 화장을 하지 않고 나갈 때가 종종 있다. 그러다가도 오늘은 좀 더 깔끔해야지 하는 마음이 동할 때는 화장을 한다. 화장은 자신을 치장하는 꽤나 괜찮은 취미이다.     


윤리 파괴는 자유와 즐거움의 획득을 위해 필수다. 물론 어떤 윤리를 파괴할 것인가는 스스로 정해야 한다. 이것이 쌓이면 새로운 사회윤리가 되겠지. 우리가 사는 이 땅은 참 많이 불편하다. 누가 정해놓았는지 알 수 없는 윤리 속에 갇혀있어야 할 때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예전에 프레시안에 “세월호 엄마, 죽겠는데 담배 피우면 안되나?”라는 글을 썼을 때가 기억난다. 48일간을 단식했던 김영오 씨가 이혼했다고 비난 받았던 때도 기억난다. 허상으로서의 윤리를 파괴하고, 자유롭고 따듯한 사회가 어서 되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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