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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와의 한여름 홍콩 여행기 - 1

노산일기

by sunshine


2025/7/30

7만 마일리지가 24년을 기준으로 소멸되는 것이 있어 25년 여름방학을 위해 쓰기로 했다. 프랑크푸르트행 좌석은 여유가 있었지만 아직 아이를 데리고 유럽까지 장시간 비행기를 타는 것과 유럽을 여행하는 것은 내 스스로가 자신이 없었고, 아시아권은 어느 나라도 티켓이 여의치가 않았다. 그나마 티켓이 있는 곳이 홍콩이었는데 구매확정을 하고서도 여름에 홍콩을 가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인지 고민과 걱정이 많았다. 24년 말에 티켓팅을 했으니 거의 7-8개월을 기다린 여행이다. 어찌나 일정을 짜고 또 짰던지 인플루언서가 되어 일정을 나눠도 되겠다 싶다. 어쨌건 메인포인트는 5살 아이를 데리고 더위에 맞서 어떻게 효율적으로 여행을 할 것이냐 였기 때문에 가는 날까지도 걱정이 사라지지 않았다.


드디어 비행기 탑승. 수요일 저녁 출발 비행기였는데 그 사이 저녁 비행기가 없어져서 출발 시간대가 오전으로 바뀌는 등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또 인생이란게 한치 앞을 알 수 없다고 내가 반백수가 되어 있을 줄 예상이나 했을까. 고작 수목금 3일의 연휴이지만 워킹맘은 휴가를 연달아 쓰는 것이 참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인데 반백수는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 눈치볼데도 없고 갑작스러운 일정변경에도 자유롭다(라고 위안한다).


홍콩은 온통 공사 중이다. 공항도 엄청난 대형확장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중국이 홍콩을 거점으로 이용하려는 의도가 느껴졌다. 기존에 야간 도착 예정이었어서 옥토퍼스카드를 사전구매하지 않았었는데 일정이 바뀌어서 공항 내에서 카드를 구매해 보았다. 운좋게 호텔 근처까지 직행으로 가는 버스가 있어 공항 바로 앞에서 버스를 탔다.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도 내내 온통 공사터다. 개간 사업으로 땅을 넓히고 다리도 만들고 있다. 바다 위에는 컨테이너가 가득하다. 마지막으로 홍콩에 온 것이 10년 전쯤 되었던가.. 그때와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생각보다 아직은 홍콩 특유의 분위기가 사라지지 않았다. 서희는 이층버스를 처음 타봐서 신이 났다.


걱정했던 것 보다 날씨가 덥지 않았다. 심지어 한국보다 덜 덥다. 이럴수가. 건물 밖에 널려있는 빨래들을 보며 서희는 왜 옷이 밖에 널려있냐고 물어본다. 홍콩은 땅이 좁고 집이 좁아 빨래를 널데가 여유롭지 않아 창밖에 많이 걸어놓는단다. 여행 준비를 하며 놀랐던 것은 그 사이 너무나 높아진 물가였다. 이 정도까지 비싸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식비며 관광비며 모든 것이 이전보다 최소 1.5배 정도는 비싸진 것 같다. 먹거리와 생필품은 일본에서 많이 수입하고 있는 것 같다. 중국에 병합? 되기는 했지만 아직은 섬같은, 자국생산이 되는 것이 많이 없어서인지 생수 한통도 한국보다 비싸다. 날은 덥고 생활은 팍팍하고 예전 홍콩 영화에서 보여지던 무드도 사라져가고 길에서 만나는 홍콩인들은 대부분 눈에 활력이 없어보였다.

그럼에도 다닥다닥 붙은 높은 건물들과 네온사인, 이층버스, 구형 빨간택시들은 아 역시 홍콩에 온게 맞네 싶고 트랜짓 외에 관광 목적으로는 홍콩을 처음 방문한 남편의 호기심을 끌기엔 충분했던 것 같다.


이글이글 타는 듯한 날씨는 아니었지만 약불로 중탕을 하는 듯이 덥기는 해서 호텔에 짐을 맡기고 식당까지 고작 6-7분 걸어 가는 길 동안 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한다. 남편과의 여행은 늘 ‘가성비‘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식당도 최고급 식당보다는 현지인 맛집을 선호해서 조금 허름한 가게들이 대부분이기는 하다. 처음으로 방문한 맛집도 완탕면으로 유명한 50년 가까은 역사를 지닌 가게였는데 내부에 식탁이라고는 4-5개가 전부였다. 많이 시킬 계획이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또 욕심을 부리게 되었다. 계란면이 들어간 새우돼지고기 완탕면에 돼지고기튀김, 볶음밥을 시켰다. 아이는 벽에 붙은 사진을 보고 갑자기 카레를 먹겠다고 했는데 이미 주문이 들어간 상황이라 아이의 의견을 들어주지 못했다. 완탕면은 성공, 볶음밥은 쏘쏘였다. 역시나 음식들이 짜기는 하다.


