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산일기
역시 태권도가 답이다.
아이의 취침 시간이 11-12시에서 10시 정도로 빨라졌다. 졸리지 않아를 입에 달고 살던 아이인데 이제 곧잘 졸리다는 얘기를 한다. 덕분에 영화나 드라마를 볼 짬도 가끔씩 생겼다.
제주도 출신 남편과 부산 출신 아내가 함께 보는 폭싹 속았수다는 느낌이 조금 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다. 배경과 말투들이 귀에 익어 마치 내가 그 현장에 있는 듯이 현실감이 느껴졌고 애순이를 지켜줬던 해녀 어머님들의 모습에 실제 물질을 하시며 남편을 키운 시외할머니 얼굴이 오버랩 되기도 했다. 반면이 제주도 남자가 저리 다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보는 내내 ‘무슨 저런 말도 안되는 판타지가‘ 라는 생각이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한편 애순이와 관식이가 야반도주 해서 도착했던 부산 여관 도입부에서 남편에게 약간 자랑하듯 “그래 부산사람들이 거칠어도 저렇게 따뜻한 구석이 있어 맞아”라고 했다가 반전 결과에 남편이 “역시 부싼이네!” 하며 깔깔거리던 모습은 얼마나 부아가 치밀었는지 모른다.
아직 4회까지 정도밖에 보지 못하고 며칠에 한번 조금씩 나눠보고 있지만 일과 육아에 서로 건조해졌던 가족관계가 조금 따뜻해지는 느낌이다. 드라마에 한창 빠져있다보니 관련 영상도 얼마나 많이 뜨는지 대충 주요한 사건들을 미리 알게 되어 벌써부터 마음이 저린다.
드라마 후반으로 가면 대사 중 관식이가 딸의 남자친구에게 딸을 키우는 시간들은 천국이었다 라는(혹은 그 비슷한) 대사가 나오는 모양이다. 그 짤(?) 단 하나를 보고 눈물이 쏟아졌다. 어제 남편이 모듬회를 사왔길래 오랜만에 정종을 함께 기울이며 그 짤을 얘기하다가
”남편, 난 내 인생에서 지금이 제일 행복해. 당신과 우리 아이와 함께 하는 지금이 나한테 천국이야.“ 라고 얘기했다.
무심히 툭 뱉은 말이었지만 진심이었고 울보 남편은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며 본인도 그렇다고 했다. 근데 남편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굳이 천국의 기여도를 나누자면 남편 10 아이 90 정도로 아이가 압도적이다.
5살때가 제일 예쁘다더니 아이는 정말 예쁘다. 구멍난 내 양말을 보고 두 손으로 내 발을 한참을 꼭 감싸고 있던 모습, 장수풍뎅이가 무서워 만지지는 못하면서 큰 오빠가 장수풍뎅이를 함부로 만지는 것을 보고 화가나서 소리를 지르는 모습들을 보며 아 이 아이는 참 타고난 재질이 좋구나, 잘 키워야 할텐데 하는 책임감도 생긴다.
여름은 너무 덥고 겨울은 너무 춥고 뛰어놀 수 있는 봄 가을은 점점 짧아지는데 그나마도 황사네 미세먼지네 밖을 나가지 말라니 아이들은 언제 뛰어놀 수 있는 건지. 한여름이 오기 전에 아이와 많이 놀러다니고 싶은데 올해는 영 계획을 못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