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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tie Nov 30. 2020

Read Aloud, 소리 내어 읽어 주세요!


    잠시 눈을 감고, 내가 초등학생이었던, 무려 30여 년 전으로 돌아가 본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학교 도서실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도서실로 이동해 책을 읽는 시간. 담임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모든 아이들은 한 줄로 서서 2층 끝에 있는 학교 도서실로 조용히 걸어간다. 복도를 따라 걷다가 도서실 입구에 들어서면 사서 선생님의 작은 책상이 있고, 그 책상 위에는 작고 긴 막대기가 담겨있는 상자가 있다. 아이들은 한 명씩 번호가 적힌 긴 막대기를 하나씩 가지고 책꽂이를 가서 읽고 싶은 책을 직접 고른다. 읽고 싶은 책을 골랐다면 책꽂이에서 책을 뽑고 그 빈자리에는 손에 들고 있는 막대기를 꽂아 넣는다. 정열이 되어 있는 책들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빈 공간을 채워주고 책을 다 본 후 다시 제자리에 꽂아 넣기 위함이다. 그리고 여섯 명쯤 앉을 수 있는 책상으로 가 자리를 잡는다. 허리를 곧게 펴고 바른 자세로 앉아 조용히 마음속으로 책을 읽어 나간다. 일련의 과정이 이루어지는 내내 도서관은 고요하다.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종이 울리기 몇 분 전. 사서 선생님은 시간이 다 되었음을 알려 주신다. 아이들은 다시 한 줄로 서서 교실로 돌아온다. 감았던 눈을 뜨며 현재로 돌아온다. 학교에서 교과서가 아닌 진짜 책을 만나는 시간인 도서실 수업은 언제나 이렇게 엄숙하고 정숙하였다. 


    세월이 많이도 흘렀다. 그 사이 나는 외국인 학교의 교사가 되었다. 그리고 마주한 외국인 학교의 Library 수업 시간. 시작 시간보다 일찍 들어온 아이들은 읽고 싶은 책을 꺼내 카펫 위에 엎드려 책을 읽기도 하고 어떤 책이 재미있다면서 친구한테 특정 책을 권하기도 한다. 친구와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들도 있다. 그리고 벨이 울리자 모두 알록달록한 무늬의 카펫 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는다. 준비가 되면 Library 선생님은 아이들 앞에 앉아 책을 읽어주기 시작하신다. 책의 제목을 읽어주고 작가와 삽화가가 누구인지 아이들에게 알려준다. 책 커버의 그림을 보며 어떤 내용의 책일지 함께 이야기를 잠깐 나눈 후 선생님은 책을 소리 내어 읽어주기 시작한다. 때로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때로는 큰 목소리로 다양한 감정을 섞어 재미있게 읽어주시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아이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이야기를 즐긴다. 어쩜 저렇게 책을 재미있게 읽어 주실까? 카펫 위 아이들 틈 사이에 함께 앉아있던 나는 다시 아이가 된 것 마냥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Read Aloud는 텍스트를 소리 내어 읽어 주는 것이다. 이미 다양한 학자들의 연구에서 Read Aloud의 긍정적인 영향력들이 많이 입증된 바 있다. Read Aloud는 아이들로 하여금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동기를 불러일으키고 성공적인 리터러시 능력 습득을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들을 쌓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당시 내가 교사로 일하던 학교에서는 Library 수업 시간외에도 곳곳에서 Read Aloud 시간을 만날 수 있었다. 1학년부터 8학년까지 모든 학년의 오전 시간은 Literacy block으로, 오전 내내 읽고 쓰는 리터러시 활동에만 집중했다. 이 시간에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책을 소리 내어 읽어 주며 Good Reader, 즉 숙련된 독자는 어떻게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읽기와 쓰기 전략을 쓰는지 직접 보여주었다. (어떠한 전략을 어떤 방법으로 가르치는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하나씩 글로 풀어나갈 예정이다.) 

    이 곳에서 Read Aloud는 특별한 활동이 아니라 매일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아주 일상적인 활동이었다. 이제는 많은 나라에서 기념하고 있는 National Reading Month나 World Read Aloud Day와 같은 특별한 기간에는 다양한 이벤트를 벌이기도 했다. 직접 동화책 작가와 영상 통화를 하며 학생들이 직접 인터뷰도 하고 작가가 실시간으로 읽어 주는 책을 듣기도 하였다. 고학년 학생들이 저학년 학생들과 짝을 이루어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팝업 스토어처럼 특정 시간에 학교 내 특정 장소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선생님들이 책을 읽어주는 이벤트도 하였다. 아이들은 책과 항상 가까이 있었고, 책을 사랑했다. 

 

 


 

내 인생 세 번의 Read Aloud 

 

    누군가가 읽어주는 책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오디오북 말고 진짜 사람이 내 옆에서 읽어주는 책 말이다. 나의 유년 시절 내 주변에는 책을 소리 내어 읽어 주는 사람이 없었다. 하루가 끝날 무렵 내가 잠들 때까지 내 옆에서 책을 읽어주는 사람도 없었고, 학교 교실에서 또는 도서실에서 소리 내어 책을 읽어 준 선생님은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이제는 내 학창 시절의 기억이 대부분 흐릿해질 정도로 세월이 지났건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아주 짧은 순간이 있다. 책과 친해지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또, 책과 멀어질 뻔했던 나를 잡아 주었던 것은 다름 아닌 친구의 책 읽는 목소리였다.  

