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산일기
12/31
8:00 호텔에서 나가기
유니버셜을 가는 날이다. 인파에 치일 생각을 하니 침대에서 몸이 떨어지지를 않는다. 갈아타지 않고 직행으로 가는 기차의 시간대가 정해져 있기에 무거운 몸을 일으켜 대충 조식을 챙겨 먹었다. 조식이 다양하지 않아 조금 질리는 맛이지만 워낙 유니버셜의 살인적인 물가와 줄서기 소문이 흉흉하기에 억지로 배를 채워본다. 호텔이 오사카역과 가까워서 이동에 참 편하다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유니버셜은 가까웠고 정말 인파가 유니버셜했다. 다국적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른 시간부터 움직이고 있었고 마치 소풍가는 아이들마냥 모두가 하나같이 들떠 있었다. 이상하게 그 들뜬 분위기는 나에게도 전해져서 피로가 사라지고 즐거움만이 남아 있었다.
입장게이트가 많아 생각보다 입장이 오래걸리지는 않았고 가방 검사에서도 아기 간식은 융통성 있게 들여보내 주었다.
우리는 닌텐도 월드를 가지 않을 것이라 일단 전체적으로 둘러보기로 한다. 식당은 유니버셜 앱에서 한달전에 예약도 가능하고 예약을 못했을 경우 현장에 도착하자 마자 식당에 시간예약을 하고 명단을 올려두면 해당 시간에 오래 기다리지 않고 입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조식을 든든히 먹은 우리는 딱히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아 무작정 길을 걸어갔다.
마침 아기들 놀거리 위주인 헐리우드 원더랜드가 보였고 컵? 놀이기구의 줄이 짧아 놀이기구도 한 번 타 봤다. 그 이후부터는 모든 줄이 너무 길고 다 신장 최소 90센치 이상 제한이 있어 놀이기구는 아예 포기하고 공연 위주로 관람하기로 했다. 일단 유니버셜앱에서 아기가 흥미있어할 공연들 리스트와 장소, 시간대를 확인했다.
1. 유니버설 원더랜드 필더리듬 9:50 11:10
2. 미니언즈 그리팅 입장 시 헐리우드 캐노피 아래
3. 쥬라기공원 9:30 10:25 11:20
4. 유니버셜 원더랜드 몹피의 댄스 10:00 11:0
5. 입구 미니언즈 피버 디스코 오전 10:20
6. 헐리우드 싱온투어 10:20
쥬라기공원은 시간이 애매해서 다음 차수로 미루고 원더랜드에서 이래저래 시간을 때워본다. 원더랜드 안에는 키즈카페스러운 장소도 있었으나 아기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기에는 큰 아이들이 많아서인지 놀기를 꺼려했다. 실내에서 밖으로 나오자 마침 스누피 친구들과 키티, 아기가 좋아하는 엘모와 쿠키몬스터가 길을 다니며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아마 그 시간대에는 울아기가 최연소여서 그런지 모든 캐릭터가 아기를 사랑스럽게 대해주었고 사진 시간도 많이 할애해 주었다. 아기가 좋아하니 나도 기분이 좋았지만 입장료가 워낙 비싸니 재밌어보이는 놀이기구를 하나도 타지 못하는 아쉬움이 크게 느껴진다.
갑자기 비가 조금 내리기 시작하면서 쥬라기월드 공룡 퍼레이드는 취소가 되었다. 아쉬움을 달래며 길거리 주전부리를 먹어보기로 ㅛ했다. 식당은 많이 없어도 주전부리 부스는 많아서 끼니 걱정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역시 줄이 제일 짧은 메뉴를 선택했고 그 메뉴는 피자였다.
생각보다 피자는 맛이 있었고 토마토스프도 서늘한 날씨를 달래기 좋았고 의외로 맥주는 맛이 없었다. 그래도 온 김에 퍼레이드는 보고 가자 싶어 1시 반까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아기가 볼 수 있는 공연을 보았다. 마침 쥬라기 퍼레이드도 재개되었다.
엄청 부지가 크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막상 세세한 동선으로 움직이지 않는 우리가 느끼기엔 생각보다는 돌아다니기 적당하다 싶었다.
조금 시간을 때우다 보니 드디어 퍼레이드가 시작된다. 시작 30분 전부터 퍼레이드를 관람하려는 인파들로 자리경쟁이 시작되었다. 비가 와서 퍼레이드 규모가 조금 축소된 것 같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반복적으로 흘러나오는 신나는 음악에 나도 몸이 들썩여졌고 아기띠로 아기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도 함께 춤을 췄더니 남편이 체력 정말 대단하다고 혀를 내두른다. 왜 살은 안빠지나?
슬슬 돌아가기로 한다. 아직 한창일 시간대라 기차를 타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아기는 의도한 대로 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돌아가는 길은 직행이 없어 조금 험난했다. 오사카역도 어지간히 휠체어나 유모차에 friendly 하지 않다. 엘베를 찾다 못해 유모차로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는 위험천만을 여러 번 강행했다.
나도 피로가 쌓여 뭘 하겠다는 의지가 없었고 단지 생맥주를 들이키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해서 적당한 음식점을 찾아 나섰다. 구글 평점이 높은 곳은 그 어딜가나 대기가 기본 30분이었고 성질급한 우리 가족은 또 줄안서는 곳을 찾다 쌩뚱맞게 함박스테이크를 먹게 되었다.
배에 음식이 차니 더욱 피로가 몰려온다. 적당한 이자까야를 찾다 실패하고 그냥 먹거리를 사서 돌아가자고 했다.
숙소에 들어와 샤워로 피로를 씻어내고… 잠시 쉬다 다시 첫끼를 해결했던 식당으로 갔다(사람이 없고 만만했다). 최대한 체력을 소진하지 않는 여행을 하고자 했는데 아무리봐도 난 그런 여행을 할 줄 모르나보다.
난생 처음으로 해외에서 연말연초를 맞아보는데… 카운트다운은 커녕 세 식구 모두 아주 일찍이 잠자리에 들었다. 해피뉴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