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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주 Nov 16. 2020

더 깊이 사랑하기 위한 여정_『카프카의 일기』

(프란츠 카프카/이유선,장혜순,오순희,목승숙/솔)

 

내 생각에 책을 읽는다면 사람들을 물어뜯고 콱 찌르는 그런 책만을 읽어야 할 게야. 만약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의 두개골을 주먹질로 쳐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책을 읽겠는가? (중략) 우리는 우리를 몹시 고통스럽게 하는 불행처럼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그런 책을 필요로 하네. 마치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처럼, 마치 우리가 모든 사람들로부터 내쫓겨 멀리 숲으로 추방된 것처럼, 마치 자살과 같은 불행 말일세.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네.    

너무나 유명한 이 말은 카프카가 스무 살 때 친구 오스카 폴락에게 보낸 편지 속 문장이다. 카프카에게 ‘도끼’는 괴테, 니체, 도스토예프스키 등의 책이었으며, 그 자신 역시 후세의 독자들에게 도끼와 같은 작품들을 남기고 떠났다. 카프카는 카뮈, 밀란쿤데라, 마르케스, 무라카미 하루키 등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준, ‘작가들의 작가’로 불린다. 카프카의 작품들은 작가들뿐 아니라 많은 독자들에게 ‘우리를 몹시 고통스럽게 하는 불행처럼’ 다가와 ‘우리 내면에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와 같다. 카프카의 작품들은 편안하게 읽히지 않는다. 낯설고 기이하고 불편하고 슬프다. 형체를 분명히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감정이 먼저 엄습한다. 익숙하지 않은 길에서 헤매다가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픔과 고독감에 몸을 부르르 떠는 느낌이다.     


때론 미궁 같고 때론 수수께끼 같은 그의 작품들은 다양한 해석과 감상이 가능하다. 철학적, 종교적, 일대기적 측면들 중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수많은 해석들을 낳는다. 이렇게 카프카의 작품들이 연구대상이 된 데에는 대부분의 작품들이 그의 사후에 발표되었고, 미완의 작품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들 속 메타포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남긴 수백 통의 편지와 12권에 이르는 일기 속에서나마 ‘작가와의 만남’을 가져야 한다.     


폐결핵을 앓던 카프카는 마흔한 번째 생일 하루 전날, 마지막 연인 도라 디아만트 곁에서 숨을 거두었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몇몇 작품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작품들이 카프카 사후, 친구 막스 브로트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막스 브로트는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카프카의 작품들을 정리하여 출판하였으나 원전 훼손 비판이 일었다. 이후 독일 부퍼탈 대학의 프라하문학과 카프카문학연구소를 중심으로 작가가 남긴 필사본을 기초로 한 카프카 역사 비평판이 1980년 초부터 출간되기 시작하였고 카프카의 일기 역사 비평판은 1990년에 출간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짧은 산문, 장편 소설, 잠언, 편지, 일기, 공문서 등을 총망라한 역사 비평판을 바탕으로 1997년부터 솔 출판사에서 카프카 전집을 출간하기 시작했다. 카프카 전집6에 해당하는 『카프카의 일기』는 2007년에 출간되었다. 이 책에는 카프카의 유고인 12권의 사절지 노트와 두 개의 서류묶음, 여행 일기가 수록되어 있다.      


『카프카의 일기』에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 독신과 결혼 사이에서의 번민, 불면과 육체적 고통, 작품 구상의 단서들, 집필 의도, 작성 중이던 소설의 일부 등 1909년부터 1923년까지의 기록들이 광범위하게 담겨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개인의 사적 기록임과 동시에 문학적 기록으로서 중요한 자료가 된다.     

 

그의 소설들을 이미 읽은 후라면, 일기 속에서 다시 만난 소설의 조각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과 약간 다르거나 삭제된 부분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카프카의 팬이라면 보물단지 같은 책이 될 것이다. 펠리체 바우어와의 파혼 직후, 이 사건을 계기로 단편 「선고」를 집필했다거나, 1922년 5월25일 일기에서 “엊그제 「단식광대」. 오늘 멋진 산책”(p.747)이라는 글을 만나면 소설이 씌어진 날짜와 의도까지 정확히 알 수 있다. 밤 새워 소설을 완성하고 기분 좋은 새벽을 맞는 글을 읽을 땐 집필 당시 작가의 육성을 듣고 있는 듯한 현장감도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소설이라는 포장을 거치지 않은, 한 인간으로서의 카프카를 만나고 존재의 심연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을 읽는 가장 큰 매력이다.       