     초등학교 1학년. 나는 그 당시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갔다. 오늘은 무엇을 하면서 놀까 고민하던 중 친구는 요즘 재미있게 읽고 있는 책이 있다며 나에게 그 책을 같이 읽자고 권했다. 친구가 가져온 책은 <꼬마 흡혈귀>라는 제목의 책이었는데 꽤 두꺼웠고 작은 글씨가 가득 차 있었다. 사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챕터북을 만났다. 그림보다 글이 훨씬 많고 여러 챕터로 나뉘어 있어 꽤 두꺼워 보이는 책을 마주했을 때 당연히 지루할 거라 생각했다. 친구는 한 페이지씩 번갈아 읽자고 제안했고 나는 하는 수 없이 친구와 소파에 나란히 엎드려 책을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친구의 목소리를 통해 듣는 책의 이야기는 순식간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고 1권을 단번에 읽어 내려갔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 책의 다음 내용이 너무 궁금하여 참을 수 없었다. 바로 집 앞 서점으로 달려가 그 책의 시리즈를 몽땅 사온 뒤 처음으로 밤이라는 것을 새워 모든 책을 다 읽었다. 정말 신선하고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챕터북을 읽은 것도 처음이었고, 책을 읽으면서 밤을 새운 것도 처음이었다. 나는 그렇게 책의 세계로 흠뻑 빠져들었다. 

     이 글을 쓰면서 그때 읽었던 꼬마 흡혈귀라는 책이 생각나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 검색을 해 보았다.  내가 어린 시절에 만났던 이 책이 지금의 아이들에게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걸 보니 마치 잃어버렸던 어린 시절의 사진을 찾은 것 마냥 너무 반가웠다. 미국에서 한국 책을 사는 것은 가격 면에서 부담이 있지만 이 책은 왠지 꼭 한글 버전으로 아이들에게 사 주고 싶다. 그리고 과거의 어린 내가 친구와 함께 이 책을 읽었던 것처럼 이번에는 나의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어 주고 싶다. 


    중학생이 되면서 나는 책과 멀어졌다.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문학 작품을 읽는 것 외에는 전혀 책을 읽지 않았다. 나에게 도서관은 시험공부를 하러 가는 곳이고 서점은 문제집을 사러 가는 곳이었다. 나의 이러한 독서 습관은 고등학교 때까지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당시 친했던 친구 집에서 같이 자기로 한 날이 있었다. 그 친구는 자칭 문학소녀답게 언제나 책을 즐겨 읽었는데 그 날에는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을 읽고 있었다. 시험에 나오는 것도 아닌데 왜 저렇게 길고 어려울 것 같은 책을 읽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하는 내 말에 친구는 조금만 들어보라며 책을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듣는 거야 별 어려운 일도 아닌데 뭐…라고 생각하며 침대에 나란히 누워 친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을 계기로 나는 다시 책에 빠져들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열심히 스펙을 쌓는데 열중하면서, 취업을 한 후에는 경력을 쌓는데 집중하면서 난 자연스레 책이 주는 즐거움을 잊기 시작했다. 그 시기에 책을 안 본 건 아니었지만 주로 자기 계발을 위한 실용서 위주의 책만 보게 되었다. 책이 주는 지식만을 찾았기 때문에 책에서 오롯이 느끼는 즐거움은 없었다. 

    그리고 나의 세 번째 read aloud.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무렵 나는 태교에 열을 올렸다. 첫 아이이기에 뭐든 것이 특별했다. 뱃속에 있는 아이는 엄마의 고음보다 아빠의 안정된 중저음을 좋아한다며 남편에게 뱃속의 아이에게 매일 책을 소리 내어 읽어 줄 것을 요구했다. 사실 남편의 목소리는 중저음이 아니다. 오히려 내 목소리가 안정된 중저음에 가깝다. 하지만 남편은 시키는 대로 임신한 아내의 기분을 맞추어 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다. 그렇게 남편은 나와 뱃속의 아이에게 매일 밤 다양한 동화책을 읽어 주었다. 

    누군가가 읽어 주는 책을 듣고 있으면 참 기분이 좋다.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사랑이 느껴진다. 보이지 않는 끈이 우리를 단단히 연결해 주는 기분이다. 가끔 남편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줄 때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매력적인 보이스의 소유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목소리가 사랑스럽다. 

 


 

    

    지금의 나의 독서 습관은 어떠할까. 근처에 서점이나 도서관이 있다면 친구가 아무리 오래 나를 기다리게 해도 너그러이 용서해 줄 수 있는 정도 혹은 한 달에 한번 몰에는 가지 않아도 서점에는 꼭 가야 할 정도로 꽤 바람직한 독서 습관을 갖고 있다. 물론 read aloud 경험 외에도 나의 독서 습관을 만들어준 아주 고마운 사람들이 있다. 책을 항상 가까이하는 모습을 보여준 나의 베스트 프랜드와 만날 때마다 서점에 데려가 책을 사 주셨던 은사님. 참 감사하다. 


    나는 read aloud가 얼마나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직접 경험하기도 했고, 학교 교사로서,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로서 그것이 주는 긍정적인 영향과 잠재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오랫동안 봐 왔다. 그래서 나는 내 주위에 있는 친한 친구들에게 항상 말한다. 자녀들에게 소리 내어 책을 읽어주라고. 학생들에게 소리 내어 책을 읽어 주라고.


    다가오는 2021년의 World Read Aloud Day는 2월 3일이다. World Read Aloud Day는 LitWorld가 2010년에 Read Aloud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설립한 날로, 지금은 글로벌 운동으로 발전해 137개국 이상의 나라에서 이 날을 기념하며 다양한 Read Aloud 이벤트에 참여하고 있다. 이 행사를 스폰하는 스콜라스틱에서 다가오는 World Read Aloud Day 관련 정보와 자료를 제공하니 관심이 생긴다면 방문해 보길 바란다. 


 https://www.scholastic.com/worldreadaloudday



Image Credit- Mabel Amber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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