일정을 세우면 뭘하나. 패키지가 아니니 그냥 기분대로 가 본다. 날씨가 더우니 버스를 타고 K11 musea로 가보기로 했다. 예전에는 없었던 건물인 듯한데 요즘 많이들 간다니 한 번 가 보기로. 버스에서 내리자 홍콩섬을 맞은 편에 두고 바다가 펼쳐진다. 바다 위에 빨간색의 멋진 배 아쿠아루나가 다니고 있기에 피터팬 이야기 속 해적에 관심이 있는 아이에게 홍콩의 해적선이라고 했더니 가까이서 보겠다고 생떼를 쓰기 시작한다. 사실 아쿠아루나를 예약할까 어쩔까 했지만 여행기간 동안 비가 예정되어 있기에 혹시나 싶어 예약을 하지 않았는데(나는 이미 타보기도 했고;) 아기가 관심있어하니 예약을 할 껄 그랬나 싶기도 하다. 날이 더우니 짜증이 더 심해진 아기를 데고 일단 쇼핑몰 안으로 피신했다.


아이와 같이 여행을 하다보니 쇼핑은 계획 자체를 않게 된다. 홍콩 화폐가치도 한몫하고 어쨌건 옛날처럼 홍콩에 명품쇼핑을 하러 오는 일이 줄었다지만 그래도 아주 가끔 편집샵에서 땡처리 제품을 겟하는 기쁨이 있는데 이번에도 혹시나 싶어 중고샵 위치도 찾아는 놓았으나 역시나 무리다. 쇼핑몰의 여러 고급브랜드는 쳐다보지도 않고 지하의 키즈 샵이나 슈퍼만 돌다가 납작복숭아가 눈에 들어왔다. 모든 것이 비싼 가운데 열대 과일류는 그래도 한국보다 싸다. 납작복숭아와 망고, 아기 과자를 사서 나가려는데 점심에 못 먹은 카레가 미련이 강렬하게 남는지 아기가 계속 카레 타령을 시작했다.


마침 근처에 구글 평점이 4.9에 달하는 파키스탄 음식점이 있어서 가보기로 했는데 약간 꺼림직한 건물 분위기에 남편이 가지 말자고 한다. 나는 별로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지만 아이와 함께이니 남편의 의견을 들어주기로 했다. 숙소 근처에 야시장이 있어 그곳에 혹시 카레를 파는 곳이 있을지 땀을 뻘뻘 흘리며 다녀 보았는데 가게들이 마땅치 않았다. 마침 노점 중 한 군데를 발견해서 테이크아웃으로 소량 사 보려니 주인이 아기를 보더니 근처 가게를 알려주며 들어가서 먹으라고 한다.


INTJ는 일정이 틀어지면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이고 기분도 다운되는 경향이 있다. 밥맛도 사라져서 아이가 먹을 정도의 소량만 주문하겠다고 했다. 그 식당은 인도인 부자가 운영하는 가게로 사장님은 수원에서 6년간 살았었다며 말을 걸어왔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홍콩 물가가 비싸서 놀랐다고 얘기하자 한국도 짧은 기간 동안 물가가 많이 올라서 힘들었는데 홍콩에 오니 더 힘들다고 한다. 사실 한국인이라는 민족이 막상 겪어보면 정말 쉽지 않은 민족인지라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는데도 이상하게 괜히 험한 일을 겪지는 않았을지 마음 한켠 걱정이 들었다. 이방인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일지 감히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치킨커리와 난, 음료수 하나만 주문해서 조금 미안한 감이 있었는데 아이가 귀엽다고 서비스도 주시고 끝자리 잔돈은 떼고 계산해 주셨다. 더운 날씨와 아이의 징징거림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는데 사장님 덕분에 마음이 다 풀렸다. 이 식당에 좋은 일만 가득했으면 하는 바램이 든다.


아이 또한 카레를 먹고 기분이 풀려서 길거리를 조금 구경하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홍콩 도심에만 4박 5일의 시간을 할애하기에 너무 아깝지 않나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막상 여행을 시작해 보니 일정이 빠듯하지 않아 마음에 여유가 있어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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