저는 문학 외에는 다른 그 무엇도 아니며, 다른 그 무엇일 수도 없으며, 다른 무엇이기를 원하지도 않습니다. (p.476)     


이 유명한 문장은 카프카가 당시 연인이었던 펠리체 바우어의 아버지에게 쓴 ‘가상의’ 편지글이다. 그는 이 편지글에서 이렇게도 말했다. “문학이 아닌 것은 모두 저를 지루하게 만들고, 저는 문학이 아닌 것을 증오합니다.” (p.477) 이 글에서 카프카는 문학으로부터 멀어진 삶을 살 수 없으며, 가족을 부양하는 삶을 살 수도 없다고 썼다. 그는 자신의 문학은 고독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문학과 결혼을 양자택일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그로 인한 갈등과 죄책감에 고통받았다. 문학만이 자신을 구원하며 삶의 이유라고 믿었던 카프카. 문학에의 사랑이 그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었지만, 동시에 한없는 좌절과 고통 또한 문학에서 연유한다.   

   

글쓰기가 주는 기이하고, 은밀하고, 어쩌면 위험하기 짝이 없으면서도 구원적이기도 한 위로: 행위-관찰, 더 높은 관찰이 만들어지면서, 더 높은, 더 예리하지 않고, 그리고 더 높을수록, 그 ‘일련의 대열’로부터 도달할 수 없을수록, 관찰은 더 독립적이 되고, 그의 길은 더욱 자기만의 운동법칙에 따라서 더욱더 예측하기 어렵고, 더 기쁘게, 더욱 상상하면서, 계속 이어지는 행위-관찰의 살인적인 격투로부터 빠져나오기. (p.724)     


 카프카에게 글쓰기는 무엇이었나, 생각하게 되는 글이다. 그는 스스로의 삶을 적극적인 삶이 아닌, 관찰하는 삶이라고 규정한다. 관찰자로서의 카프카는 치열한 기록자이기도 하다. 일기에는 연극 배우와 여인들을 섬세하게 묘사하거나,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한 글들이 많다. 예리한 사색과 치밀한 글쓰기는 관찰과 기록의 힘이기도 하다. 관찰과 기록의 눈은 외부를 향할 때도 있지만, 그의 내면을 향할 때가 더 많다. 

    

그의 표현대로 카프카는 ‘너무나 커다란 그림자를 가진 남자’였다. 그를 살게 한 힘은 자신의 그림자를 응시하고, 수용하고, 때론 저항하며 자신을 닮은 그림자들을 똑똑 떼어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들은 모두 그의 그림자를 닮았고 그의 그림자 자체이며, 그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다.     


글을 쓸 때는 언제나 더 불안해진다. 이해할 수 있다. 모든 단어들은 유령 - 손을 이렇게 휙 돌리는 것이 유령들 움직임의 특징이다 – 의 손 안에서 방향을 바꾸면서 화자에게로 끝을 겨누는 창이 된다. 이 같은 발언은 매우 특별하다. 그리고 그렇게 무한하다. 위로가 된다면 단 하나, 네가 원하든 원치 않든 그것은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네가 원하는 것은 눈에 띄지도 않을 만큼 거의 도움이 되지 않을 뿐이다. 위로 이상의 것은: 너도 역시 무기를 가졌다는 것이다. (p.751)     


카프카의 일기에는 자신과의 대화가 자주 등장한다. 위 발췌문 역시 자신과의 대화체이며, 여기서 말하는 ‘너’는 카프카 자신이다. 글을 쓸 때 종이로 옮겨지는 단어들은 모두 제각각의 무게와 존재 이유를 가진다. 글 쓰는 이는 늘 최적의 단어들을 생각해내는데, 그 단어가 글 쓰는 이를 겨누는 아픈 칼 끝이 될 수도 있다.      


카프카에게 글쓰기는 특히 자신의 내면에 고인 물들을 밖으로 퍼내는 작업이었다. 그렇게 퍼낸 물들은 모두 그 자신과 무관하지 않다. 자신의 내부에서 나온 것은 자신을 겨누는 창이고 활이고 아픈 칼 끝이었을 것이다. 그것들은 자신을 겨누는 흉기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지키는 무기가 될 수도 있다. 자신을 찌르는 칼을 몸에서 빼내어 손에 쥐었으니, 그것은 자신을 방어하는 무기이다. 이 부분은 제 10권 p.584~p.585에 등장하는 이야기와도 연결된다. 목에 꽂힌 칼을 친구들이 뽑아주며 “여기 네 검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것은 귀한 무기였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자신을 찌르고 생명을 위협하는 그 칼은, 카프카에게 ‘귀한 무기’가 되었다. 그의 불행과 고독은 그에게 ‘귀한 무기’가 되고, 글쓰기와 문학은 그 산물이다.      


문학을 사랑했고, 문학 그 자체이기도 했던 카프카. 카프카의 문학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더 깊이 사랑할 수는 있다. 그 사랑이 공허하거나 피상적이지 않도록 그를 더 알고 싶어진다면, 『카프카의 일기』가 좋은 텍스트가 된다. 그의 일기를 읽다보면, 100여년 전의 카프카 뿐 아니라, 현재의 나를 더 깊이 알고 싶어진다. 그런 마음은 나도 일기를 써야겠다는 욕구를 불러온다. 카프카를 만나는 여행에서, 나를 만나는 여행까지 가능하게 하는 것, 그것이 일기의 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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