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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즈모넛cosmonaut Oct 08. 2020

내성적이라서 힘들 때 (1)

내성적인 섬세함에 외향적 옷을 입히면

어릴 적 그렇게 내성적이었던 내가 요즘은 강의도 하고 몇백 명 앞에서 꽤 설득적인 강연도 곧잘 하는 사람이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 신기한 일이다. 이런 신기한 경험을 통해 나는 대부분의 사람이 어느 고비만 넘기면 성격, 스타일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안다. 별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런 나의 경험을 공유한다면 몇몇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이야기를 풀어놔본다.


내성적인 성격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두 가지 좋은 방법이 있다. 여러 사람 앞에 서거나 좀 익숙지 않고 부자연스러운 자리에 말을 하면 머리가 하얘지고 막 목소리가 떨리는 사람은 필경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여러 사람이랑 같이 있을 때 한 사람 한 사람의 표정이 읽히고 어떤 심정으로 앉아 있을까가 그냥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사람도 대부분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일 가능성이 높다. 이 두 가지에 모두 해당한다면 '아 나는 성격이 내성적이구나' 하고 판단해도 틀림없다. 내가 심리학자는 아니지만 내 경험을 통해서 내린 판별 기준이니 그리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판단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자신이 불편하냐 그렇지 않냐를 아는 것이다. 불편하거나 힘들지 않은데 굳이 외향적인 사람이 되려고 애를 쓸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약간 불편할 때도 있지만 그다지 심하지 않고, 심지어 좀 고쳐보려 해도 도통 잘 고쳐지지 않는 사람은 그냥 내성적으로 사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오히려 외향적인 것보다 내성적인 것이 삶도 조용하고 타인을 깊이 배려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긍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긍정하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멋진 답이다.


내성적인 내가 불편하다고 느끼는 경우는 전혀 이야기가 다르다. 외향적인 성격이 되어서 좀 덜 답답하게, 좀 덜 불편하게, 아주 마음을 훌훌 털고 자유롭게 살고 싶은 사람도 꽤 많다. 이런 사람들은 성격을 개조하는 시도를 해봄직하다. 해보면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한 가지 더 알아둘 것은, 내성적인 사람이 외향적으로 자신의 성격을 개조했다고 해도, 주변 사람들에 대해 섬세하게 느끼고 반응하는 감각은 신기하게도 그대로 유지된다는 사실이다. 좌중을 리드하며 신나게 자기 말을 쏟아내면서도 주위 사람들의 반응이나 느낌 등은 내성적일 때와 똑같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내성적인 성격에 외향적인 옷을 입히면 자상하고 배려 많으면서, 동시에 웃음도 많고 큰 소리로 신나게 말도 자유롭게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나는 어린 시절 심각할 정도로 내성적인 아이 었다. 여학생들 앞에 서면 얼굴이 빨개지고 목소리가 떨려서 정말 단 한마디의 말도 꺼내지 못하는 그런 아이 었다. 전교 1등도 자주 할 정도로 공부는 잘하였지만, 고등학교 올라가기 전까지 나는 반장을 한 번도 못해봤다. 선생님이 하라 하셔도 난 끝끝내 반장을 맡지 않았다. 아이들 앞에서 구령을 붙이거나 말을 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이런 내게 변화가 오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부터였다. 1학년 담임선생님이 기술을 가르치는 키가 작으면서도 아주 야무진 분이셨는데, 몽둥이를 들어가며 나를 반장을 시키셨다. 한 달쯤 지났을 즈음, 수업 시작할 때 매번 하는 "차렷, 경롓"(그 당시에는 "인사"가 아니라 절도 있게 "경롓" 했다)를 난 결국 못하고 말았다. 내성적인 나로서는 그 구령을 매일 매시간 하는 것이 너무나도 큰 부담이었다. "차 차 차 차"하기만 하고 "렷"이 이어저 나오지를 않아 결국 부반장이 구령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은 그냥 그렇게 지나갔지만 앞으로가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 박태식이라는, 지금도 나와 제일 친한 친구가 학교가 끝나고 나서 나를 끌고 특훈을 시키기 시작했다. 45년 지기인 그 친구가 나를 구제하지 않았다면 난 아마 무사히 고등학교 1학년 반장 노릇을 마무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2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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