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쓰러지셨다.
올해 두 번째다.
이번엔 심폐소생으로도 한참을 심정지 회복이 안되어 구급차 특수전기충격기를 사용했다고 했다. 인근 병원으로 옮겨 응급처치를 한 후 큰 병원 응급실로 이동하셨다. 이런 위급한 때에 서울과 부산의 거리는 참 멀다. 전화를 받고 바로 출발했지만 중환자실로 이동하신 후에나 도착해서 얼굴을 뵙지 못했다.
다행히 의식은 찾으셨지만 혈압과 맥박이 정상으로 돌아오는데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중환자실에 계시니 하루 한 명 딱 10분만 면회가 가능하여 토요일에 내려왔지만 월요일 오전에나 얼굴을 뵈었다.
주말동안은 의사가 출근하지 않기에 월요일에 정밀검진을 시작했다. 검진하면서 문제 발생 시 바로 스텐트 같은 시술이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조금 뒤 보호자 호출이 있었고 심장으로 이어진 혈관 두개가 막혔지만 하나는 이미 석회화 되었고 하나는 꼬여있어 스텐트 시술이 불가하여 수술을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심장은 기형적으로 기역자로 누워있고 다수의 혈관이 석회화 되어 있었다.
모니터로 보이는 심장의 모습이 마치 지쳐 누운 아빠 같아서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아빠는 수술을 거부했고 지겹다고 하셨다. 그래도 일단 중환자실을 벗어날 수 있다니 그것 하나로 의지를 보이셨다.
집으로 돌아오니 병원에서 연락이와서 담당의사께서 나만 따로 면담을 요청하셨다고 한다. 배우자는 아마 감정적으로 힘든 탓에 정상적 면담이 어렵다고 판단한 듯하다. 급히 내려간 탓에 서울에서 처리해두어야 할 일들이 있어 잠깐 상경하려던 계획을 하루 더 미루었다. 수술을 거부하는 아빠에겐 수술하면 10년이고 20년이고 더 사실 수 있다고 설득도 했다고 한다.
다음 날이 되어 약속한 면담 시간에 병원을 찾았다. 다행히 다른 가족들도 다 들어오라고 하여 함께 내용을 전해 들었다.
결론적으로 흉부외과와 논의 결과 아빠는 수술이 어려운 상태라고 했다. 모든 장기가 노화되었고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다 터져있어서 손을 대는 순간 생명을 장담할 수 없을 거라고 한다.
당장은 심폐소생으로 인한 흡인성 폐렴이 심각하여 중환자실에서 준중환자실 이동도 어렵다고 했다. 가급적 병실 이동을 추진하였으나 전날 검사로 인해 폐와 신장에 무리가 와서 당일 저녁에 수치가 피크를 찍어 긴급히 약을 이것저것 쓰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모두가 당연히 수술을 해야한다고 할때도 나는 수술을 하고 싶지 않았기에 면담에 앞서 여러 가지 질문들을 준비했는데 의미가 없어졌다.
장기들의 모습을 내 눈으로 보니 혈관 하나하나 장기 하나하나가 다 힘겨워보였기 때문에 더 힘든 고통을 감내하고 오래 계셔달라는 얘기는 남은 자의 욕심이라고 생각했다.
애초에도 3개월만이라는 작은 바램이었지만 오늘은 어느 정도 컨디션을 회복해서 퇴원을 하고 다만 2주라도 함께하고 싶다고 바램의 크기가 작아졌다. 그냥 우리 가족끼리만 모여서 너무 무겁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맛있는 거나 먹으며 마지막 시간을 소중히 보내고 싶다.
정말 위중한 일 앞에서는 냉정해지는 나이지만 한두번씩 갑작스럽게 터져나오는 눈물을 참기가 어렵다.
매사 깨방정인 아이도 내가 눈물을 보일 때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와 눈물을 닦고 안아서 토닥여주는데 5살 난 아이가 뭘 알겠냐만 아이의 그런 행동들이 너무 고맙고 위로가 된다.
이 아이 데리고 큰 일 못치르니 아빠 더 버텨줘야 해 라고 웃으며 말했는데 정말 현실에서는 아이가 어른이다. 잠깐 서울 다녀오자니 그럼 할머니 외로워서 어떡해? 라는 마음 따뜻한 진짜 천사.
천사야, 아빠에게도 축복을 내려주어서 가족과 조금만 더 시간을 보낼 수 있게, 언젠가 맞이할 아빠의 마지막이 힘들지 않게 도와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