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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즈모넛cosmonaut Oct 05. 2020

92세 엄마와의 동거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않는다.

오전 8시, 아침상을 무르고 엄마와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신다. 신문을 들고 등도 굽히지 않은 채 거의 30여분을 미동도 하지 않는 92세의 우리 엄마. 간간히 서로에게 말을 건네지만, 보청기를 끼고도 잘 들리지 않아 대화가 길게 이어지지는 않는다.

     

엄마와 동거한 지 8년째가 되었다. 덕분에 난 8년간 주말부부다. 여주에 집을 짓고 이사를 간지 19년 되었으니 11년은 시골에서 출퇴근, 8년은 주말부부. 가남이란 곳에서 낮은 산들이 따듯하게 감싸주는 마을을 찾아내고 얼마나 좋아했던지, 지금도 그 꽉 찬 행복감이 내 몸에 남아 있다. 마을 이름이 공심리. 한자가 空心인지 公心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어느 쪽이든 뜻이 좋다.      


그런 곳에서 10년 이상을 살던 어느 날 아버지한테서 전화가 왔다. “더 늙기 전에 서울로 가야겠으니까, 집 구하는 거 네가 좀 도와라” 하신다. 1주일 정도 이곳저곳 보다가 내 직장에서 가까운 남가좌동 소재 어느 아파트 하나를 구했다. 대전에서 바로 이사를 오셨고, 마침 대학에 입학한 큰 아이, 나, 아버지, 엄마 이렇게 넷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두 분이 함께 계실 때는 내가 할 일은 거의 없었지만, 웃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고 그냥 그렇게 지냈다.     


95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혼자가 되셨다. 그 사이에 큰 아이는 독립해서 나갔고, 결국 나와 엄마 둘이서 3년째 이렇게 살고 있다. 매일 아침을 같이 먹은 다음 커피 잔을 앞에 두고 나는 핸드폰, 엄마는 신문을 보면서. 

    

엄마가 초기 치매 판정은 받은 건 5년 전이었다. 아버지는 엄마가 움직이면 자석처럼 붙어 다니셨다. 길을 잃으면 큰일이니 꼭 엄마랑 같이 다녀야 한다는 논리였다. 난 경찰서에 엄마 지문등록을 해두고 엄마랑 자석처럼 붙어 다니지 않는다. 두 분은 매일 홍제천길을 두 시간 정도 산책하셨다. 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근처 새로 지은 아파트 길을 함께 걷는다. 아버지가 계실 때는 자주 외식을 하셨지만 지금 난 한 달에 한 번 엄마와 외식을 하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다. 생활 경영을 잘하셨던 아버지는 매년 엄마와 거의 너 댓 번을 여행을 다니셨지만, 지금 난 분기별로 한 번 정도 엄마를 차에 태워 반나절 정도 바람을 쐬어 드릴 뿐이다. 


이런 별 거 아닌 루틴 덕에 그 꼬장꼬장한 엄마의 성격, 수가 틀리면 할 말을 하고야 마는 나의 별난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우리 둘을 큰 탈 없이 나름대로 잘 지내고 있다. 근데 재밌는 건, 잔정이 많고 친절하셨던 아버지와 엄마는 자주 다투셨지만, 잔정이 없고 무뚝뚝한 나와 엄마는 거의 다투지 않는다.     


신문을 보고 있는 엄마 사진을 찍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날 사랑하고 있을까? 난 엄마를 사랑하고 있는 걸까? 3년이란 세월이 길고 함에 부쳤는지 내 답은 명확했다. “내가 엄마를 사랑해서 모시고 있는 건 아니야”. 난 엄마를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않는다. 부모 됨은 자식을 사랑하여 양육하는 것이고, 자식 됨은 부모를 사랑하여 공경하는 것이다? 난 아니라고 본다.     


내가 엄마와 이렇게 동거를 하고 있는 건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마치 모르는 노인 한 분을 아주 조금만 신경을 쓰면서 돌보고 있는 것? 난 그런 마음으로 우리 엄마를 모시고 있다. 그게 맞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맞다. 부모 됨, 자식 됨, 사랑 뭐 이런 단어들은 그저 서로를 옭아맬 뿐 그 아무런 실천도 담보해주지 못한다.     


92세나 되었는데 허리도 꼿꼿이 서 있고 시력도 좋아서 저렇게 오래도록 신문을 보실 수 있다는 사실 자체도 고마운 일이다. 엄마도 덤덤하고 말 없는 나를 고마워할지도 모른다. 그 정도의 선에서 살자. 그게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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